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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는 자, “낙인을 두려워 말라”
‘나쁘자나~’ 열여섯 번째 이야기마당, ‘B급 좌파’ 김규항
진보논객들의 ‘장애비하 발언’에도 쓴소리
등록일 [ 2013년12월21일 17시27분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 열여섯 번째 이야기마당이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씨와 함께 진행됐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해인 1981년도에는 빨갱이로 몰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죠.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을 더 평등하게 바꾸려는 사람들이 본질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는데, 그건 우리가 지금의 체제로부터 주입받는 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빨갱이’다, ‘좌파’다 그렇게 말해도 오히려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래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는 좌파다”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488일째 광화문 지하보도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는 농성장 앞이어서인지, 그의 발언은 더 군더더기 없이 단호했다. 그는 자신을 수식하는 ‘B급 좌파’라는 말에 걸맞게 자신감 넘치는 말을 이어갔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 열여섯 번째 이야기마당이 ‘고래가 그랬어’ 김규항 발행인과 함께 20일 늦은 6시 30분에 광화문 지하보도 농성장에서 진행되었다.

 

그와의 대화는 장애인운동 활동가들로부터 미리 받은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후원 좀 했다고 감사편지 받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첫 질문은 김규항 발행인이 만들고 있는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이름에 대해서다. “고래가 뭐라 그랬는데요?”라는 질문 앞에 그는 “이런 질문은 꼭 어른들이 한다. 아이들은 이런 질문 안 한다”라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어른들의 강박관념’이라고 꼬집었다.
 
“‘고래가 그랬어’라는 잡지 이름에는 뭐 대단한 함축적 의미나 그런 거 없어요. 어른들이 보는 잡지들은 제목 자체가 주장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건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냥 아이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제목을 짓자는 생각으로 회의를 하다가 나온 제목입니다.”

 

김 발행인은 ‘고래가 그랬어’라는 잡지가 지향하는 바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요즘 가난한 아이들이 부유한 계층의 아이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성적, 건강, 문화적인 측면에서까지 열악한 상황에 처해져 있는 것을 더욱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고래가 그랬어’는 시골 분교지역 아이들, 탈북자 아이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들에 무료로 배포된다. 그는 “‘고래가 그랬어’는 부자 아이들은 못 봐도 가난한 아이들은 볼 수 있는 훌륭한 잡지”라고 소개했다.

 

이런 무료배포가 가능한 이유는 ‘고래 친구들’을 후원하는 ‘고래 삼촌’과 ‘고래 이모’들 덕분이다. ‘고래 삼촌’과 ‘고래 이모’들은 후원을 통해 자신들이 직접 잡지를 구독하는 것이 아니라 잡지를 받아볼 아이들을 지정해 구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후원을 했다고 별다른 보상 같은 것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는 봉사나 후원을 좀 했다고 그에 따른 보답을 받으려는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 후원 좀 했다고 같이 사진 찍고 오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엽서 받고… 이런 건 아주 무례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거죠.”
 
더불어 그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함에서 가장 잘못된 태도가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장애인을 포함해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씨와 함께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 열여섯 번째 이야기마당.

 

“빨갱이면 어떤가?”,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당당하게 말해야

 

이야기는 자연스레 요즘 사회의 이슈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다.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고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규항 발행인은 “악의적으로 우리는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맞서 싸워야겠지만, 오히려 우리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라면서 "우리는 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거부하지만 말고 당당하게 우리를 드러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신드롬처럼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 대자보를 처음 붙였던 주현우라는 학생이 알고 보니 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로 순수하지 못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발언들이 결국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요?”

 

그는 예전의 촛불시위부터 지금의 ‘안녕들~’ 대자보까지, 저항의 순수성에 대한 질문이 기존에 평생을 걸고 저항운동을 했던 이들에 대한 무시와 비하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든 운동이 ‘과격하게 해서는 안 된다’거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되어 기존 운동이 쌓아왔던 지혜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최근 소위 ‘진보논객’들의 발언 속에 드러나는 ‘장애 비하’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소위 ‘진보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보면, 우리가 미워하는 어떤 ‘나쁜놈’을 지목해 놓고 그를 짜릿하게 욕하면 ‘진보논객’이라고 환호하는 식이에요. 하지만 이건 집단적인 카타르시스일 뿐이죠.

 

‘병신’이라는 말은 예전엔 배운 사람들한테는 쓰면 안 되는 말로 받아들여졌었는데, 언젠가부터 이 말이 유행처럼 번져 진보 쪽에서도 막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석기 의원을 두고 발달장애라고 표현한다거나… 그런데 이것은 시민으로서의 상식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집단 카타르시스에 취해 진보운동이 갈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 김 발행인은 ‘혁명’을 한다는 것, 즉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고, 그래서 섬세하게 바라봐야 할 일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가 경향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칼럼의 제목도 ‘혁명은 안단테로’이다.

 

그는 이 섬세하게 바라봐야 할 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칼럼에 꼭 한번 실어보겠다고 약속하면서,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이야기마당을 마무리했다.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씨와 함께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 열여섯 번째 이야기마당.
▲김규항 씨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 선전전에 함께하고 있다.
▲김규항 씨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 선전전에 함께하고 있다.
▲이야기 마당을 끝내고 단체사진을 찍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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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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