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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물리적 희망의 근거를 만드는 것"
'나쁘자나~'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손님 박경석 교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해 우리의 결의, 약속을 지키자"
등록일 [ 2014년01월02일 20시43분 ]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손님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과 함께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가 지난 1일 늦은 6시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장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주최로 진행되었다.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손님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과 함께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나쁘자나~’가 지난 1일 늦은 6시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장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박 교장은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운동해왔는지를 돌아보며 앞으로도 물리적 희망의 근거가 되기 위해 현장에서 함께 운동하는 동지들과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박 교장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중간 중간 인생의 분기점에서 불렀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박 교장은 1983년 8월 7일 행글라이더 추락사고로 척수를 다쳐 장애인이 된 뒤 5년 동안 바깥에 나오지 못했다. 박 교장은 당시 5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감각함이었다면서 그 시절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무언가를 느끼고 바라보고 싸우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밝혔다. 박 교장은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 부르곤 했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노래했다.

 

“6개월 만에 병원에서 나와 5년간을 집에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느낄 수 없다는 겁니다. 책 제목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라는 말은 집구석에서 무감각했던 시기보다 지금 광화문에서 499일 동안 고생하는 게 백배 낫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느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고, 싸울 수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이 무감각한 것보다 행복한 거죠.

 

5년 동안 무감각한 채로 시체처럼 살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제가 만났던 특수교사 한 분이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를 알려줬어요. 그즈음에 우리 집 아파트에서 밖으로 나오는 연습을 했어요. 그때 불렀던 노래 중 하나가 ‘타는 목마름으로’입니다. … 제가 밖에 나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런 노래를 부르며 힘을 얻었어요. ‘뭔가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고 할 일이 생긴 거죠. 그래서 장애를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갔습니다.”

 

이어 박 교장은 1988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 다녔을 때를 설명하며 그곳에서 처음 만난 정태수 열사를 추억했다. 이어 박 교장은 고인이 자주 불렀던 ‘의연한 산하’라는 노래를 불렀다.

 

“당시엔 전동휠체어도 활동보조인도 없어서 복지관까지 1킬로미터가 넘는 오르막길을 재활 의지, 장애 극복 정신으로 다녔어요. 근데 거기 가니 이상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뇌병변장애인들이었죠. 나도 인생 망쳐서 장애인이 되었는데 그 장애인들을 보니 불쌍하더라고요. … 저는 장애인을 텔레비전에서만 봤는데, 복지관 가니까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초, 중, 고등학교 다닐 때 코빼기도 안 보이던 장애인이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했어요. …

 

그 당시 처음으로 정태수를 만났어요. 고등학교 갓 졸업한, 목발 짚고 머리 빡빡 깎은 친구였죠. 근데 그 친구가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이여’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를 들으니 정말 한심하더라고요. ‘너 그래서 인생 참 망치겠다’ 싶어서 그 친구가 회개하도록 기도했어요.”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이여" 정태수 열사가 자주 부르던 노래 '의연한 산하'를 부르는 박경석 교장.

 

박 교장은 당시 정태수, 박흥수 열사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가 장애를 극복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과 달리 정태수, 박흥수 열사는 차별하는 세상에 맞서 싸웠다고 회고했다.

 

“또 박흥수라는 형을 만났는데 그 형이 하는 말이 장애자올림픽을 거부하고 조직위원회를 점거했대요. 88년도에 국가가 불쌍한 장애인들 위해 장애자올림픽 해주는데 박흥수라는 사람이 그걸 거부하고 농성해서 경찰들에게 두드려 맞고 개처럼 끌려 나온 걸 마치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더라고요. 완전 빨갱이죠. 근데 흥수 형이 태수랑 짝짜꿍이 잘 맞더라고요. … 사실 술 먹는 게 좋아 두 사람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들이 당시 복지관 학생들에게 점심때 장애인 건강을 위해 맨손체조 시키는 걸 거부하겠대요. ‘우리도 성인인데 선생은 담배도 피우고 밥도 먹는 점심시간에 장애인만 맨손체조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면서 말이죠. 그래서 그 사실을 얼른 가서 선생님께 고자질했지요 …

 

태수가 구두 수선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장애인을 조직하려고 했는데, 한 달에 3만 원 주고 24시간 부려 먹는 걸 못 견뎌서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어요. 이를 보는 2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비장애인도 취업하기 힘든데, 그나마 3만 원 받는 게 어디냐. 너의 의지가 빈약하다.’라는 것이 복지관 선생님들이 우리를 설득했던 말이었어요. 또 하나는 태수나 흥수 형이 생각했던 건데 ‘더럽다. 왜 그런 노동조건을 견디며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라면서 선생한테도 욕하고 서울시장한테도 욕했죠. 당시 저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죠. … 세월이 흐르고서야 흥수 형이나 태수가 했던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박 교장은 이후 정태수, 박흥수 열사와 1990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점거 농성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박 교장은 정태수 열사가 일하던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가 1993년 노들야학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야학에서 장애인이 차별받는 것을 알리는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93년 태수가 일하던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가 노들야학을 만들었죠. 제가 그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태수가 하도 부탁을 해서 제가 학과 동기들을 꼬여서 야학교사로 넘겨줬어요. 당시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활동가들이 조직화를 목적으로 만든 게 노들야학입니다. 여러분 여기 오시게 하려고 만든 게 노들야학이에요. 왜 공부 안 하고 밖에서 데모나 하고 다니느냐 물으시는데, 장애인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못 가는 것들을 잘못되었다고 알리는 게 얼마나 큰 공부입니까?”

 

▲이야기 중인 박경석 교장.

 

1994년부터 노들야학 교사를 하게 된 박 교장은 1997년 당시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교장이 된 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박 교장은 노들야학 교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했던 시기를 되돌아보고, 장애인운동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을 멈출 수 있는 ‘물리적 희망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운동하는 사람과 투쟁 방식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운동단체의 원칙은 물리적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도로 하나 점거해도 기쁨을 느껴야 해요. 우리가 도로를 점거한 것은 우리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시궁창에 놔두고 가는 세상을 붙잡는 것입니다. …

 

우리의 정치는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뭉쳐서 제대로 도로를 막아서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차별하고 배제하는 세상을 막을 수 있으면 그만큼 좋은 게 없겠죠. … 흥수 형이 2000년, 태수가 2001년도에 떠나고 외로웠는데, 누군가 ‘어떻게 외로움을 견뎠느냐’ 묻더라고요. 저는 물리적 희망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를 점거해온 겁니다. 두 열사와의 약속으로 제가 투쟁하고 있는 겁니다.”

 

이어 박 교장은 운동하면서 힘을 받았던 노래 ‘녹슬은 해방구’를 부른 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투쟁하는 광화문역 농성장을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수많은 선배가 돌아가신 가운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배들의 투쟁 역사를 거스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될 때까지 투쟁합시다. 농성 철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서 우리의 결의와 약속을 지켜냅시다.”

 

이날 이야기마당을 마친 뒤 박 교장은 자신의 저서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10권을 직접 사인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한편 이날 이야기마당은 노들야학 학생 등 약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1시간 30여 분 동안 진행되었다.

 

▲저서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를 선물하고 있는 박경석 교장.

▲이야기마당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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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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