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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송국현, 그리고 ‘자력구제'라는 비극
[기자수첩] 비극을 또다른 착취 기회로 삼는 이들에 맞서 “함께 살자”
등록일 [ 2014년04월26일 16시49분 ]

이웃 나라 일본은 경제력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흔히 일본을 ‘미끄럼틀 사회’라고 부른다. 한번 경제적 실패를 겪게 되면 다시 재기할 수 없을 만큼 ‘쭉 미끄러져’ 사회의 밑바닥까지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얼마 전 송파 세모녀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이들은 한국을 ‘낭떠러지 사회’라고 불렀다. 한번 낙오되면 ‘뚝 떨어져’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미끄럼틀보다 훨씬 잔혹하다.

 

▲침몰한 세월호 ⓒJTBC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한국사회가 정말로 ‘낭떠러지 사회’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는 낭떠러지처럼 정말 90도로 기울었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해경은 초기 구조자 집계조차 수차례 오류를 내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바지선, 헬리콥터 등 국가적 자원이 넘쳐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다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그 사이 해경은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잠수업체가 사실상 바다를 장악하도록 방치하면서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사실상 구조의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원성을 샀다. 결국 백수십여 명의 고등학생이 영문도 모른 채 바다 한가운데에 '뚝 떨어져' 목숨을 잃고 푸르른 젊음을 마감해야 했다.

 

이 사건을 접한 이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는 사실은 학생들이 “선실에 대기하라”는 선장의 안내방송을 ‘믿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후 구조과정에서도 ‘공통의 규칙’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신뢰할만한 ‘공통의 규칙’이 무너진다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재난을 안겨준다. 이는 곧 “규칙, 그리고 그것을 만든 국가를 믿으면 죽는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규칙과 국가를 믿지 않게 되면,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 즉 ‘자력구제만이 살 길’이라는 결론으로 치닫는 것이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재난의 공포를 자력구제로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돈’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규칙과 국가 시스템이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잘 작동하고 있다면, 국민은 굳이 돈을 쓰지 않아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음이 깨져버렸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는 돈을 들여 민간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자기 집 앞에 CCTV를 달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대재난 앞에서 자본권력이 바라던 일이었을 수도 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마자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유가족들이 받게 될 사망보험금을 계산해 상세히 안내해 준 것도 괜한 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적 시스템을 믿지 마라. 자신을 구해주는 것은 너 자신뿐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보험에 가입해둬라.”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끔찍함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다. 무너진 공적 시스템이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각자 고립된 ‘안전의 성체’에 스스로를 가두거나, 불안을 토대로 뭉친 몇몇은 타자에 대한 증오를 바탕에 둔 ‘빗장 건 사회(gated society)'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사회’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빗장 건 사회’는 신뢰가 아니라 증오를 토대로 형성되기에 그전보다 훨씬 강력한 진입 장벽을 치게 될 것이다. 혼자서는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더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제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핍을 상쇄할만한 돈도 없다면 완벽하게 ‘유령’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집에서 화재로 숨진 송국현(장애 3급) 씨를 추모하는 행렬.
  

얼마 전 활동보조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있다가 화재로 숨진 중증장애인 송국현 씨(53)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유령’이다. 그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중증장애인이었지만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 신청 자격조차 없었다. 시설에서 27년 동안 살았기에 돈도 빽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의 공적 시스템은 그를 위해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뜨거운 화염이 이글거리는 ‘낭떠러지’로 내몰렸고, ‘자력구제’할 힘이 없어 죽어야 했다.

 

어쩌면 자본권력은 “이것도 국가인가?”라는 국민의 절규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으로 자본권력은 재난과 공포를 더 많은 착취를 위한 기회로 삼아 성장해왔기에 이런 생각이 괜한 억측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재난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만을 '골라 죽이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송국현 씨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만나게 될 비극적 사회상의 ‘이미 와 있는 미래’이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들의 죽음 앞에 애도하면서도 이것을 꼭 직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애도 속에 '함께 살자'라는 구호를 다시금 새겨 넣어야 한다. '자력구제'라는 이미 와 버린 미래, 이미 와 버린 비극에 맞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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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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