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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가요, 4월의 바람으로 다시 오소서
고 송국현 씨, 사망 26일 만에 장례 치러
서울 시청광장~광화문광장, 운구 행렬에 많은 이 함께해
등록일 [ 2014년05월13일 22시39분 ]

죽음에서부터 장례까지, 26일 만이었다. 하루를 사는 것이 일 년을 살아낸 것처럼 마음도, 몸도 아득하고 고됐던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고통이 희석되기에 26일은 일각(一刻)이었다. 끝내 이름 짓지 못할 고통이 각자의 몫으로 자리했다.

 

‘형님’이라고 살갑게 불렀던 이름은 울음이 되었다. 사람들은 몸으로 울었다. 바닥에 놓인 운구를 꼭 끌어안았다. 끝내 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끝내 보낼 수 없기에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고개 숙인 얼굴은 말이 없었다. 울음도 없었다. 고요하게 잠겨갔다. 몸이 울음에 잠겨갔다. 시커멓게 시든 조화 너머에서, 그쪽에서 이쪽을, 바라보지 못했다.

 

고 송국현 씨의 죽음에 복지부 장관은 끝내 ‘깊은 유감’이라 했다. 사과는 하지 않았다. '깊은 유감’일 뿐이었다.

 

고인은 이십 년 넘게 시설에서 살다 쉰둘의 나이에 지난해 10월, 시설을 나왔다. 그러나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복지서비스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홀로 있던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설에서 나온 지 6개월 만에 불타 죽었다. 문자 그대로, 불타 죽었다.

 

6개월 동안 고인은 새 옷을 사 입었고 야학에서 한글을 배웠다. 야학엔 아직 그가 쓰다만 공책이 남아있었다. 그 공책에는 왕십리역, 상왕십리역, 신당역이 쓰여있었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쓰이다 말고 쓰이다 말고를 반복하고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열 글자가 그에겐 아직 버거웠나 보다. 그렇게 그에겐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살아야 할 삶이 남아 있었다.

 

6월 18일, 얼마 후면 그의 생일이다. 그와 함께 충분히 누리지 못한 봄의 계절이 서럽고 지역사회에서의 그의 첫 생일을 마저 보내지 못해 더 서러웠다. 그와의 웃음도 아쉬움도, 서러움으로만 남은 사람들.

 

5월 12일. 꽃이 만개하고 햇볕 좋은 화사한 날이었다. 서울 시청광장에서 출발해 세종로를 따라 광화문광장에 달하는 길이었다. 마지막 시간, 짧으나 마음껏 누리길 바라는 바람에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그렇게 그와의 봄을 채 살아내지 못하였는데, 여름이 다가온다. 많은 이들이 함께했던 고인의 마지막 길을 사진으로 담았다.


마지막 가는 길은
당신이 사람으로서의 예를
다 받을 수 있도록
애통한 마음들이 촛불을 밝힙니다.
 
언제라도
4월의 바람으로 다시 오십시오.
우리에게.
언제라도. 4월의 바람으로 우리에게
 
- 김광이, "믿을 수 없는 송국현 동지의 부음을 접하며" 中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 송국현 씨의 장례가 12일 이른 11시 400여 명의 활동가 등이 모인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엄수됐다. 지난달 17일 송 씨가 사망하고 26일 만이다. 장례식 참가자들이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 송국현 씨의 장례가 12일 이른 11시 400여 명의 활동가 등이 모인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몸짓꾼 이삼헌 씨의 진혼굿.

▲노동가수 박준 씨가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고 송국현 씨 장례식 참가자들 너머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 옆에 희생자들을 위한 노란리본이 보인다.

▲바닥에 떨어져 흩날리는 하얀 국화 송이들.

▲고 송국현 씨 사망 26일이 지났으나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동안 빈소에 놓인 조화(弔花)는 시들어 색이 바랬다. 생기있는 것은 조화(造花)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더 이상 울지 말고 함께 싸우자. 반드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라고 밝혔다.

▲고 송국현 씨가 자립생활을 준비했던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고 송국현 씨의 영정에 헌화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헌화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장애인 활동가가 고 송국현 씨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고 송국현 씨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
▲이날 장례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도 참여했다. 헌화 후 고 송국현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고 송국현 씨의 운구 위에 놓인 하얀 국화.
▲고 송국현 씨의 운구차가 지나가고 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규식 소장이 고 송국현 씨의 영정 사진을 품고 행진하고 있다. 이규식 소장은 고인이 음성 꽃동네 시설에서 나오는 것에서부터 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원했다.
▲고 송국현 씨의 위패를 든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 고인은 성동센터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 송국현 씨 영정을 들고 세월호 노란리본이 묶인 길가를 행진하는 사람들.
▲고 송국현 씨의 영정과 위패를 품에 안고 행진하는 사람들.
▲끝이 보이지 않는 행진대열.
▲"송국현 동지를 죽인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하루 24시간 활동지원과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라."
▲"동지여, 장애등급제와 시설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
▲행진 후 광화문 광장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는 참가자들.
▲행진 후 광화문 광장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는 참가자들
▲마무리 집회 후 장지로 이동하려는 참가자들을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장지로 이동하려는 장애인 활동가 한 명을 경찰 수십 명이 둘러싼 채 이동을 막고 있다.
▲경찰이 장지 이동을 막아선 것에 대해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이 항의하자 경찰이 이를 진압하고 있다.
▲장지 이동을 경찰이 막아서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애인 활동가.
▲장지로 이동하려는 참가자들을 방패로 막아선 경찰.
▲경찰이 장지 가는 사람들을 막아섰다. 경찰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는 막아선 채 턱이 있는 곳만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턱이 있는 곳은 이동할 수 없다.
▲경찰이 장지 이동을 막아서자 한 장애인 활동가가 이에 항의하며 인도 위에 주저앉아있다.
▲장지인 벽제 승화원에 도착한 사람들. 고 송국현 씨의 유골이 화장되는 동안 활동가들이 기다리고 있다.
▲화장되는 동안 그 앞에 고인의 위패와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화장 후, 고인의 유골함과 영정을 들고 서울시립 승화원 추모의 집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화장 후, 고인의 유골함과 영정을 들고 서울시립 승화원 추모의 집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고인의 유골함은 서울시립 승화원 추모의 집에 안치됐다. 사람들이 고인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살아생전 고 송국현 씨가 새 옷을 입고 미소 짓고 있는 사진과 활동가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쓴 카드.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 집에 안치된 고인의 유골함. 동료 활동가들의 추모편지 등이 함께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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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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