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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이냐, 존엄한 삶이냐" 영국 조력자살 합법화 논란
영국 장애인계, '합법화 반대' 18일 국회 상정에 항의시위 예정
"사회보장 예산은 삭감하면서 '자살지원'이 웬 말?"
등록일 [ 2014년07월16일 18시28분 ]

영국에서 조력자살(Assisted suicide: '안락사' 또는 '존엄사')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장애인계는 이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에 더 소홀해질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노동당 출신 팔코너 전 상원의장이 발의한 조력자살 허용법안은 불치병으로 말미암아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고통 완화를 위해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 '자살을 돕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다.

 

이는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고 판정받은 환자에게 적용되며, 2명 이상 의사의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을 추진하는 이들은 ‘존엄한 죽음’(Dignity in Dying)도 하나의 권리이며, 이는 환자의 선택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환자가 마지막 몇 주 또는 수개월간 불필요하게 고통 받는 것을 완화해주도록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력자살 허용 법안을 제출한 영국의 팔코너 상원의원 .ⓒBBC NEWS

 

이에 대해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도 그간 의료계의 일반적 입장과는 다르게 조력자살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 견해를 밝혔다.

 

이 저널은 지난 7월 3일 게재한 사설을 통해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 생존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사상보다 ‘자율에 대한 존중’이 ‘환자 혁명’ 가운데에 있는 현재의 의학 윤리에서 더 주요한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수세기에 걸쳐 의료인들의 행위 지침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을 할 것이고, 해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국의 온라인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7월 14일 자 기사에서 이 법안을 제출한 팔코너 상원의원도 “국회에서 이 법 개정안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도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있다”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영국 형법상에서는 타인의 자살을 돕는 행위를 한 자는 최대 14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 조항은 조력자살을 인정하는 사회적 여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팔코너 상원의원의 주장이다. 실제로 4년 전 영국 검찰총장은 동정심이나 연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을 방조할 때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 개정안은 영국 국회에 상정되어 18일에 상원에서의 논의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영국 장애인계는 이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자립생활기금(Independent Living Fund) 폐쇄에 항의해 웨스트민스터 사원 점거 농성을 하기도 했던 장애인단체 DPAC(Disabled People Against Cuts)는 단체 누리집을 통해 “조력자살을 법제화하려는 것은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보다 가치가 없다는 믿음만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DPAC는 특히 “지독한 예산 삭감에 맞서 자립생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조력자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법안을 만나게 됐다”라며 “국가의료서비스와 각종 사회서비스가 파괴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원이라는 게 오직 ‘자살’뿐인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조력자살 합법화를 비판하는 만평.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앞에 '자살예방 프로그램'으로 가는 길은 계단으로 막혀 있지만, '조력자살'로 가는 길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DPAC

 

구체적으로 DPAC는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조력자살 합법화 반대를 분명히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의사의 진단이 정확한지와 당사자로부터 사전 동의를 얻었는지 확인할 충분한 안전장치가 갖춰졌는지가 의문이며, 이 과정에 부당한 압력이 환자에게 가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력자살 합법화가 누군가의 삶을 마감케 하는 데 있어 의사에게 사실상 ‘면책특권’을 주게 될 것이며, 세 번째는 (둘째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의사가 환자와 맺는 관계가 기존의 ‘치료자’(healer)에서 ‘살인자’(killer)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유럽에서 조력자살 합법화 논의가 초기에는 불치병 환자들에 한정되었지만 갈수록 장애인, 치매 환자, 어린이 그리고 심지어 '실존적 고뇌'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장애인에 대한 공적인 태도에서 부정적 변화가 늘어날 것이란 지적이다. 이를테면 비장애인이 자살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그를 말리려 할 것이지만, 장애인이 자살하려 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도울까’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반대 논쟁에 영국 ‘장애인 올림픽의 전설’로 불리는 타니 그레이 톰슨(Tanni Grey Thompson)도 가세했다.

 

장애인 올림픽에서 11개의 금메달을 따고 현재 상원의원이기도 한 그녀는 “이 법안은 많은 함정을 가지고 있고 너무 모호하다”라며 “그것이 정말 자신의 선택이 아님에도 ‘조력자살’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장애인단체 DPAC은 이 법안이 상원에서 논의되는 18일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루 종일 항의 시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이와 같은 안락사 제도를 허용한 국가는 2014년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정도이며, 미국에서는 오리건 주에서만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가 환자의 명시적 의사 또는 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을 경우 임종을 앞둔 환자의 특수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초안을 내놓고 공청회 등을 진행한 바 있으며, 치료비 절감 효과만 있을 뿐 환자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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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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