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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제 폐지 뒤 ‘의학적 손상’ 여부 판정 필요할까?
‘등급제 폐지’ 핵심 쟁점인 ‘장애인연금’ 두고 난상토론
"근로능력평가 도입" VS "보편적 소득보장이 우선“
등록일 [ 2014년07월30일 12시36분 ]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연금제도 개선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안철수·장하나 의원 등의 주최로 29일 늦은 2시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장애등급제 폐지’ 요구는 이제 박근혜 정부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에 정부는 등급제 폐지 이후 새로운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될 정책 중의 하나가 바로 장애인연금을 비롯한 소득보장제도이다.

 

이미 활동지원서비스와 같은 제도는 별도의 서비스 판정기준이 있어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해 변화될 부분이 많지 않고, 장애인 고용 부문을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도 중증장애인 개념에서 일부 수정만 예상될 뿐 큰 변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1급~중복 3급까지 지급하게 되어 있는 장애인연금(직접 소득보장)과 장애 급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감면·할인제도(간접 소득보장)의 경우 장애등급제가 완전히 폐지된다면 제도의 수혜 대상 기준을 새롭게 짜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연금제도 개선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안철수·장하나 의원실 등의 주최로 29일 늦은 2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장애인연금뿐만 아니라 등급제 폐지 이후 각종 장애인관련 서비스들에 대한 지원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패널과 청중들 간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핵심 쟁점은 △등급제 폐지 후에도 ‘의학적 손상’ 여부 판정을 해야 하는가 △장애인연금 수급 자격에 ‘근로능력평가’를 도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으로 집중됐다.

 

“서비스별 판정에 ‘의학적 손상’ 평가하고, 장애인연금에 근로능력평가 도입해야”

 

먼저 발제자로 나선 충북대 윤상용 교수는 주요 장애인복지서비스 별로 수급 자격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는 한편, 장애인연금 수급 자격 기준에 ‘근로능력평가’ 요소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윤 교수는 “프랑스의 경우처럼 각 서비스 유형별로 최적의 대상자를 판별하는 데 필요한 평가 요소를 확정하고, 의학적 손상 정도를 의미하는 장애등급과 함께 다양한 기능적 능력과 사회환경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급 자격 여부 및 서비스 제공량을 결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원칙하에 윤 교수는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장애인의무고용제도, 장애인활동지원제도, 각종 감면·할인제도 등 5개 주요 장애인복지서비스 종류별로 별도의 수급 자격 평가 기준을 마련해 제시했다.

 

윤 교수가 제안한 기준을 보면, 5개 장애인복지서비스 수급 자격에는 공통적으로 ‘의학적 손상’ 여부를 판별하고, 장애인연금에는 ‘근로능력’과 ‘소득 및 재산 기준’이, 장애인의무고용제도에는 ‘근로능력’과 ‘고용가능성’이,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는 ‘일상생활수행능력’과 ‘가족보호체계’가 별도의 자격 요건으로 추가된다.

 

윤 교수는 이러한 개별적 판별 체계하에서 장애인연금에는 '근로능력'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의학적 손상 중심의 장애 등급 체계가 아닌 장애가 개인의 노동시장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의미하는 근로능력 중심의 체계로 개편돼야 한다”라면서 “이는 거의 모든 OECD 회원국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법상에서는 장애개념을 ‘노동능력의 손상’으로 규정해 개념적 타당성을 갖췄으나, 실제 장애 판정 방법에서는 가장 후진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의학적 손상 평가만을 하고 있다”라면서 “의학적 손상 외에 근로능력에 초점을 둔 기능적 능력 평가 요소와 재활가능성 사정 요소가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근로능력평가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장애인고용공단 류정진 고용촉진국장도 찬성하는 견해를 표했다.

 

류 국장은 “근로능력평가를 통해 노동시장에서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의 경우 소득보장을 받게 하고, 그 외의 경우엔 일자리로 연계해줘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류 국장은 “이를 통해 고용과 복지가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라며 “그런 측면에서 장애종합판정체계 구축을 복지부가 주도하며 노동부를 배제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연금 지급 판정에 '근로능력평가'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충북대 윤상용 교수(가운데)와 장애인연금 지급에는 '소득과 재산'만 평가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대구대 조한진 교수(오른쪽), 그리고 장애인연금 개편의 핵심은 '직접 소득보장 확대'라고 주장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왼쪽).

 

“장애인연금 지급에는 소득·재산 평가로 충분하다”

 

하지만 다른 토론자들은 윤 교수의 제안이 기본적으로 '의학적 손상‘ 여부를 중요한 판별 기준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현행 장애등급제의 병폐를 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대구대 조한진 교수는 윤 교수가 제시한 서비스별 평가기준에 대해 “가장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라며 “제시된 안에는 모든 서비스 판정 기준으로 ‘의학적 손상’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장애등급제 폐지 방침과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간접적 지원제도 등은 소득보장 정책이기 때문에 소득과 재산만 보면 되고, 장애인의무고용제도도 근로능력과 고용 가능성만 보면 된다”라면서 “의학적 손상을 볼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활동지원제도에 대해서도 “이미 일상생활수행능력이 실질적인 판정도구로 작동하기 때문에 의학적 손상을 보는 것은 불필요하며, 가족보호체계를 따지는 것도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더 이상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라는 방향과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의학적 손상’이라는 기준을 장애 유무, 장애 유형, 장애 정도에 따른 기준으로 대체해, 장애 유무에 대해서는 모든 서비스 자격 평가에 적용하되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에 대한 평가는 필요에 따라서만 하자고 제안했다.

 

▲윤상용 교수와 조한진 교수의 '주요 장애인 복지서비스 종류별 수급 자격 평가 요소(안) 비교표 (토론회 자료 재구성)

 

조 교수는 특히 장애인연금 지급에 ‘장애 정도’를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의 원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 교수가 자체 분석한 통계를 보면, 장애 정도와 낮은 소득 계층 간에 매우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 직접적 요인인 소득 계층만을 평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처장도 ‘의학적 손상’을 기본적 판정 요소로 포함하는 것에 반대했다.

 

김 사무처장은 “판정한다는 것은 판정을 한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것”이라며 “장애를 판정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서비스가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를 결정하기 위한 판정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종류에 따른 수급 자격 결정 기준을 제시하기 이전에 장애인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복지서비스의 구체적인 종류와 지원의 정도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라면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에는 윤 교수가 제시한 소득보장, 고용서비스, 활동지원제도 및 간접 지원제도 외에도, 주거·이동·의료·교육·여가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장애등급을 대체해 근로능력평가를 도입하자는 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청중석에서 의견을 제시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양유진 활동가는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에서도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추정소득이 부과되거나 조건부 수급자로 지정되어 자활근로라는 이름의 사실상 ‘강제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이라며 “장애인연금 지급 과정에서 작동하는 근로능력평가도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밝혔다.

 

“등급 단순화는 속임수, 핵심은 ‘직접 소득보장’ 확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궁극적으로 장애인연금 개편이 ‘직접 소득보장 확대’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특히 지난해 민·관 협의기구인 '장애판정체계기획단'에서 장애등급을 현행 6등급에서 중증(1~3급)과 경증(4~6급)으로 단순화하는 과정이 논란이 되다가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으로 논의가 정리된 것과 관련해서 “이것을 성과로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등급 단순화라는 정부의 계획 속에는 장애등급제를 실질적으로 유지하고 복지구조의 변화를 거부하는 의도가 다분했는데, 그마저 복지부가 장애인연금 지급 대상 변화(‘1급~중복 3급’에서 ‘1급~3급’)에 따른 예산 확대도 부담스러워해 등급 단순화 계획이 결과적으로 철회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한국의 장애인 가구는 OECD 평균보다 3배 가난한데 장애급여 지원은 1/10 수준에 불과하다”라면서 “장애인연금을 받는 대상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하고 급여 수준도 대폭 늘려 보편적 소득보장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박 상임공동대표가 제시한 안은 현행 장애인연금과 경증장애수당을 통합해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로 인한 평균 추가비용(약 16만 원)을 기초급여로 일괄 지급하고, 기초급여와의 합이 1인 가구 최저생계비(현재 약 63만 원) 이상이 되도록 부가급여를 추가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에 맞추어 현재의 감면·할인제도는 단계적으로 폐지해 최대한 직접 소득보장으로 흡수하자는 것이다.

 

장애인등록제와 관련해 박 상임공동대표는 “정부는 현재의 감면·할인 제도를 이유로 장애인등록제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편적 소득보장 체계가 마련되어 서비스 별로 적격성 판정이 이뤄진다면 등록제는 필요하지 않다”라면서 “장애인등록을 조건으로 서비스 신청이 가능한 조건을 존속시키는 것은 결국 장애등급제와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주최 측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토론자로 섭외하고자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이와 관련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장애등급제 개편을 담당하는 장애인정책과에 토론 참석을 요청했더니 ‘장애인연금 문제는 장애인자립기반과 소관’이라며 회피했고, 장애인자립기반과는 이번 주 휴가라더라”라며 복지부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조한진 교수도 “복지부가 등급제 개편 방향과 관련해 의견 수렴을 열심히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어떤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지 미리 정해놓고 있는 것만 같아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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