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9월23일mo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인터뷰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19년, 왜 유정 씨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나
복지제도 사각지대에서 가난과 장애를 감내해온 유정 씨 가족
'개인의 장애를 돌보는 건 개인뿐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의 책임'
등록일 [ 2014년07월30일 18시39분 ]

인천 부평구에 거주하는 양유정(가명) 씨는 만 19세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그녀는 장애로 말미암아 19년 동안 집 밖 세계를 모른 채 지내야 했다. 부모는 가난 때문에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고 동무가 되어주는 것뿐이다.

 

유정 씨 가족과 같은 이들이 장애, 가난을 이유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막고자, 국가는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0년부터 가난한 이들의 최저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시행해온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 또한 장애인의 일상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사업은 시범 사업을 거쳐 2007년부터 시행되었고, 2011년 10월부터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제도화됐다.

 

그러나 유정 씨 가족은 복지 제도의 손이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녀와 가족의 생계는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전가됐고, 그녀의 삶 또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지난 15일 늦은 1시께 휠체어를 전달하려고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민들레센터) 문상민 활동가와 함께 유정 씨의 집에 방문했다. 지난 6월 말 민들레센터 활동가들이 유정 씨의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양아무개 씨(53)는 휠체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민들레센터 문상민 활동가와 함께 유정 씨 집에 방문했다. 그녀의 집은 부평구 달동네 초입에 있는 허름한 빌라다.

 

#유정 씨 가족, 부업 소득 매달 30만 원으로 생계 이어가

 

유정 씨의 집은 부평구 달동네 초입에 있는 허름한 빌라이다. 문 활동가가 휠체어를 가지고 문을 두드리자 양 씨가 반갑게 맞아줬다. 문 활동가가 휠체어를 전달하며 사용법을 알려주자 양 씨는 연신 ‘고맙다’고 답했다.

 

유정 씨 가족은 휠체어조차 사지 못할 만큼 가난하게 살고 있다. 집안은 색이 바랜 벽지와 한 사람이 겨우 서 있을만한 부엌이 있었다. 방 2개, 거실, 화장실이 갖춰진 14평 빌라이지만, 잡동사니가 많아 그보다는 더 좁아 보였다. 양 씨와 어머니 최아무개 씨(48), 문 활동가와 함께 거실에 앉으니 공간이 가득 찼다.

 

양 씨와 최 씨는 현재 부업으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하며 월 30만 원 남짓 번다. 양 씨는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이 심해져 월 85만 원 정도를 벌던 택시기사 일을 지난해 그만뒀다. 이후 양 씨는 이곳저곳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그의 나이를 보고 거절하는 곳이 많았다. 설령 건설일용직 일자리가 구해져도, 양 씨의 지병이 심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끌고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실제로 그런 여력도 부양 능력도 없어요. 건설일용직 일자리가 생겨서 나를 불러도 일을 보내질 않아요. 일 보내기 전에 혈압 체크를 하는데 혈압이 최고 185, 최저 120이 나오니 퇴짜를 맞죠. 일하다 혈압 오르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고요. 그래도 놀 수는 없으니까 아내랑 부업을 하나 하는데, 지난달에는 29만 5000원 정도를 벌었죠. 매달 30만 원 정도 버는 것 같아요.”

 

버는 돈은 적은데, 나가는 돈은 많았다.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유정 씨에게 채울 기저귓값만 20만 원이 든다. 남은 10만 원으로 유정 씨와 부모, 70대 노모 네 식구가 살기는 불가능하다. 양 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애 기저귓값만 20만 원이 들고, 그거 빼고 10만 원으로 생활하죠. 근데 애가 크니까 먹는 것도 많아지고, 제 당뇨와 고혈압으로 약값도 달마다 2만 6000원씩 들어가요. 한 3년간 전기, 수도, 가스요금도 못 냈어요. 그나마 제 동생들이 가끔 라면 한두 상자씩 들고 오고, 처제가 물티슈도 갖다 주고 했죠. 쌀은 교회에서 두 달마다 갖다 주는 걸로 먹고요, 어머니하고 아내가 교회에 가서 가끔 밑반찬을 가져와요. 이렇게 남들 도움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어요.”

 

▲유정이네 집은 14평형 빌라로, 잡동사니가 많아 실제 평수보다 좁아 보였다. 벽지는 색이 바랬고 부엌은 매우 좁았다.

 

# 19년, 장애와 가난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시간

 

양 씨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방 안에 있던 유정 씨가 몸을 끌며 나왔다. 그녀는 걷지도, 말을 하지도 못한다. 의사표현은 주로 양 씨의 손을 잡고 원하는 것을 가리키거나,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녀는 바지나 치마를 입는 대신 기저귀를 차고 지낸다. 그녀는 양 씨 쪽으로 오더니 그의 손을 잡고 놀았다.

 

유정 씨의 장애가 언제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양 씨 부부는 걸어야 할 시기에 걷지 못하는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양 씨 부부는 이곳저곳 다녀도 봤지만, 정작 돈이 없어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조차 받진 못했다고 한다. 양 씨 부부는 뇌병변장애 이외에 그녀의 장애가 정확히 어떤지 알지 못하고, ‘인지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만 이야기했다.

 

지난 2003년경에는 유정 씨를 데리고 자주 방문했던 신촌세브란스병원 의사가 ‘치료비는 무료로 해주겠다. 아이를 실험용으로 달라.’라고 했다. 양 씨 부부는 그녀를 차마 실험용으로 내줄 수 없어서 거절했다. 이후 양 씨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병원비와 병원을 왕복하는 교통비가 부담돼 그녀를 거의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정 씨는 정규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다. 2002년께 취학통지서가 날아왔지만, 그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양 씨 부부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양 씨 부부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데리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집에서 아이를 보살폈다고 했다.

 

유정 씨에겐 양 씨 부부가 유일한 동무였는데, 특히 양 씨의 품에 안겨서 그의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양 씨는 그녀를 보며 고맙고 또 안쓰러운 마음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부모가 돼서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아이가 저를 많이 따르는 것 같아 고맙고, 병원에도 못 데려가는데 감기몸살 빼고 크게 아프지 않아서 고맙죠. 아이가 원래 누구와 눈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의사표현을 할 줄 알게 됐어요. 그래도 아이가 가끔 너무 아파 짜증 내고 울 때 보면 마음이 아파요. 생활이 너무 힘들다 보니 애한테 제대로 못 해준 것도 미안하고요.”

 

▲유정 씨(왼쪽)와 양아무개(오른쪽) 씨.

 

양 씨 부부는 유정 씨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한때 그녀를 장애인 거주시설로 보낼 생각도 했다. 양 씨는 “이렇게 키울 바에는 나라에 얘를 위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설) 몇 군데를 알아본 적이 있다”라며 “막상 그런 곳에 보내려니 내 자식인데, 가슴 아파서 어떻게 보낼까 싶어서 결국 보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유정 씨가 19년을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 그녀의 장애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가족이 져야 했다. 뇌병변장애 1급인 유정 씨는 활동지원제도 대상자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닌 유정 씨 가족은 활동보조를 이용하면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양 씨는 이조차 감당할 수 없어 활동보조를 신청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정 씨는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물론 가끔 양 씨의 등에 업혀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하지만 양 씨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오는 빈도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날도 그녀는 하루 대부분을 자기 방의 침대나 거실 바닥에서 보낸 듯했다.

 

양 씨는 하루가 다르게 유정 씨를 돌봐줄 기력이 약해져 걱정이다. 몇 년 전까지는 그나마 부부가 함께 돌봤는데, 그녀가 자라면서 이제는 거의 어머니의 몫이 됐다. 양 씨는 “다 큰 딸의 기저귀를 차마 내가 갈 수 없어서 아내한테 맡겼다. 아내가 애를 보느라 밖을 거의 나가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유정 씨의 어머니인 최아무개 씨가 그녀에게 음료수를 먹이고 있다.

 

#유정 씨의 장애, '국가와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이렇듯 당장 하루 나기에도 버거운 유정 씨네 가족이지만, 이들 가족이 국가로부터 받는 복지는 거의 없었다. 지난 6월 초 근처 주민센터 사회복지공무원이 가족의 사정을 보고 신청한 전기·수도·가스 요금 긴급지원이 이들이 받은 지원의 전부였다.

 

지난해 택시기사를 그만둔 뒤 양 씨는 수차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때마다 주민센터 측은 양 씨에게 유정 씨 명의로 승합차가 있고, 양 씨 본인도 일할 수 있는 나이이므로 수급자가 아니라고 이유를 밝혔다.

 

서류상 유정 씨의 명의로 등록된 승합차는, 10여 년 전 사업 실패를 겪고 친구에게 건넨 차였다. 양 씨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미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차를 넘겼으나, 명의를 바꾸지는 않았다. 양 씨는 현재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겨서 차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나마 7월 초 주민센터 사회복지공무원의 도움으로 친구에게 넘긴 차를 대포차로 처리한 뒤 다시 수급자 신청을 했다. 지난 28일에는 부평구청 직원이 유정 씨의 집을 방문해 양 씨와 자녀의 부양능력을 검토하고 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그녀의 가족은 30일 현재 서류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양 씨는 “그간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라며 “수급자로 선정돼서 이웃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만약 유정 씨 가족이 수급자로 선정되면 그녀도 자부담 없이 활동보조 기본 지원 시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양 씨 부부는 수급자가 돼도 활동보조를 신청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양 씨는 “장애등급 재심사 비용도 문제지만,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맡기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던 문상민 활동가는 유정 씨가 활동보조를 받아 장애인야학에 다니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양 씨 부부는 "인지능력이 부족한 애가 어떻게 학교를 다니느냐"라며 "어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신변처리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라고 했다. 양 씨 부부는 부모로서 장애가 있는 유정 씨를 돌볼 책임이 오롯이 본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유정 씨가 거실에 누워 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고 있다.

 

그러나 유정 씨의 장애가 당사자와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면서 그들은 20여 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유정 씨는 같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고, 또래들이 으레 품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살아왔다. 양 씨 부부는 아이를 돌보느라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녀의 기저귓값조차 제대로 대지 못하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지난 6월 말 그녀의 집에 찾아갔던 민들레센터 조경미 사무국장은 유정 씨의 장애는 부모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져야 할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조 사무국장은 “이 가족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라며 “그런데 유정 씨네 집에 찾아가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버님께서 휠체어만 필요하다고 하셨다. 유정 씨가 야학 수업이라도 받으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이 아이가 뭘 할 수 있겠느냐’라는 답이 돌아왔다”라고 술회했다.

 

조 사무국장은 “계속 부모가 그녀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모가 나이 들었을 때 그녀는 시설에 보내지거나 유정 씨의 언니에게 떠맡겨질 것”이라며 “부모가 유정 씨를 항상 돌볼 필요는 없다. 유정 씨가 집에만 있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유정 씨에게도 활동보조가 제공돼 지역사회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 사무국장은 “유정 씨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 맞는 활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당장 문해교육을 받는 것은 어렵겠지만, 미술 같은 교육프로그램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장애인야학에 다니게 된다면 근처 장애인야학과 함께 유정 씨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아보겠다.”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이후 유정 씨의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30일 양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양 씨의 목소리가 밝았다. 양 씨는 휠체어 덕분에 밖에 나갈 수 있어 그녀가 기뻐한다며, 민들레센터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휠체어 덕분에 아이와 함께 동네 공원에도 자주 나가고 있어요. 아이가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민들레센터에 감사한다고 꼭 전해주세요.”

 

바깥나들이만 나가면 유난히 즐거웠다는 유정 씨. 그녀는 언제쯤 휠체어를 타고 동네, 야학, 지역사회를 활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개인의 장애를 오롯이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고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그녀가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그녀의 가족이 가난과 장애로 시달리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올려 0 내려 0
갈홍식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등급제 폐지 논의, 이대로 가면 말짱 도루묵된다” (2014-07-31 18:10:43)
활동가대회에서 힘 받고 새롭게 준비하는 활동가들 (2014-07-29 13:06:50)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인권의 도시는 상상하라! '시설없는' 사회를~, 뉴질랜드 people first에서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운동을 듣다!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나의 괴물 장애아들,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가 잠...
2003년 10월 베를린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명단 하나가 발표...

두 살에 와서 서른아홉까지 시설에서 살...
“시설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 없어요”
선택권도, 미래도 없던 시설의 삶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