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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낙태? ‘여성의 재생산권’ 중심으로 다시 보자!
장애여성공감, 장애아 낙태와 모성권, 임신출산 결정권 문제 토론
“여성운동과 장애인운동 연대했던 일본 사례에서 배워야”
등록일 [ 2014년12월08일 23시01분 ]

2007년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낙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만 아이가 불구로 태어나거나 하는 불가피한 경우는 용납될 수 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은 당시 장애인계로부터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고, 지금까지 장애인의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는 대표적인 발언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은 장애인계가 낙태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계는 줄곧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와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의 폐지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장애인계의 이러한 ‘장애아 낙태 반대’ 요구는 ‘낙태 비범죄화’를 주장해 왔던 여성운동의 입장과 충돌하기도 한다. 실제로 ‘장애아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장애인단체 중 일부는 낙태반대운동연합에 가담하는 일도 있어서 이런 논란은 더욱 가중된다. 장애인의 ‘생명권’이 먼저냐, 여성의 임신·출산 ‘선택권’이 먼저냐는 대결구도 속에서 장애인계가 후자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애여성공감이 8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낙태 문제를 이러한 경향을 뛰어넘어 ‘여성의 재생산권’을 중심으로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장애여성공감 진경 연구정책팀 활동가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한 장애여성공감 진경 연구정책팀 활동가는 모자보건법에 대한 장애인계의 비판과 문제 제기 속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라고 비판했다.

 

주되게는 장애인계에서 모자보건법을 둘러싼 논란이 제14조 1항이 담고 있는 ‘우생학적 사유’에 대한 문제 제기에 집중된 나머지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태아를 낙태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산모와 가족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경제적인 사유와 복합적인 맥락이 당시 논란에서 많이 삭제”되었다는 지적이다.

 

진경 활동가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장애여성에게 낙태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장애여성운동에서도 문제 제기가 되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이와는 다른 방향의 문제의식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장애여성이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장애여성은 아이를 낳고 싶어도 주변에서 말리거나 낙태를 권유 또는 강요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 못해서 피임방법을 잘 모르거나 폭력적인 상황에서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열악한 상황인 경우가 많기에 충분히 가정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진경 활동가는 이처럼 장애인계에서 장애 또는 비장애여성의 임신·출산 선택권 및 재생산권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던 것은, 이와 대비돼 ‘모성권’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던 장애여성운동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는 “장애여성운동에서는 장애여성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지 않고, 아이를 낳고 키워도 사회에서 엄마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을 이야기해왔다”면서 “(이런 영향으로) 장애여성 모성권을 부정하는 한국사회의 인식을 바꿔나가고, 장애여성 모성보호 지원체계를 만든 것은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진경 활동가는 장애여성의 모성권을  인구정책에 종속시키려는 국가의 태도와 이런 논리를 활용하려는 장애여성단체의 경향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일례로 최근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와 업무협약을 맺은 한국출산장려협회장이 “여성장애인들의 건강한 출산으로 우리나라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고 한 발언을 지목하며, 장애여성단체가 모성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취하는 전략이 문제가 없는지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모성권만 강조하게 될 경우에 10대든 성인이든 '모성/어머니 됨'의 영역과 구분되는, 성관계 피임, 임신, 출산, 낙태 등에 대한 재생산 이슈가 가려질 수 있다”며 “또한 ‘모성권’이라는 말은 재생산권 이슈에서 장애남성을 가리고 있다”는 한계도 지적했다.

 

한편,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임신출산 선택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모자보건법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을 넣기 위한 운동을 해 왔으며,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12년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개정안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산모의 요청에 의해 낙태를 허용하고, 12~24주에는 경제적 사유가 포함되고, 우생학적 사유 및 배우자 동의 규정을 삭제하도록 했다.

 

그러나 진경 활동가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개정안도 여전히 “낙태 허용 사유로 전염성 질환이 남아있고, ‘태아 기형이 다발성 또는 심각한 기형으로 태아와 모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명시한 부분은 장애인차별의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장애여성공감은 8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장애여성 재생산권 논의'를 중심으로 한 장애아 낙태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진경 활동가는 장애여성운동 진영이 이러한 중요한 쟁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면서, “출산장려 흐름에 장애여성이 배제되어 있으니 포함시키라고 주장하며 출산지원체계를 만들어낸 장애여성운동과 여성운동의 간극이 계속 심화될 수도 있다”라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사례를 제시하며 장애인운동과 여성운동이 ‘재생산권’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연대할 것을 주문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낙태 금지를 요구하는 우파 세력에 맞서 여성운동과 장애인운동이 연대해, 1996년 낙태 허용 요건에서 우생학적 사유는 삭제하고 사회경제적 사유는 명시하는 ‘모체보호법’을 제정한 바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50여명의 청중이 토론회장을 가득 메워 장애여성 재생산권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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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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