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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농성, 1000일의 시간과 11개의 영정
5월 17일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1000일
“권력의 무책임과 잘못된 방향” 폭로하는 전면전만 남았다
등록일 [ 2015년05월15일 19시15분 ]

그날 광화문역은 경찰들로 가득했다. 경찰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전원을 차단하고 방패로 계단과 경사로를 막아섰다. 꼼짝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11시간 동안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 안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경찰의 제압을 뿌리치며 벗어나고자 했다. 그들은 밤이 되어서야 광화문역사 한쪽 바닥을 차지할 수 있었다.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무기한 농성의 시작이었다.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버텼던 사람들은 그날 땀에 ‘쩔은’ 몸 그대로 은박 스티로폼 하나만을 깔고 바닥에서 잤다. 다음날 그곳엔 시민들의 서명을 받기 위한 테이블이 설치되고 며칠 뒤엔 천막이 쳐졌다. 시간이 갈수록 제법 농성장다운 모습을 갖춰 갔다.

 

그러던 중 그해 10월, 농성장에 영정 하나가 들어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농성장을 지키던 그들 벗, 김주영이었다. 중증장애여성이었던 그녀는 활동보조인이 없는 새벽에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함께 소리치며 싸우던 벗이 이젠 고요히 맞은편 테이블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파주에 살던 장애남매가 그녀 옆에 자리했다. 그 아이들도 부모님이 일하러 나간 사이 일어난 불을 피하지 못했다. 열세 살, 열한 살의 어린 남매였다. 1000일이 가까워진 지금, 농성장엔 11개의 영정이 놓여있다. 그중 절반은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싸워나갔던 사람들이다.

 

▲광화문역에 있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 17일로 농성 1000일을 맞이한다. 농성장에 놓인 11개의 영정.

 

1000일의 시간, 반복되는 죽음, “싸워야 한다”

 

11명의 죽음은 이를테면, ‘증언’ 같은 거였다. 이 국가가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표독스럽게 죽이는지에 대한.

 

김주영 씨는 2012년 당시 최중증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활동보조 시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루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절반은 홀로 있어야 했다. 그래서 화재가 발생한 그 날 밤, 문까지 겨우 세 발자국 되는 거리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파주 남매 중 동생 지훈은 뇌병변장애 1급에 청각장애 2급의 최중증장애인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등급재심사에 드는 비용, 활동보조 이용 시 발생하는 본인부담금, 성인에 비해 턱없이 짧은 이용 시간 등을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하지 ‘못’ 했다. 그리하여 가난으로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 열세 살 누나가 열한 살 동생을 돌봐야 했다.

 

기초생활수급 탈락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간질 장애가 있던 박진영 씨는 장애등급 의무 재판정 결과 4급에서 ‘등급 외’로 하락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장애 1~4급은 일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나 5~6급이나 ‘등급 외’는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별도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간질 장애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적절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그에게 기초생활수급비는 삶의 마지막 보루였다. 수급 탈락의 위기는 그에게 극한 두려움으로 닥쳐왔다. 하지만 사회는 삶의 벼랑에 선 그를 끝내 절벽으로 떠밀었다.

 

광화문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엔 그러한 죽음들이 쌓여있다. 불이 났지만 달아날 수 없었고, 아팠으나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누군가에게 맞아서 죽은 사람들.

 

지난 1000일의 시간은 사람이 이렇게 살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회에 알리는 날들이었다.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신문 한편에 조용히 묻혀 잊힐 수도 있었던 이들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꺼내 얼굴을 알리고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외쳤다. 여기 김주영이 죽었다, 여기 27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지역사회에 나온 지 6개월 만에 송국현이 불타 죽었다, 여기 시설에서 또 한 명의 장애인이 죽었다,…… 이 죽음의 진상을 밝혀라!  

 

▲고 김주영 활동가의 영정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013년 11월 1일, 유엔 에스캅 정부 간 고위장관급회의가 열리는 송도 컨벤시아 1층을 점거하며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에 대한 복지부 장관의 사과를 촉구했다.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는 동안 그 목소리는 확장됐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중증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매우 낯선 풍경이었기에, 서울 한복판 광화문역에 자리 잡은 것은 제법 상징적이었다. 그곳에 있으며 이들은 과거 대한문 앞에 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 등 노동자들과도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고, 사회의 ‘정상성’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벽장 안에 갇혀있던 성소수자들과도 더욱 깊게 손잡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낯섦은 일상적 풍경이 되기도 했다. 너무 익숙하여 서명하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적당히 하고 나가야지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일부 사람들의 볼멘 시선이 여기저기서 마음을 쑤시던 날도 있었다. 이 잔혹한 현실을 많이 알렸다고 생각했는데 광화문역 농성장은 여전히 섬처럼 외로웠다. 큰 목소리로 오래 외쳤다고 생각했는데 장애인 당사자 중에도 여전히 “나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장애등급제라도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혜택을 보지, 이거라도 없어지면 모든 복지혜택이 사라질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싸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은 반복되었다. 그리하여 바로 그것이 더 독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세계의 끝, 가장 약한 이들이 세계를 확장한다

 

이들은 받는 이(장애인)의 필요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주는 이(국가)의 편의에 맞춰 짜여있는 장애등급제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장애인복지는 의학적 기준으로 나뉜 6개의 등급에 따라 제공된다. 등급이 같아도 장애 유형, 장애 정도, 소득 수준 등은 다름에도 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지체장애 1급과 청각장애 1급, 지적장애 1급이 필요로 하는 복지는 분명 다르지만 이들은 같은 1급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복지를 제공받는다. 이것이 장애등급제로 이뤄져 있는 현 장애인복지의 문제점이다. 그래서 판은 다시 짜여야 한다. 받는 이의 기준에 맞춰서. 장애인당사자의 욕구와 필요를 반영한 복지체계로. 국가는 장애인의 삶을 보고 그 각자의 삶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복지가 치욕의 대가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현재 복지는 사람을 벌거벗겨 놓고 그가 가진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간신히 주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이 법에 따르면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부양의무자다. 즉, 부모와 자식, 부부간엔 서로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 수급비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받을 수 없는 사람 중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만 준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독소조항이다. 가령 장애인의 경우, 시설에서 나와 수급자가 되려고 해도 부모가 살아있다면 부모 소득을 통해 자신의 수급 여부가 결정된다. 서류 상엔 부모가 존재하나 실제로는 가족관계가 단절되었다면, 각종 서류를 통해 가족관계 단절 여부를 자신이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복지 수급자들은 부양의무자가 자신을 부양할 수 없음을, 부양의무자로 지목된 이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부양할 수 없음을 끊임없이 해명해야 한다. 그 치욕을 감당할 수 없어 숱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싸움은 그렇게 이 세계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싸움이다. 그들은 약한 바람에도 세차게 흔들리는 세계의 끝에 위치한 이들이다. 끝은 경계이고 가장자리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무너질 때, 세계는 확장된다. 나무의 끝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새순에서 이파리가 피어나고 꽃이 피어나듯, 새 세계로의 확장은 끝에서 가장 부드럽고 역동적으로 일어난다. 세계가 확장됐을 때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리. 그때, 장애와 가난을 이유로, 어떠한 조건들을 이유로 이 땅에서 추방되었던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광화문역 농성장은 바로 그 현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힘이 세다.

 

2015년 5월 17일은 농성 1000일이 되는 날이다. 농성을 이끄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은 농성 1000일을 맞아 또다시 싸움을 준비한다. 농성 3주년이 되는 8월 21일까지 95일 동안 매일 매일 몸에 쇠사슬을 걸고 사람들의 출퇴근길을 막아설 것이다. 이들이 막는 것은, “도로 교통이 아닌,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을 배제하고 가는 자본의 속도, 권력의 속도다.” (박경석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공동대표)

 

아마 95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교통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와 급작스럽게 만난 사람들은 10년 전 장애인들이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점거할 때처럼 손가락질하며 비난을 퍼부을지도 모르겠다. “병신들이 집에나 있지 왜 기어 나와서”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싸움으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들어서지 않았나.

 

▲지난해 4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고 송국현 씨 죽음과 관련해 문형표 복지부 장관에게 면담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항의의 의미로 면담요청서를 태우고 있다.

 

모든 ‘절차’를 따랐음에도 목소리가 권력의 꼭대기에 닿지 않을 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전면전뿐이다. 이들은 이러한 전투로 “권력의 무책임과 잘못된 방향”에 대해 폭로할 것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 사회가 놓치고 가는 것은 무엇인지,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잘라내는 것들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는 95일 동안 출퇴근 시간에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이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이의 얼굴과 마주할 것이다. 당신은 가난하고 힘없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조건이 박탈당한 사람의 얼굴을 응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물을 것이다. 빈곤의 최전선에 선 이에게 사회는 왜 다른 삶의 선택지를 주지 않는가. 노동하지 못하는 인간은 존엄하지 않은가. 그러한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해도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은 누구에 의해 보장받아야 하는가. 가족? 이웃? 국가? 당신은, 이 사회는 이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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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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