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9월16일mo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28년 만에 국회에서...‘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해법 논의
형제복지원특별법 공청회...진상규명 해법 놓고 엇갈린 입장
피해자들 “국가의 명백한 인권침해” 특별법 제정 호소
등록일 [ 2015년07월04일 03시25분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논의가, 이 사건이 알려진 지 무려 28년 만에 다시 열렸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당시 한 검사의 인지수사를 통해 처음 실상이 드러난 후 국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으나, 몇 달 후 6월 항쟁 등 사회적 분위기에 묻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이후 부실한 재판 끝에 박인근 원장은 고작 2년 6개월 간 구속되었을 뿐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12년간 1만8천여 명이 죄 없이 수용되고 513명이 죽어 나가게 한 죗값 치고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간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형제복지원 사건은 2012년 홀로 국회 앞으로 나아가 1인 시위를 벌인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노력으로 다시 사람들의 기억에 소환됐다. 그 결실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아래 특별법)이 발의됐고, 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공청회를 통해 법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하게 된 것이다.

 

▲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특별법 공청회에서 진술인들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진술한 피해생존자들과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아래 형제복지원대책위) 관계자들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국가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국가 책임을 단정할 수 없다며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와 긴 시간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국가의 위법적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vs “명백한 국가의 인권침해”


무엇보다 쟁점이 되었던 것은 1975년 제정된 내무부훈령 410호에 의한 ‘부랑인’의 강제수용이 당시 법률에 어긋나는지 여부였다.


진술인으로 나선 행정자치부 자문 변호사인 이근동 변호사는 “(1988년 당시) 형제복지원 판결을 살펴보면 법원은 내무부훈령이 당시의 사회복지사업법, 생활보호법, 심신장애자복지법 등에 근거하여 제정된 것으로서 적법한 규정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내무부훈령이 법률상 근거 없이 제정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위와 같은 논리적 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법원의 판결 내용을 부인하여 가해자들의 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법리적 근거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며, 내무부훈령 410호의 규정이 위헌임을 밝히는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내무부훈령 410호가 당시의 어떤 법률에도 근거하지 않은 위법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무부훈령 410호의 근거가 되었던 당시 생활보호법은 “65세 이상의 노쇠자, 18세 미만의 아동, 임산부, 질병, 사고 등의 결과로 인하여 근로능력을 상실하였거나 장애로 근로능력이 없는 자”를 대상으로 “국가 등이 생계비·의료비 등을 지원하거나 시설 등에 수용하여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었다. 조 변호사는 “하지만 당시 형제복지원에 끌려온 사람 대부분이 18~65세 이내였다. (…) 또, 껌팔이, 지게꾼 같은 사람들도 잡혀 왔는데 이들은 분명하게 근로 의사가 있는 사람들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는 생활보호법의 취지에 맞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제복지원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가 '내무부훈령 410호'의 문제점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또 “당시 신민당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 내부 근무평점 관련하여 구류자 2~3점, 형제복지원 입소는 5점으로 매겨져 있었으며, 1986년 전체 수용자 3965명 중 수용의뢰기관이 경찰인 것이 3117명, 구청인 것이 253명이었다”며 “이는 경찰과 관공서에 의해 ‘근무평점’을 위해 조직적으로 강제수용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명백한 국가책임이 있음을 주장했다.


“민·형사소송으로 해법 찾아야” vs “대규모 피해 사건, 특별법만이 해답”


이 변호사는 또 특별법 제정 이전에 민사 또는 형사 소송 등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책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이 28년 전 일이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부터로 본다”며 “기존 판례에서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어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즉,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어 있던 이들은 사실상의 권리 박탈 상태에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소멸시효 적용에서 예외로 봐야 한다는 견해다.


하지만, 이것이 특별법 제정에 반대해야 할 이유일 수 없다는 반론이 나왔다.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민사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과실 입증을 배상을 제기하는 쪽에서 해야 하지 않나”라며 “지금 피해자들이 그걸 직접 할 능력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형제복지원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고, 이 분들은 여전히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 성지원, 충남 양지원, 충북 광성복지원... 비슷한 사건들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이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드러날 당시 유사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다른 시설의 문제들도 있었다며, 형제복지원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역차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1987년 당시 부랑인 시설은 36개소로 1만 6천여 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530여 명을 수용하고 있던 대전 성지원의 경우 20여 명의 원생이 폭행과 강제노역을 견디다 못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충남 양지원에서는 수용자 89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특별법 제정을 망설일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제주 4.3특별법 사례처럼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봐야 한다”며 “우선 제기된 문제부터 해결하는 데서 시작해야 물고가 터지고, 이후 다른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라고 말해, 형제복지원특별법이 이후 다른 수용시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활동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과거사위)를 통해 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됐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는 지적이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인권을 중시한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도 이 사건이 해결하지 못했다.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는 “야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10년 동안 왜 해결하지 못했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때는 알릴 수조차 없었다. 또 다시 경찰에게 잡혀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던 시기였다”며 “내가 2007년에 (형제복지원에 함께 수용되어 있었던) 누나와 아버지를 찾았는데, 그 때는 과거사위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1인 시위 뿐이었고, 그래서 이제야 세상에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측에서도 직접 나와서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었는지 설명하고 구체적 자료를 제시해 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

 

▲한종선 씨가 공청회의 마지막 발언을 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자신이 직접 형제복지원에서 겪은 일을 쓴 책 『살아남은 아이』와 피해생존자 11명의 구술기록이 담긴 책 『숫자가 된 사람들』이 놓여 있다.

 

이날 공청회의 마지막 발언은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피맺힌 호소로 마무리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국가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회정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목표로 해서 국가가 밀어붙인 것입니다. 전국의 공권력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이 저로 인해 다시 파헤쳐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트라우마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공청회를 마친 후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청회 없이 여야 합의로 법이 통과되길 바랐지만, 어쨌든 공청회를 통해 다시 한 번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며 “오늘 발언들이 국회 속기록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빠르게 특별법이 제정되리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올려 0 내려 0
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의 대변인, 진선미 의원을 만나다
AP통신, 형제복지원 '노동착취, 성폭력' 등 집중 보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제2회 '물푸레기금' 수상
감금의 역사 : 국가에 의해 사라진 사람들
‘숫자가 된 사람들’, 자신의 이름을 찾고 당당히 말하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회앞 농성 58일 만에 마무리
한국형 복지의 살아있는 과거, 형제복지원에 묻는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6개의 방 (2015-07-04 12:01:46)
역도선수 故 김병찬 고독사, “사회적 타살” (2015-07-03 17:47:43)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인권의 도시는 상상하라! '시설없는' 사회를~, 뉴질랜드 people first에서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운동을 듣다!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