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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방
동자동 9-20, 단전·단수된 지 일주일 넘어 화장실에선 악취, 냉장고에선 반찬 썩어, 잠은 복도에서
등록일 [ 2015년07월04일 12시01분 ]

▲동자동 9-20의 3층.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한낮임에도 어둡다. 301호에 사는 김광식 씨가 자신의 방문 앞에 서 있다.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악취가 덮쳐왔다. 화장실 냄새였다. 지난 6월 23일 단전·단수가 된 뒤로 화장실은 충분히 ‘관리’되지 못한 게 분명했다. 건물 철거로 문짝이 떼어진 채 내부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층과 층 사이의 화장실 앞엔 수십 마리의 파리가 꼬여있었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9-20. 지난 2월 4일, 지하 1층, 지상 4층의 쪽방 건물에 구조 안전진단을 이유로 건물주의 퇴거 명령이 떨어진 지 5개월이 흘렀다. 빈틈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던 쪽방엔 이제 6가구만이 남았다. 5월 말, 빈방의 방문을 떼어내는 것으로 시작된 철거 공사는 지난 6월 23일, 기어코 단전·단수에 이르렀다. 더는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을 헤매다 다쳤고, 배변을 보고 물을 내릴 수 없었으며, 씻지 못해 땀으로 끈적해진 몸으로 일주일을 지내야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에선 마른반찬마저 썩어 악취가 났다. 한 끼 식사의 반찬이었던 것들을 그렇게 버려야 했다. 악취와 더위로 방에서 자기 힘들어 밤엔 복도에 이불을 깔고 잤다. 그러나 그 복도마저 철거 잔재로 어지럽고 위험하다. 건물이 뼈대를 드러내고 악취를 풍기는 것처럼 지금 그들 삶이 메마른 뼈대를 드러냈다.

 

건물은 사유재산이었고 그리하여 건물은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건물에 대한 처분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건물주에겐 건물주의 사정이 있고 삶이 있는 것처럼, 비루할지언정 9-20에 사는 이들에겐 그들 사정이 있고 삶이 있었다. 그래서 건물에 대한 철거는 김상섭, 김병택, 박승대, 박중명, 김광식, 김창중 그들 삶 그 자체에 대한 철거로 귀결됐다. 그들은 빈곤과 함께 태어나 단 한 번도 빈곤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듯했다.

 

방의 주인

 

“방에 들어가면 냄새나요. 냉장고 반찬 썩어서. 씻는 건 옆 건물에 아는 사람 사니깐, 얼른 가서 사람 없으면 씻고 나오고…. 요 앞 목욕탕 회원증이 있어요. 쪽방 상담소에서 쪽방 사람들한테 발급해준 건데, 그게 있으니깐 씻는 건 거기서도 씻고. 화장실은 왔다 갔다. …마음이 오죽 아파요, 그냥 참고 사는 거지, 고통이야.”

 

▲지하 9호에 사는 김상섭 씨.

▲김상섭 씨가 사는 지하. 한낮임에도 빛 한 점 들지 않아 매우 어둡다.

 

지하 9호에 사는 김상섭 씨(79세)는 그날도 9-20 건물 앞 나무그늘 아래 쪼그려 앉아있었다. 겹겹이 쌓인 주름 아래 얇게 드러난 그의 눈은 막막함에 길을 잃었다. 평생 가난한 삶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매일 느껴야 했던 가난의 무게가 괜찮았던 건 아니다. 그의 부모님은 전라도에서 농사를 지었고, 가난했다. 그는 9살 때 부모님을 여윈 뒤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학교 문턱 한 번 밟아보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막노동뿐이었다.

 

“막노동하니깐 돈 누가 많이 줘요? 겨울나면 또 일하고 먹고 살고, 짐 짊어지고 힘든 일 했지. 남의 발바닥 밑에서 일했어요.”

 

서른 살쯤 시골 친척의 소개로 여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남은 건 소아마비가 있는 아들뿐. 그에겐 아들의 존재도 무겁다. 70세가 넘은 나이까지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4년 전 국민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하여 수급자가 됐다. 한평생 게으르게 살아본 적 없건만 모은 돈도 한 푼 없고 이젠 갈 데마저 잃었다. 없는 돈이 걱정되고 15년간 살았던 이곳을 떠나면 “왕따처럼 떠돌이가 될까 봐” 두렵다.

 

9-20 비대위원장인 101호 김병택 씨(78세) 방은 1층 맨 끝에 있다. 박정희 정부가 넝마주이 관리를 위해 만든 자활근로대에서 그는 관리자로 있었다. 정릉천에서 고물상을 하며 고물상협회 서울지부장이기도 했던 그는 2000년대 말, 정릉천 복개 공사로 강제 철거당했다.

 

“그때 복개 작업으로 쫓겨난 사람들 뒷바라지 하려고 서울역에 같이 나왔지. 내가 별명이 ‘정릉 털보형’이라고, 사람들 관리하고. 난 6남매 있으니깐, 대장하면서 장사하니깐, 수급자 아니지.”

 

▲101호 김병택 씨. 그는 9-20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병택 씨가 문짝이 떼어져 나간 방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 6시부터 봉사활동을 하며 지낸다. 종로 3가에 있는 서울꽃동네에서 급식 봉사도 하고, 자식들이 보내준 돈을 천 원짜리로 모두 바꾸어 서울역 지하에 있는 그의 ‘동료’ 30명에게 매일 천 원씩 나눠준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엔 9-20 철거 때문에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매일 병원에 가게 됐다. 며칠 전엔 병원 간 사이 인부들이 그의 방 옆에 있는 복도 창문을 모두 뜯어냈다. 이 때문에 야밤에 고생했다. 더워서 방문 열어 놓고 잤더니 뜯긴 창문 사이로 비가 다 들어온 것이다.

 

“이런데도 담당 공무원 중에 나와 보는 사람 하나 없어. 무슨 국민을 위해? 구청장, 시청장 한 명 안 오는데. 쪽방 사람들 안 보이는 거예요. 국무총리는 다른 데 좋은 데 가고 여긴 안 와요, 무시하는 거지. 선출직 공무원들이 올 때까지 투쟁하겠다, 그래도 안 되면 그다음엔 정당을 비판하겠다! 이거야.” 

 

203호 박승대 씨(53세)는 가리봉, 구로동, 청계천, 영등포 등지의 고시원과 쪽방 등을 돌며 살았다. 부모님이 있긴 하지만 친부모는 아니다. 결국 서른 살 되던 해 부모와 헤어졌다. 수급 신청은 하지 않았다. 그는 방송국 엑스트라로 일해 한 달 30~40만 원가량 번다.

 

“수급자 그런 거 싫어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노력으로 먹고살아야죠. 몸 말짱한데.” 

 

그는 6년 전, 9-20에 오기 전에 살았던 고시원에서도 이렇게 쫓겨났었다. 그 자리엔 지금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무허가 판자촌 찾아서 가려고 하는데 10평, 20평 있으면 딱 자리 잡고 내 땅이다, 하고 살면 좋은데. 고시원, 쪽방 10~20년 생활해봐야 거지밖에 되지 않고. 암튼 그런 거 때문에 아직 못 떠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가 철거지역이잖아요. 철거지역 같은 합당한 보상이 나와야 하는데. 다른 데 옮긴다고 해봐야 여기랑 비슷하고. 이런 일 몇 번 겪었습니다.”
 

▲9-20 건물 앞 나무 그늘에서 김상섭 씨가 앉아 쉬고 있다. 박승대 씨가 건물 2층에서 바깥을 내다 보고 있다.


공사는 진행 중

 

지하 9호, 101호, 203호, 303호, 301호 다섯 개의 방엔 아직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문짝이 달린 방은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311호 남자는 단전·단수가 시작된 6월 23일 밤, 세면장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이 방문이 뜯겨나갔다. 잠시라도 방을 비우면 방문이 뜯기는구나. 사람들은 자기 문짝도 떼어질까 싶어 자리를 뜨지 못한다.

 

방문 뜯긴 방 안엔 그전 주인의 얼굴이 남아있다. 누군가의 방엔 초록색 막걸리병이 수두룩하고, 누군가의 방문 틀엔 청테이프로 몇 번이고 에워싸며 수리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떤 이는 냉장고, 장롱, TV, 시계, 겨울 점퍼까지 모두 두고 갔다. 이 모든 것들을 두고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공사 잔재들과 남아 뒹구는 이 흔적들은 자기만의 방 안에서 살뜰히 삶을 일궈낸 자국들이다. 

 

서울시는 더는 개입할 방법이 없고 중재 수단이 없다고 했다. 건물주 또한 주민들과 몇 차례 이야기하고 있으나 양측에게 만족스러운 합의안은 도무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여전히 공사는 진행 중이다. 삶이 뜯어져 나가는 소리가 그들 뼛속을 후벼 판다.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9-20 건물 뒤편으로 고층의 STX 건물이 대비를 이룬다.

▲9-20 건물 입구에 붙어있는 글. "문짝 뜯어버린 화장실! 건물주, 사용해보아라!"
▲문짝이 뜯기고 단전·단수가 된 화장실. 악취가 심하다.
▲단전·단수가 된 세면장. 촛대가 세워져 있다. 물은 주변 동자동 사랑방, 쪽방 상담소 등에서 각자 떠와서 사용한다.
▲(위) 강제퇴거 공고가 처음 붙었던 지난 2월의 9-20의 2층 복도. (아래) 철거가 진행된 7월 현재의 모습.
▲방문 뜯긴 311호. 단전·단수가 시작된 6월 23일 밤, 311호 남자가 세면장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이 방문이 뜯겨나갔다.
▲사람들이 나간 뒤 철거가 이뤄지고 있는 빈방들.
▲철거 잔재가 복도에 어질러져 있다.
▲사람들이 나간 뒤 철거가 이뤄지고 있는 빈방들.
▲사람들이 나간 뒤 철거가 이뤄지고 있는 빈방들.
▲철거가 상당 부분 진행된 9-20 4층. 4층은 모두 퇴거했다.
▲사람들이 나간 뒤 철거가 이뤄지고 있는 빈방들. 문짝은 떼어지고 자물쇠만 남았다.
▲자물쇠가 채워진 방.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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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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