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2월13일fri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획연재 > 장애학연구노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개혁 우생학과 인류유전학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4]
우생학이라는 타이틀의 소멸과 내용의 보존
등록일 [ 2015년07월29일 20시37분 ]

주류 우생학이 누렸던 대중적 인기와 지위는 1930년대를 정점으로 조금씩 약해지다가 전후에는 나치가 자행했던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자 우생학은 일정한 원칙들은 보존함과 동시에 내부의 극단적 입장들이나 비과학적인 요소들을 스스로 비판하면서 소위 ‘개혁 우생학(reform eugenics)’으로 변모해 나가게 됩니다.

 

개혁 우생학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것으로서 새로운 추동력을 얻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유전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환경도 함께 강조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예컨대 우생학의 열성적 지지자 중 한 명이었던 허먼 멀러(Hermann J. Muller)는 다른 22명의 영국 및 미국 과학자들과 함께 1939년에 작성한 「유전학자들의 선언(Geneticists' Manifesto)」에서 그들의 목표가 유전적 개량에 의한 것이든 환경의 개선에 의한 것이든 가능한 한 최선의 아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공표하였지요.

 

1940~50년대를 거치면서 개혁 우생학은 다시 인간의 질병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인류유전학 내지 의료유전학으로 점차 그 간판을 바꿔 달기 시작합니다. 1925년에 영국에서 칼 피어슨에 의해 창간된 격월간 저널 『우생학 연보(Annals of Eugenics)』는 1954년에 그 제호를 『인류유전학 연보(Annals of Human Genetics)』로 변경했습니다. 1922년에 설립되었던 스웨덴의 국가인종생물학연구소도 1958년에 웁살라대학교의 부설기관이 되면서 그 이름을 의료유전학연구소(Institute for Medical Genetics)로 바꾸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48년에 미국인류유전학회(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가 창립되었는데요. 창립 후 회장직을 맡았던 여섯 명 중 다섯 명은 또한 미국우생학회의 이사이기도 했지요.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록펠러재단은 변함없이 인류유전학계의 거대한 자금줄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1901년에 설립된 록펠러의학연구소(Rockefeller Institute of Medical Research)―지금의 록펠러대학교―를 통하여 의료유전학을 비롯한 생명과학 연구에 힘을 쏟았습니다.

 

1940년대에 인류유전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었지만, 점차 다양한 분야의 광범위한 과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이들의 참여 속에 분자유전학(molecular genetics)이 발전하면서 막연한 가설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유전자의 전모가 점차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1944년에 록펠러의학연구소의 오즈월드 에이버리(Oswald T. Avery)와 그의 동료들은 보통 DNA라고 불리는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이 유전자라는 추상적 개념의 배후에 있는 물리적 실체일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시기에 DNA 조각을 전기적으로 나누어서 유전자의 패턴을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인 전기영동법(電氣泳動法, electrophoresis)도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에 프랜시스 크릭(Francis H. C. Crick)과 제임스 왓슨(James D. Watson)이 그 유명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마침내 DNA의 분자적 구조와 그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처럼 유전자의 물리적 전모가 밝혀지면서 유전자 결정론이 점차 새로운 힘을 얻게 되지요.

 

▲노벨상까지 받은 저명한 인류유전학자들인 허먼 멀러, 라이너스 폴링,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 그러나 그들은 모두 우생학적 사고와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명한 우생주의자들이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멀러, 폴링, 크릭, 왓슨).

 

주목할 만한 것은 인류유전학의 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이러한 인물 중 다수가 우생주의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유전학자들의 선언」을 주도했던 미국의 멀러는 X선에 의한 인공적 돌연변이의 발생을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확립한 공로로 1946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말년에 생식세포선택재단(Foundation for Germinal Choice)의 설립 가능성을 검토하고, 이 재단에서 엄정하게 가려진 우수한 기증자의 정자를 활용하여 인공수정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멀러가 사망한 후 실제로 그러한 기관이 설립되었지요.

 

미국의 백만장자 사업가이자 우생주의자였던 로버트 그레이엄(Robert K. Graham)은 멀러의 구상을 따라 1980년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Escondido)에 생식세포선택을위한보관소(Repository for Germinal Choice)라는 이름의 정자은행을 설립하였습니다. 애초에는 노벨상 수상자들로부터만 정자를 기증받고자 하였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아주 높은 IQ를 지닌 사람이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정자 또한 선별하여 받았다고 합니다.

 

이 기관은 언론에 의해서 흔히 ‘노벨상정자은행(Nobel prize sperm bank)’이라고 불렸는데요, 노벨상 수상자 중 공식적으로 알려진 정자 기증자로는 열렬한 우생학 지지자였으며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1956년에 노벨물리학상을 탄 윌리엄 쇼클리(William B. Shockley)가 있습니다. 쇼클리는 IQ가 100 이하인 사람들에게 단종수술 비용을 의무적으로 지급하자는 제안을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하는 등 우생주의적 신념에 따른 돌출적 발언과 행동으로 많은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기도 하지요. 이곳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을 통해 1982년 4월 19일 첫 번째 아기의 출산이 이루어졌으며, 같은 방식으로 총 218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관은 그레이엄이 사망하고 나서 2년이 지난 후인 1999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전기영동법을 개발한 폴링은 원자와 원자의 화학적 결합에 대한 특성을 밝혀내 1954년에 노벨화학상을, 핵실험 반대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1962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미국의 물리화학자입니다. 그는 DNA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에서는 크릭과 왓슨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고, 겸상적혈구빈혈증(sickle-cell anemia)1)의 원인이 이상 혈색소인 헤모글로빈 S가 혈액 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1949년에 처음으로 입증하여 분자병의 개념이 성립되는 기초를 마련하기도 하였지요. 그렇지만 폴링은 1968년에 결혼기 남녀에게 겸상적혈구빈혈증 및 다른 유해 유전자에 대한 의무검사를 실시할 것을, 그리고 보인자(保因者, carrier)2)임이 확인될 경우 그들에게 문신을 새길 것을 요구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바가 있습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여 1962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크릭과 왓슨 또한 상당히 적극적으로 우생주의적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크릭은 1961년에 대규모 우생학 프로그램의 마련을 요구했으며, 멀러의 생식세포선택재단 구상에 대해서도 열렬한 지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유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아이의 출산을 제한하는 계획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고, 예비 부모들이 재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발급받을 필요가 있다는 조금은 황당한 발언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왓슨 역시 임신한 태아가 동성애자인 것으로 판명될 경우 여성들이 그러한 태아를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가 하면, 1997년에는 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히틀러가 지지했던 것이라면 모두 반대하는 어리석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히틀러가 정신병을 사회에 대한 재앙으로 여겼던 것은 결코 부도덕한 일이 아니다… 히틀러가 지배자 민족(Master Ra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때문에, 우리가 인간을 오늘날보다 좀 더 유능한 존재로 만드는 데 유전학이 사용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서는 안 된다.3)


이처럼 대부분 노벨상까지 받은 저명한 인류유전학 연구자들에게서 우생주의적 언행이 빈번히 나타나는 것을 필연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과도하고 부당한 일이 되겠지만, 그 상관관계를 완전히 배제하거나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인류유전학은 그 동기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과거의 우생학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쇄신된 형태로 물려받았으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이들뿐만 아니라 1960년대 내내 의료유전학계의 주요 인사들도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작업이 ‘우생학’의 한 형태라고 이야기했지요.

 

1970년대에 접어들자 인류유전학은 가장 각광받는 과학의 분야 중 하나가 되었으며, 1973년에 스탠리 코언(Stanley Cohen)과 허버트 보이어(Herbert Boyer)에 의해 이루어진 재조합DNA(recombinant DNA)4)기술의 개발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 이후 인류유전학을 다시 한 번 크게 도약시키게 됩니다. 이 기술을 통해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유전자 조작, 즉 유전자공학(genetic engineering)이 가능하게 되었지요. 유전자 검사 및 치료도 이러한 재조합DNA 기술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시작되어 2003년에 완결된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에 의해 30억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인간 게놈5)의 95% 이상이 분석되고 3만 개가 넘는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지도가 작성되면서, 이제 인간의 생명과 질병을 다루는 인류유전학과 의료유전학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적인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1975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사회생물학(Sociobiology)』과 1976년에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통해 대중화된 사회생물학은 그 주창자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을 사회담론의 수준에서 확산시키는데 상당 부분 활용되었습니다.

 

미국우생학회가 1972년에 사회생물학회(Society for the Study of Social Biology)로 이름을 바꾸고 영국우생학회 또한 1989년에 골턴연구회(Galton Society)라는 이름의 소규모 학회로 전환된 것에서 드러나듯, 1970년대 이후 가장 극단적인 이들을 제외하면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우생학과 유전학은 진화론적 어법을 사용하자면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를 거듭해왔으며, 그 기본적인 관점과 이데올로기를 점차 인류유전학과 의료유전학 내로 이전시켜 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유전학은 국가의 억압적 통제와 인구정책이 아니라, 유전상담(genetic counselling)을 통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차원에서 우생주의적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역량을 획득하게 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경쟁 문화의 전면화와 생명공학 산업의 발흥이라는 사회적 조건은 이러한 역량을 더욱 강화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 1) 겸상적혈구빈혈증(sickle-cell anemia)은 주로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미국의 흑인들에게 발병하는 유전질환이다. 고산지대에 있거나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혈액 내 산소 분압이 낮아지면서 헤모글로빈의 분자구조에 이상이 생겨 낫 모양(겸상)의 적혈구가 생성된다. 겸상적혈구는 쉽게 파괴되어 심한 빈혈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모세 혈관을 막으면서 육체적 피로, 통증, 뇌출혈, 폐․심장․신장의 기능 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

 

각주 2) 보인자란 기본적으로 어떤 유전병과 연관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각주 3)  James D. Watson, “Genes and politics”, Journal of Molecular Medicine 75, 1997, p. 624.

 

각주 4)  재조합 DNA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를 사용해서 DNA의 사슬을 절단한 후 연결효소(ligase)를 사용하여 그 단편을 다른 DNA에 연결해 만든 잡종 DNA를 말한다. 보통 한쪽의 DNA는 벡터(vector, 유전자의 운반체)이고, 다른 한쪽은 목적으로 하는 유전자를 함유한 DNA 단편이다.

 

각주 5)  ‘게놈’([독]genom, [영]genome)은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한스 빈클러(Hans Winkler)가 ‘gene’(유전자)와 ‘chromosome’(염색체)를 합성하여 1920년에 처음 창안한 용어이며, 일반적으로 한 생명체가 지닌 모든 유전 정보의 집합체를 뜻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유전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올려 0 내려 0
김도현 비마이너 발행인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우생학 ②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우생학 ①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산전 검사와 선별적 낙태 (2015-08-03 16:46:44)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우생학 ② (2015-07-20 22:50:03)
(사)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지원사모집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대구 희망원 거주인들은 탈시설을 원한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방안을 ...

휠체어 탄 장애인이 왜 노숙하냐고요?
탈시설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9명, 어떻게...
우생학,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을까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