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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통역 안 되는 필리버스터, 청각장애인의 권리는 어디에?
국회, ‘예산 때문에’ 필리버스터에 수화통역 지원 못 해
등록일 [ 2016년02월26일 20시58분 ]

국회에서 43년 만에 필리버스터가 부활했으나 수화통역이 지원되지 않아 청각장애인은 배제되고 있다. 26일 저녁 9시 현재, 배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가고 있다. ⓒ국회
‘국민감시법’이라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야당의 고투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나흘째 이어지면서 이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가 생산되고 있다. 텅 빈 국회의사장에서 저 홀로 서서 몇 시간씩 발언하는 모습,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도 토론을 이어가는 모습 등은 정치에 대한 냉소가 익숙했던 사람들을 새롭게 깨웠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이렇게 몇 날 며칠, 국회에서 열띠게 논의하는 것에 전 국민이 관심 기울이고 경청한 적이 있던가. 그것은 국회의원들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논리정연한 언어이기에 나타난 반응이기도 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의 말은 실로 귀했다. 현재 국회 정보위원회에 있는 김광진 의원은 짧은 준비시간에도 불구하고 5시간 동안 테러방지법이 왜 제정되어선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했으며, 은수미 의원은 과거 안기부(현재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고문받았던 당사자로서 인간 존엄에 관한 이야기로까지 논의를 확장했다.
 

물론 필리버스터를 이어가 봤자 무어 하느냐는, 허무에 물든 반응도 있다. 그러나 사건은 기대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염원한다면 그에 응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시작은 시작점일 뿐이다. 긴 흐름을 여는 하나의 단계. 그래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이후’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막다른 골목 끝에서 하나의 안으로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다양한 ‘다음’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래서 허무주의도 다양한 ‘다음’ 단계의 양태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외에 또 어떤 모습이 있던가.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법과 자기 삶의 연계성에 대해, 자유에 대해, 역사에 대해, 권력에 대해 사유한다. 사유가 정치적 행위자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고려한다면 법 제정 여부와는 별개로 지금 이 순간을 낙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물음을 던져 본다.
 

그러나 지금, 이 정치적 장에서 배제되는 시민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이다. 현재 필리버스터가 생중계되는 국회 방송에선 수화통역이 지원되지 않는다. 국회 방송 측은 수화통역은 예산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그리고 장시간 노출되는 필리버스터에 대해선 지금 당장 지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실제 김용익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6일 자신의 발언 전에 “국회방송에 수화통역을 부탁했으나 전례가 없고 한정된 예산 때문에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라면서 수화 통역이 ‘거절당했음’을 알리는 소식을 트위터에 올렸다. 물론 자막이 지원되기에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화를 제1 언어로 쓰는 농인의 경우, 자막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구화와 수화는 언어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농인에게 수화통역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필요성이 인정되어 지난 3일, 한국수화언어법도 제정됐다. 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의 언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농인사회 특유의 농정체성을 존중하고 농문화를 계승·발전할 수 있도록, 농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는 농인에게 수화를 언어로서 제공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법 16조는 공영방송 등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통역을 ‘지원해야 한다’고 의무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오는 8월 4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인간이 언어적 존재임을 인지한다면 구화 중심 사회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음성언어를 사용하기 힘든 농인들이 얼마나 깊은 억압 속에서 자기 존재를 웅크리고 살아왔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언어인 ‘수화언어’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들은 아름다운 자신들의 시각언어인 수화를 접고, 들리지 않는 귀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수술받아야 했으며, 소리 나지 않는 목소리에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한국수화언어법은 존재 부정의 역사 속에서 부정당한 존재를 긍정하기 위한 당사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제정된 것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은수미 의원의 마지막 발언을 빌려 말하고 싶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며,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하는 것이 사람이다. 단 한 명도 인권을 훼손당하지 않고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러한 아름다운 말이 오늘의 국회에서 터져 나왔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적 자유를 사유하며 우리는 얼마나 ‘희망’을 음미했던가. 바로 그 존재에 장애인도 포함되길 기원한다. 청각장애인, 발달장애인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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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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