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9월22일su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탈시설ㆍ자립생활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벚꽃같은 사람 지영, 고마웠어요”
故 지영 3주기 추모 “탈시설 자립생활 장애인들의 네트워크 파티”
등록일 [ 2016년04월14일 19시22분 ]
3년 전 4월 16일, 벚꽃이 절정이던 봄날. 지영 활동가는 고열로 입원한지 열흘만에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흔 여섯해 짧은 생에 맞이한 이른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슬퍼했지만, 이른 죽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늘 유쾌하고 시원시원하게 탈시설을 '부추기던' 사람. 넉넉하게 부침개 부쳐 혼자 사는 친구나 농성장 사람들과 나눠먹던 사람. 그런 지영 활동가가 떠난 자리를 사람들은 눈물로 채웠다.
 
하지만 지영 활동가의 3주기 추모제는 웃음이 넘쳤다. 그녀의 빈자리를 슬퍼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만난 탈시설 자립생활의 삶과 그 속에서 만난 소박한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파티'를 준비했다.

故 지영 3주기 추모 '탈시설 자립생활 장애인들의 네트워크 파티'가 14일 노들장애인야학 4층에서 진행됐다.

"지영 언니는 '쎈 사람' 이었어요. 다들 동의하시죠? 언니는 중증장애여성이 '쎄도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귀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탈시설을 극구 사양하던 사람들도 언니랑 만나 이야기만 하면 탈시설 하겠다고 막 달려들었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지영 언니는 마법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스물아홉에 감기바이러스로 경추 장애 판정을 받은 지영 활동가는 철원에 있는 요양원에 입소했다. 그러나 요양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마주한 것은 거주인들에게 직원들이 행하는 결박과 욕설, 일상화된 폭력과 '돼지밥 같은' 식단이었다. 지영 활동가는 여기에 순응하지 않고 다른 거주인들과 1년여에 걸쳐 투쟁했다. 그 결과, 9시 넘어 TV보기, 직원들과 동일한 식단 제공받기, 짜장면 시켜 먹기, 머리 기르기, 라면 먹기, 교회 가기, 컴퓨터방 만들기 등 시설 밖에서는 당연하지만 안에서는 파격적이었던 변화들을 일궈냈다. 
 
하지만 일상이 주어져도 시설은 시설이었다. 그녀는 2004년, 아직 활동보조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굶어 죽어도, 얼어 죽어도 내 선택이다. 그게 인간이다"라며 탈시설을 선택했다. 
 
활동보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구하지 못하는 날엔 굶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했고, 이것을 혼자만 누려선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영 활동가는 시설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불어넣었다.
 
"언니와 같은 시설에 있었는데, 언니가 계속 '넌 자립할 수 있다' 용기를 줬어요. 그렇게 나와서 조금 힘들면 다시 시설 들어가는 걸 고민했는데, 그 때마다 언니한테 욕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덕분에 정신 차리고 '이렇게 힘든 것마저 삶'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서 언니와의 추억을 나눌 수 있게 되었네요" (지영 활동가와 요양원에서 함게 지냈던 장희영 씨)

추모식 사회를 담당한 장희영 씨. 지영 씨의 '요양원 동기'이다.
 
지영 활동가는 자립 이후의 삶이 어떻게 하면 풍성해질까도 고민했다. 그래서 그녀는 성북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창립에 함께했다. 주체적으로 삶을 채워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배우고 이 곳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영 씨가 '전도'한 탈시설 자립생활은 어마어마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비오는 날 같이 부침개 부쳐 먹는 것, 봄날에 삼삼오오 모여 꽃구경 가는 것 같이 소박한 일상들의 가치를 알았지요. 그리고 그걸 더 많은 시설 안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했고요"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_단 대표)
 
사람들은 지영 활동가가 전해준 소박한 자유를 기념하기 위해 그녀의 세 번째 기일에 모였다. 그들은 이제 그녀의 상실을 슬퍼만 하고 있지 않겠다고 전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 바깥에 흐드러졌던 벚꽃이 기억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피었네요. 앞으로도 이 벚꽃을 볼 때마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지영 언니를, 그리고 언니가 믿었던 자유의 가치를 떠올릴 거예요. 이 자유의 향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지영 언니처럼 즐겁고 신나게 활동하겠습니다" (배미영 너른마당 활동가)

지영 활동가를 그리워하며 지인들이 쓴 편지들.
지영 활동가의 생전 활동 모습
 
올려 0 내려 0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지옥을 탈출하여,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를 쓰다
[부고] ‘1기 탈시설 운동가’ 박정혁 씨 22일 별세
지영 활동가 1주기, 당당하고 활발했던 그녀를 기리다
"당당했던 지영의 모습을 기억해주길…"
“벚꽃향보다 국화향 맡고 있는 지영 씨…”
[부고] 지영 활동가, 16일 패혈증으로 숨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발달장애인 부모들, 서울시에 ‘실질적인 지원 정책’ 요구 (2016-04-18 16:28:45)
서울시, 시설 소규모화 5억 배정하고 ‘탈시설 계획’? (2016-04-05 19:44:17)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인권의 도시는 상상하라! '시설없는' 사회를~, 뉴질랜드 people first에서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운동을 듣다!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나의 괴물 장애아들,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가 잠...
2003년 10월 베를린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명단 하나가 발표...

두 살에 와서 서른아홉까지 시설에서 살...
“시설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 없어요”
선택권도, 미래도 없던 시설의 삶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