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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든 1년이든” 경기도청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경기420공투단 도청 농성 14일, 농성장 현장을 가다
등록일 [ 2016년05월26일 21시48분 ]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경기420공투단)이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담은 10대 요구안 수용을 외치며 경기도청 예산담당관실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2주가 됐지만, 경기도가 요구안을 받아들일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농성장에서 경기420공투단을 만나 “한 달이든 1년이든 여기 있어도 된다”라며 농성 철수 전에는 대화는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장기전을 예고한 경기도 측에 대응해 지금도 매일 수십 명의 활동가가 번갈아가며 농성장을 지킨다. 씻을 곳도, 잘 곳도 마땅치 않은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현장을 비마이너가 찾아갔다.
 
경기420공투단 농성장 앞 복도.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등 여러 요구를 담은 현수막이 복도에 걸려있다.
지난 14일간 치열하게 싸워온 경기420공투단의 도청 농성장을 26일 정오께 방문했다. 농성장 앞 복도, 농성장 내부 사무실은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은 특별하게 용인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팀이 현장에서 밥을 짓고, 잡채와 오이 무침, 겉절이를 만들었다. 매번 활동가들이 김치찌개로 밥을 먹는다며 직접 준비한 것들이었다.
 
복도와 사무실에 있는 탁자 세 곳에서 활동가들이 번갈아가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식단이지만, 식사하는 활동가들은 “잔칫집에 온 것 같다”며 연신 칭찬했다. 밥을 준비한 이는 “잔치 분위기로 농성 빨리 잘 끝내자고 준비했다”며 말을 보탠다. 잘 먹어야 잘 싸운다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활동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일부는 농성장 밖을 돌아다녔고, 일부는 농성장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든 경찰과 공무원들이 들이쳐 농성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매일 긴장만 해서는 오래 농성을 이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다.
 
마침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활동가들이 한데 모이니 농성장 자체가 하나의 사랑방 같았다. 경기 권역이 넓은데도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지하철과 철도를 제외하면 매우 적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기 북부와 남부에서 적게는 두 시간, 많게는 세 네 시간 걸려가며 모인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활동가들도 있었다. 뉴스에서 여권의 대권 주자로 남 지사가 언급되자 활동가들의 표정이 변한다. “장애인들 요구도 못 받아들이는 주제에 무슨 대권 주자냐”라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화성장애인야학이 경기도청 별관 앞에서 진행한 음악수업. 학생이 멜로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오후 2시 30분경 도청 별관 앞에 농성을 지지하는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화성장애인야학 학생 4명과 자원 교사가 음악 수업을 진행했다. “먼저 불면 숨차니까 누르면서 불어요”라는 교사의 말에 학생들이 멜로디언 건반을 더듬더듬 누를 때마다 아리랑 곡조가 울려 퍼진다.
 
학생들과 함께 농성장에 온 이경희 교장은 “장애인 평생학습도 경기420공투단의 10대 요구안의 하나다. 음악수업을 하며 평생교육 예산이 왜 필요한지 남 지사도 알았으면 해서 나왔다.”라며 “수업을 통해 농성에 힘을 주고 싶다. 앞으로도 언제든 나와서 수업을 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간간히 농성장 주변에는 숨어있던 긴장감이 얼굴을 내민다. 오후 3시경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공무원이 찾아와 농성 철수를 요구했다. 이도건 경기420공투단 공동집행위원장이 “장애인 이동권도 보장하지 않는 파행을 정상화하는 게 먼저다. 도지사만 결단하면 된다.”라고 받아치자 그들은 몇 마디를 더 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 공동집행위원장은 경기도청 주위를 산책하던 도중에도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를 비롯해 여러 실무자를 만났다. 경기420공투단의 다른 대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농성장을 떠나라는 경기도의 입장과 요구안 협의 전에는 떠날 수 없다는 경기420공투단의 요구가 도청 곳곳에서 부딪혔다. 남 지사가 “한 달이든 1년이든”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경기도 측은 내심 경기420공투단이 정말 장기간 농성을 이어갈까 두려운 눈치였다.
  
권용재 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농성장 한편의 침대에서 쉬고 있는 모습.
물론 농성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도 존재한다. 활동가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침실 대신 딱딱한 바닥이나 휠체어에서 잠을 자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씻는 곳이 부족해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도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이 시기에는 곤욕스러운 일이다. 집에 가서 씻고 오거나, 아니면 서로의 채취를 참는 수밖에 뾰족한 도리가 없다.
 
권용재 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경우 지난 24일부터 3일 연속으로 농성장을 왔다 갔다 했다. 밤에는 호흡기를 장착해야 하는 장애 특성상 농성장에서 숙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여정을 매일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다소 힘에 부쳤는지, 농성장 한쪽에 마련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힘들어도 농성장에 오는 이유로 권 활동가는 “막상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서, 도지사가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해서”라고 답한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힘들어서 내일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내일도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그만큼 그들에게는 농성장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권달주 경기420공투단 공동대표는 “경기도는 지난 10년간 장애인과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농성 과정에서도 요구안 협상을 손바닥처럼 뒤집었다. 그동안 경기도의 장애인 권리는 거꾸로 가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10년의 미래를 열려면 우리가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맞는 저녁, 활동가들이 두 시간 씩 앞으로 어떻게 농성을 이어갈지 머리를 맞댔다. 아마 어딘가에서 경기도청 관계자들도 어떻게 농성을 그만두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 농성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있다. 경기도에서 장애인들이 지닌 절박함, 이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지 못하는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경기420공투단이 스스로 농성을 포기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활동가들은 “한 달이든 1년이든” 농성장을 지켜나갈 것이다.
 
농성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이 점심 식사하는 모습.
이도건 경기420공투단 공동집행위원장(왼쪽)이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420공투단 활동가들이 도청 별관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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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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