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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로 읽는 '일베'의 정의
혐오담론 씹어먹기 세미나 ⑦
등록일 [ 2016년07월29일 17시11분 ]
[편집자 주] 끔찍한 말들이 떠돌고 있다. 할퀴는 말, 증오를 선동하는 말, 차별과 폭력을 부르는 말, 무엇보다 그걸 즐기는 말들이. 그 말들은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 자들,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소수자들을 겨냥한다. 여성, 동성애자, 이주자,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담론이 분출하고 있다. 언제 부터일까, 대략 2000년대 이후 온라인의 ‘일베’와 오프라인의 개신교 우파를 중심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선동하는 담론이 노골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작금의 혐오담론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을 무분별하게 표현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반영하는 사회적 담론으로, 20세기 초반의 파시즘과 유사한 정치적 욕망의 표출이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혐오 담론의 실체는 무엇이며, 거기 내포된 정치적 욕망은 무엇이고 그 혐오의 정치에 대항하는 정치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비마이너가 노들야학과 함께 ‘혐오담론 씹어먹기’ 세미나를 열었다. 공개 모집을 통해 25명의 다양한 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이 모였으며, 13주 동안 8권 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토론할 예정이다. 그 토론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연재하려 한다. 

<<‘혐오담론 씹어먹기’ 연재 목록>> 
 혐오표현? 문제는 혐오정치야! 
 
‘인류애’로 혐오하는 자들에게 마사 누스바움이 전하는 ‘인류애의 정치’ 
 
일베의 사상을 넘어 견유주의적 가치전도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성혐오로 발기된 남근의 정치학과 함께 
 
‘핑크코끼리’와 ‘주토피아’가 공유하는 혐오의 사상, 사회진화론적 문명사관
⑥ "나의 몸이여, 내가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를"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일베의 사상이 뜻밖에 대중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감에 있어서 일베는 더 이상 ‘반사회적’ 혐오집단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남성들의 일반 정서를 대변한다.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 강제철거에 대한 반응에서도 이런 ‘일베’의 ‘대중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건물주 ‘리쌍’과 ‘우장창창’ 간 첫 번째 분쟁 때는 “건물주라고 갑질한다”는 여론이 앞섰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6년 7월의 2차 분쟁 때는 ‘을의 횡포’라며 ‘우장창장’을 비난하는 여론이 인터넷 댓글로 폭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주의 소유권만 지나치게 보호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때문에 생긴 분쟁인데 그때는 법대로 쫓아내려던 건물주 ‘리쌍’의 ‘갑질’을 비난하던 여론이 이번에는 법대로 안 나가고 떼쓰는 ‘우장창창’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돌아섰다. 왜일까? 댓글부대의 주된 논거는 2년 전 리쌍이 법대로라면 안 줘도 될 권리금의 일부를 합의금 형태로 보전해 주고, 지하로 장소를 옮겨 남은 임대기간도 보장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은혜도 모르고 또 떼쓴다는 거다. 게다가 3년 전 ‘우장창창’ 사장 서윤수 씨 주도로 만든 ‘맘상모’의 조직력을 동원하여 합법적인 명도집행을 방해하고, 돈 주고 시켰는지 감언이설로 속였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장애우”까지 동원하여 “감성팔이” 하는 “을질”에 화가 치민다고 한다. 노들장애인 야학 학생들이 ‘우장창창’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손피켓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에 댓글부대는 입에 담지 못할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어떤 '을'들의 우정 - 우장창창과 노들야학」참고)
 
이 댓글부대가 ‘알바’가 아니라면, 그들의 진심 어린 논리는 무엇일까? 법은 지켜야 한다는 준법의식과 건물주인은 할 만큼 했다는 인정주의 이면에는 일베의 정의론인 ‘무임승차’ 혐오가 있다. 안티-페미니즘과 함께 일베의 사상 중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무임승차’ 혐오이다. 일베가 보기에 ‘여성’, ‘진보’, ‘호남’은 모두 우리 사회의 무임승차자, 즉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고 감상적인 선동과 떼쓰기로 자원 분배를 요구하는 집단이다. 그들의 근거 없는 권리 주장 때문에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남성, 산업화, 보수 세력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으며, 그런 역차별을 없애는 것이 공정사회의 실천이라는 논리다. 
 
물론, 이런 보수적인 정의감이 기득권 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일베는 분명 극우 보수주의를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기득권 집단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사회를 ‘헬조선’으로 느끼는 가난한 청년들과 그들의 ‘루저’ 정서가 주류다. 그럼에도 일베가 보수주의적 정의론을 펼치는 것은 어떤 ‘질시’의 감정 때문이다. ‘우장창창’과 그에 연대한 장애인들을 혐오하는 것은 그들이 ‘헬조선’의 현실을 냉소하기만 하지 않고, 법과 권력을 두려워하기만 하지 않고, 가진 자들을 선망하기만 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자기 권리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옥같은 현실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냉소주의자가 된 자들에게 그런 반항인들의 소란은 기득권자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한 짜증과 불편함을 준다.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자신과 달리 처신할 때 그에 대한 혐오감에는 무력한 자기에 대한 무의식적 혐오감까지 투사되어 나르시즘적(자기와 닮은꼴에 대한 강렬한) 공격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2006.
 
‘우장창창’과 그에 연대한 장애인들에게 혐오성 댓글을 퍼부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과격한 문제제기를 한 사회심리학자가 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의 저자 빌헬름 라이히는 법과 권력에 순종하기 않고 구조적 착취에 항거하는 자들에 대해, 그리고 그런 자들을 혐오하는 도덕군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설명되어야 할 것은 배고픈 사람들이 도둑질을 했다거나 착취당한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 중 대다수는 왜 도둑질을 하지 않는가. 또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왜 파업을 하지 않는가? 라는 사실이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55쪽)
 
빌헬름 라이히는 가난한 대중들이 기득권자를 위한 법과 도덕을 내면화 하고 지배자에 대한 저항을 포기할 뿐 아니라, 그런 저항을 혐오하기까지 하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했다. 그것은 참으로 ‘불합리한’ 현상이라고. 파업과 절도가 불합리한 게 아니라, 구조적 빈곤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가진 자들의 아량에 감사하라고 외치는 것이야말로 진짜 불합리한 짓이라고 말한다. 
 
라이히는 1930년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의 다수 대중들이 파시즘에 열광한 심리현상에서 이런 불합리를 발견하고,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 독일의 파시시트 정당인 ‘나치’는 1932년 7월 37퍼센트의 지지율로 제 1당이 되었다. 이듬해 1933년 1월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었고, 3월에는 ‘수권법’이라고, 행정부에 법률 제정권을 위임한 끔찍한 법률이 통과 되었다. 이런 파시즘의 승리에 대해 속류 맑시스트들은 경제적 토대가 이데올로기를 규정한다는 공식에 얽매여 그런 ‘계급 배반적’ 투표를 이해불가한 일시적 현상이나 히틀러가 대중을 속인 것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라이히는 그런 계급 배반적 이념지향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파시즘은 대중들에게 정치적 쾌감을 제공했다. 스포티한 티셔츠를 입고 행진을 하거나 대중 집회를 열 때,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영도자의 카리스마에 경의를 표할 때, 민족의 순수한 힘을 저해하는 혐오집단에 가학적 공격충동을 분출할 때, 심지어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기 희생을 감행할 때조차 대중들은 그런 이념적(정치적) 행위를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박정희 정권을 파쇼 정권으로 불러온 과거 운동권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라이히에게 파시즘은 위에서 억누르는 독재가 아니라, 대중들의 열광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독재이다. 파시즘은 대중들을 흥분시켰으며 대중들은 파시즘의 실천 속에서 발기했다. 일베 유저들이 ‘여성’, ‘진보’, ‘호남’에 대한 혐오를 통해 중독성 강한 ‘재미’와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라이히는 정신분석학자답게 그 ‘재미’와 ‘쾌감’의 원천이 ‘리비도’, 즉 성적 에너지라고 보았다. 일베가 혐오표현과 포르노그라피를 섞어 즐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파시즘의 대중들이 정치적 행동에서 느끼는 희열은 성적 쾌락의 변형된 형식이다. 프로이트는 파시즘적 쾌락을 죽음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지만 라이히는 죽음의 본능을 믿지 않았다. 라이히는 본능은 그렇게 파괴적일 리가 없다고 보았다. 그런 파괴적인 충동은 오히려 자연스런 본능의 억압에서 비롯된 병리적 충동이라고 말했다.  
 
라이히는 자연스런 성 본능을 억압하여 신경증적이고 도착증적인 충동으로 변모시키는 장치를 가부장적 가족 제도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신경증과 도착증의 원인이 외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했는데, 라이히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사회적 형성 기제에 주목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버지, 엄마, 아들(딸)로 이루어진 외디푸스적 가족관계가 본능만큼이나 항구적인 것이라고 보았지만, 라이히는 맑스주의자답게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사적 소유, 계급, 국가와 맺는 사회, 역사적 관계에 주목했다. 마르크스가 사유재산, 국가, 계급이 소멸된 사회를 전망한 것처럼 라이히는 그와 함께 강제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소멸을 전망했다.   
 
라이히에 따르면, 가부장적 가족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런 성 본능을 위험한 것으로, 도덕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금지시킨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인간의 원초적인 성 대상을 어머니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부장적 가족은 모든 성 충동의 원형을 어머니를 향한 근친상간적 욕망으로, 자연스러운 성 충동을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 죄의식에 물든 욕망으로 변질시킨다. 이런 외디푸스 콤플렉스 속에서 ‘여성은 더러운 창녀 아니면 순수한 성녀’라는 괴상한 사고방식이 탄생한다. 어머니가 원초적인 성 대상으로 표상되는 것에 상응하여 아버지는 최초의 금지자로 표상된다. 마치 기독교의 신처럼 외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원초적 성 관계에 금지의 법을 수립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불만을,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을 준다. 어머니와의 원초적 성 관계는 한편으로는 완벽한 충족의 이데아로,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위험한 상태로 표상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문명화 된다고 말한다. 반면, 라이히는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함으로써 권위주의적 인간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성에 대한 도덕적인 억압은 어린이를 불안하게 하고 수줍음 타게 만들며 권위를 두려워하고 복종하도록, 권위주의적인 의미에서 ‘말 잘 듣고’ ‘길들이기 쉽도록’ 만든다. 생동적이고 자유로운 모든 충동이 심한 두려움에 의해 점령되고, 성적인 것에 대한 생각의 금지가 일반적인 사고를 억압하고 비판까지도 무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간의 반항하는 능력은 마비되어 버린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67쪽)
 
가부장적 권위 속에서 키워지고 그 권위에 짓눌린 사람은 ‘자기 조절’, ‘자율’와 같은 자연의 법칙을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행위와 의사결정에 책임지기를 거부하고 권위 있는 자들의 지시와 지침을 요구한다. 권위에 짓눌려 자아가 왜소해진 이런 자들은 ‘지연’, ‘학연’, ‘민족’, ‘국가’와 같은 집단 정체성을 통해 신비주의적으로 확장된 자아, 큰 ‘나’를 갖고 싶어 한다. 자율 능력을 상실한 이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도덕’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이다. 도덕의 강제에 대한 불만과 자기 욕망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그들은 도덕을 증오하는 동시에 절대시 한다. 이런 자들은 자기 욕망과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조절, 통치, 즉 ‘자율’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는다.   
 
라이히에게 ‘자율’은 개별적인 인성의 영역인 동시에 사회적 통치의 영역이다. 라이히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적 과제는 국가-권위주의적 질서와는 상반되는 사회적 자주통제를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파시즘과의 대결 과정에서 점점 파시즘을 닮아갔고 권위주의적 가족, 국가 체제를 재구축했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구성하여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즉 ‘스스로 통제’해야만 하는 사회는 강령에 의해 갑작스럽게 만들어질 수 없으며 유기적으로 성숙되어야 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342쪽)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의 ‘자율’ 능력이 신장되어야 하는데, 그 시발점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율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이히는 1917년 12월 레닌의 <결혼의 해소에 관한 포고>와 <시민 결혼, 자녀, 시민 지위의 등록에 관한 포고>를 높이 평가했다. 이 두 포고는 남편에게 가족을 주도할 권리를 제거했고, 여성에게 완전한 경제적,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여했으며,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름, 주소, 시민권을 결정할 수 있음을 선포했다. 이로써 어느 누구도 자유의지에 반하는 성관계, 결혼 관계를 강요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혼의 이유를 묻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결혼과 이혼은 순수하게 사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국가주의를 복원하면서 성에 대한 반동적인 법률도 다시 도입되었다. 1934년 6월 동성애 처벌법이 부활했고, 동성애자 처벌에 대한 소문이 빈번히 들려왔다. 낙태에 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축소되었고, 결혼과 가족 제도는 다시 강화되었다. 라이히는 자신의 청소년 성상담 센터에 대한 공산당의 도덕적 검열에 실망했고, 성 문제에 대해서는 부르주아, 파시즘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소련에 실망했다. 라이히의 이런 평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소련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의 기본조건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현재와 미래의 좌파에게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혁명운동은 겉으로는 하찮게 보이는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 나타나는 의미를 올바르게 평가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그것을 자주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했다.(…) 공산주의자면서도 자신의 부인을 억압하는 것, 일요일에 입는 점잖은 의복, 어설픈 춤동작, 이밖에도 수많은 ‘사소한 일들’이 만성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수많은 혁명적 집회와 팜플렛이 상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반동적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115쪽) 
 
일상의 라이프 스타일, 특히 성적 관계에서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코뮨주의적 원리를 도입하지 않으면서 사회 변혁과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안티-페미니즘과 보수적 정의론에 있어 ‘일베의 사상’이 대중적 헤게모니를 확보해 가고 있는 지금, 라이히의 반-파시즘 전선에서 성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 절실히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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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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