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의 사이에 선 경계인, ‘코다’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그리고 수경 이삭슨 4인의 코다가 전하는 삶의 이야기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 표지,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글 ⓒ교양인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 표지,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글 ⓒ교양인
 

엄마는 스스로를 농문화에 속한 농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장애’라고 불렀고 때로는 ‘병신’, ‘귀머거리’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내가 바라본 엄마, 아빠의 세상은 너무나 반짝였지만 그것을 설명해내기에는 두 세상의 언어가 확연히 달랐다. 시각을 기반으로 한 수화언어와 청각을 기반으로 한 음성언어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뿐만 아니라, 차별과 편견의 벽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 둘을 오가는 일은 고단했고 종종 외로웠다. ― (본문 122쪽, 이길보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존재, 코다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글. 교양인. 18,000원)가 출간됐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聾人)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聽人) 자녀다. 이들은 수어로 옹알이를 하고, 소리보다 먼저 손과 표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코다는 온통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부모의 귀가 되고 입이 되는 통역사가 되기도 한다.

코다는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 부동산에서 집을 계약할 때, 부모님이 아파서 병원에 갈 때,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할 때도 부모의 손말을 세상의 입말로 연결해야 했다. 코다는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두 세계는 언어도 문화도 너무 달랐다. 더욱이 다수의 청인은 소수의 농인을 ‘결함’, ‘비정상’으로 여겼다. 그 경계에서 코다는 어디에도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나는 어느 세계에 속할까? 나는 누구인가?’ 책에는 이런 의문을 지닌 채로 살아온 코다가 자신을 발견하는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이길보라, 수어 통역사이자 언어학 연구자인 이현화,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황지성 등이 필자로 나섰다. 이들은 ‘코다 코리아’에서 만나서 자신의 삶을 드러내기 위한 책을 기획했다. 여기에 한국계 미국인 코다 수경 이삭슨이 함께해 다양성과 깊이를 더했다.

이들은 책에서 ‘코다’의 정체성을 말하면서도 그 안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운 코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 아래서 자란 코다, 퀴어한 코다, 한국계 미국인 코다 등등. 필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확장해 코다와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장애인, 여성, 퀴어,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적·언어적 소수자들에게 다가간다.

농인을 위한 새로운 ‘한국수어사전’ 편찬의 여정, 장애 여성의 성적 권리를 지지하는 운동, 소수자의 시선을 담은 영화 제작기, 이민 가정의 소수 언어에 대한 이해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연결된다. 코다를 말함으로써 코다처럼 다른 뿌리와 결을 지닌 자들을 긍정한다.

이길보라 감독은 프롤로그에서 “다양성은 코다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이 책이 결코 코다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책이 다양성, 고유성, 교차성에 질문을 던지는 도구가 되기를, 더 많은 코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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