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도움 없이 혼자 온라인 쇼핑 가능하다” 시각장애인 10명 중 2명뿐
“정보접근 어려워 소외감 느끼고, 장애인으로서 비애감 느껴”

이마트 온라인 쇼핑몰 메인화면
이마트 온라인 쇼핑몰 메인화면
‘내 돈 내고 사면서 차별까지 받아야 하나.’ 저시력 시각장애인 정승아 씨는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낀다. 회원가입을 위해 입력해야 하는 것도 많고 힘들게 정보 입력을 해도 마지막 보안문자를 입력할 때쯤엔 결국 “초등학생 아들의 눈을 빌릴 수밖에” 없다. 보안문자는 음성지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시각장애인이면 몇 분 걸리지도 않을 회원가입을 몇십분이나 걸려 겨우 해낸다.

그러나 막상 온라인 쇼핑을 하려면 또다시 장벽에 부딪힌다. 각종 ‘버튼’이 너무 많아 여기저기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설령 내가 원하는 상품을 찾더라도 상품정보 대부분이 그림파일이라 음성지원이 안 된다. 결국 또다시 아들을 불러 도움을 청한다. 결제할 때도 마찬가지다. 쿠폰 사용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신용카드 결제도 어렵다. ‘카드 결제하면 할인도 되고 무이자 할부 혜택도 받을 수 있는데….’ 손해 보는 기분에 답답한 마음도 들지만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무통장 입금을 택한다.

- “타인 도움 없이 혼자 온라인 쇼핑 가능하다” 시각장애인 10명 중 2명뿐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아래 한시련) 주최로 장애인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전국 519명의 시각장애인을 대상(남성 292명, 여성 224명)으로 온라인 쇼핑 접근성과 활용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연령은 10대(1명), 20대(47명), 30대(95명), 40대(108명), 50대(131명), 60대 이상(137명)이었다.

응답자 중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은 74.2%였다. 네 명 중 한 명은 휴대전화가 아예 없거나 스마트폰이 아닌 2G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더라도 이 중 17.5%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에 대해 ‘사용방법이 어렵다’는 사람이 12.3%로 가장 많았으며, ‘모바일 접근성이 어렵다’는 사람도 5.4%에 달했다. 서 사무총장은 “사용 방법이 어렵다는 것은 결국 접근성 미비에서 오는 것”이라며 두 개의 답변이 실은 동일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스마트폰 이용 용도(16개 문항 중 2개 중복 답변)로는 전화통화(32.7%)가 압도적으로 가장 높았으며, 문자메시지(6.6%), 팟캐스트·라디오 등 방송듣기(6.6%) 순이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음성 출력 접근성이 높은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스마트폰 구매에 영향을 미쳤다. 응답자들의 스마트폰 제조사 선택 비율은 삼성(36.8%), LG(23.1%), 애플(22.9%) 순이었는데, 애플사를 사용하는 비장애인 비율(12.7%)에 비해 시각장애인의 애플사 사용 비율이 월등히 높다. 서 사무총장은 “안드로이드는 음성 출력 접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은 애플사 제품을 더 선호한다”면서 “특히 전맹, 1~2급 중증 장애인일수록 애플사 사용 비중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컴퓨터 사용에 대해서도 37.8%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하루 1~3시간 정도 사용한다는 사람은 40.8%였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응답으로는 사용방법이 어려워서(11.8%), 웹접근성이 되어 있지 않아서(10.8%), 불필요해서(9.8%) 등이 있었다. 컴퓨터 사용자들은 인터넷 이용을 가장 많이 하며, 다음으로 문서작성, 독서, 음악 듣기 등에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홈쇼핑이나 모바일,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경우엔 응답자의 40.8%가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쇼핑이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은 17.5%에 불과했다. 상품선택에서부터 결제까지 시각장애인 혼자서 하기엔 웹접근성이 너무나 미비한 것이다.

쇼핑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한 민원서류 발급도 시각장애인의 경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민원서류는 인터넷으로 발급받으면 무료다. 그러나 웹접근성이 갖춰지지 않아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이 동사무소에 직접 찾아가 서류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정작 행정공무원이 자동기기에서 발급받으면 수수료가 무료라고 안내하여, 시각장애로 자동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한 다음에야 수수료를 내고 민원서류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접근의 열악함으로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이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장애인으로서 비애감을 느낀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에 지난해 9월 7일, 시각장애인 963명은 이마트와 롯데마트, G마켓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웹접근성 미비로 시각장애인이 지속적인 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소송 규모는 1인당 200만 원씩, 총 57억 원에 달한다.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최로 장애인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최로 장애인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국가정보화기본법 개정에 맞춰 장차법 시행령도 개정되어야

날이 갈수록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해외 구매가 활성화되고 온라인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이 생기기도 하며, LH 또한 온라인을 통해서만 주택 청약을 받는다. 안도환 한시련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팀장은 “인간의 의식주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 점점 의존하고 있다”면서 “오프라인 점포에서도 키오스크(무인주문시스템)를 통해 주문받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이를 이용 못 한다. 시각장애인이 소외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며 정보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난 2월 21일,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통신 접근 향상을 위한 국가정보화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 기관 등은 장애인·고령자 등에 대한 정보접근성 수단을 인터넷에서 정보통신망으로 확대하고, 접근 대상을 웹사이트와 함께 이동통신단말장치에 설치된 응용소프트웨어까지 확대한다. 정보통신 관련 제조업자는 장애인·고령자 등이 별도의 보조기구 없이 정보통신제품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엔 정보통신기기를 보조기구와 호환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노석준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개정안이 여전히 단편적 정보접근성만을 이야기할 뿐 “개정된 법률과 시행령 어디에도 ‘정보접근권’에 관한 언급은 없어 정보접근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면서 “다른 나라들이 정보접근성을 키오스크, 모바일기기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추세에 비하면 이조차도 여전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각장애계는 국가정보화기본법 개정에 따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 교수는 “현재 웹 접근성 관련 업무를 하는 곳이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인데 업무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따라서 정보접근성 업무 총괄 주무부서, 역할, 기능 등을 국가정보화기본법 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면서 향후 정보접근성 관련 표준 기준에 대한 지속적 점검 및 개정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현아 마크로젠 법무지원팀 변호사는 “현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의무화된 전자정보 범위를 웹사이트로만 규정하고 있어, 웹사이트 외의 모바일앱, 이러닝 콘텐츠, ICT(정보통신기능), 기타 전자제품 등에서 정보접근권 차별을 받아도 구제받을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추가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14조(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의 단계적 범위 및 편의의 내용) 2항 1호를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같은 조항의 3항에서 정당한 편의를 “장애인이 요청하는 경우 요청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제공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즉시” 또는 “지체없이 제공해야 한다”로 바꾸어야 한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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