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활동보조가 필요한 몸

나는 일상에서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여성이다. 얇은 팔과 다리, 구부러진 손가락 등 장애를 가진 나의 몸은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매력적이지 않은 몸’으로 규정된다. 장애여성공감 활동을 시작하기 전 내게 몸의 경험은 남들에게 최대한 숨길 수 있다면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힘들겠다”, “손가락을 똑바로 펴야지” 등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장애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나를 더욱 위축되게 했다. 다른 사람의 보조를 받는 것은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일이기에 내 자존심을 지키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혼자서 ‘극복’해야만 했다. 장애여성인 나는 사회에서 연애, 결혼, 출산 등의 과정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연애에서도 파트너와 동등한 관계를 맺지 못했고 주변인들에게 파트너는 중증장애여성과 연애를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나 또한 일상의 차별들을 ‘차별’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여성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씻기, 옷 입기, 신변보조, 가사보조 등에서 다양한 보조들이 필요하다. 상대방은 내 몸을 잘 모르기 때문에 디테일한 요청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만의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옷을 갈아입을 때 나는 근력이 없어 허리의 힘만으로는 몸을 지탱하기 어려워 활동지원사가 등 뒤에서 보조를 해야 넘어지지 않는다. 상의를 입을 때는 머리보다는 팔을 먼저 넣는 방식이 더 편하다. 활동지원사에게 내가 편한 방식의 보조를 잘 설명한다고 해도 단번에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조급한 마음이 들고, 서로 호흡이 맞지 않을 때는 더 애를 쓰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들은 감수해야 한다. 언제 익숙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활동보조를 받는다는 건 단순히 ‘몸’의 보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적 인식은 이용자와 활동지원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스스로를 삶의 주체라기보다 그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나를 규정해왔다. 언제든지 몸이 보여 지는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 걸 말하기보다 상대에 맞추려 했다. 보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신체적인 접촉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했고 ‘나 하나만 참으면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모르는 ‘까칠하고 예민한’ 이용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주로 어머니가 활동지원사와의 소통을 전담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관계를 맺는 과정은 중요했다. 왜냐하면 활동지원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내 몸에 맞는 방식으로 보조를 요청할 것인가는 삶의 주도권과도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다채로운 관계를 표현한 그림. 활동지원기관과 활동보조인은 여성돌봄노동이라는 현장을, 활동지원기관가 이용자는 장애인운동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있다.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는 단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하는 것을 포함한 다층적인 관계성을 갖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다채로운 관계를 표현한 그림. 활동지원기관과 활동보조인은 여성돌봄노동이라는 현장을, 활동지원기관가 이용자는 장애인운동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있다.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는 단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하는 것을 포함한 다층적인 관계성을 갖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친밀함을 경계하기

몸의 보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용자는 사생활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집, 직장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가족, 친구, 파트너 등과의 관계까지 드러난다. 이때,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생활이 노출되는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 그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서 활동지원사와 나의 가족 간의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반대로 활동지원사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이용자가 활동지원사에게 너무 편안히 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활동지원사와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공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관계의 긴장에 대한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한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땐 침묵이 어색하고 활동지원사가 불편해하진 않을지 염려되며, 이용자가 요청하기 전에 미리 보조를 미리 준비하는 등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집에 있을 경우, 활동지원사와 공간을 분리하여 휴식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공간이 협소한 원룸 같은 경우에는 활동지원사와 물리적 거리를 두기 어렵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나만의 밀실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한편으로는 활동지원사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매일 몸을 부딪치는 활동지원사와 서로의 몸 상태와 감정을 살피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활동지원사와 가끔 “이제는 눈빛만 봐도 다 안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매뉴얼처럼 활동보조가 익숙해진 과정에서 때로는 나에게 묻지 않고 활동지원사가 알아서 해주는 게 편할 때가 있다. 이런 호흡은 그동안 몸으로 익히기 위해서 애쓴 지난한 날들의 결과이지만 그렇다고 감격스럽거나 관계의 완성됨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과연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해주는’ 친밀한 관계가 마냥 좋은 걸까? 관계 안에서 친밀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공적 관계를 맺기 어려워지는 이유가 된다. 일상적 관계에서 장애여성은 주도권을 가져 본 경험이 거의 없기에 활동지원사와의 관계에서도 낮은 위치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활동지원사가 이용자의 의사를 대리하거나,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활동지원사와 관계가 쌓이는 만큼 관계의 긴장감이 낮아지고 개인적인 문제를 나누며 지지하는 관계가 되는데, 일상에서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를 경계해야 한다.

매일 누군가의 몸이 닿는다는 건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으로 접촉면이 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활동보조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몸의 보조를 받는 상황에서는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데, 이때 각자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개인적 거리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활동지원사가 이용자도 편안할 거로 생각해서 묻지 않고 몸을 밀착하거나, 내 움직임이 가능하지 않은 범위에서 갑작스럽게 보조할 때 긴장과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매일 누군가의 몸이 닿는 보조를 받는 관계에서 서로의 동의가 없을 때 이용자와 활동지원사 간의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신변보조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과거에 내가 샤워를 할 때, 활동지원사에게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보이거나 내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창피함과 걱정, 수치심 등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순간이었다. 혹시 활동지원사가 ‘장애가 있는 내 몸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앞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은 다른 데서 올라왔다. 장애가 있는 몸을 보인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보다는 “살이 찐 것 같다”, “여자가 날씬해야지”처럼 몸을 통제하는 말을 들었을 때, ‘활동지원사가 무안하거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어떻게 말을 할까’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더라도 나의 말이 예민함과 감정이 상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만약 활동지원사가 내일 당장 일을 그만둔다면 나는 출근부터 막막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계속 참고 넘기는 상황에서 이 관계는 더는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관계의 호흡을 맞춰가는 것은 몸이 익숙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며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화장실 보조도 내겐 어려운 영역 중 하나였다. 성기를 닦는 보조가 필요한 경우에 냄새도 걱정되었고, 활동지원사가 ‘더럽거나 불쾌한 느낌’이 들진 않을까 두려움도 컸다. 활동지원사의 눈빛, 표정 등 비언어적 표현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과거에는 외출 시에 음식과 물을 거의 먹지 않았다. 대학생 때는 2박 3일 엠티 동안 보조하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체중이 늘까 봐 최대한 안 먹으면서 화장실을 하루에 한 번만 가기도 했다. 집에서도 혼자서 하는 게 내 자존심을 지키고 당당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는 밖에서 하는 활동과 관계에 큰 제약이 되었다. 이는 내 삶에서 어떤 활동보조가 필요한지 다시 세팅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이 알면 안 되는 창피한, 아주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에서 나의 몸과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다. 나는 보조받는 몸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활동지원사와 몸이 닿는 감각이 최대한 느껴지지 않게 휴지를 3번 이상 돌돌 감아서 사용한다던가, 방향, 횟수, 힘의 세기, 모양(톡톡 두드리는 것과 일직선로 쓱- 닦는 것의 차이는 크다) 등의 구체적인 보조를 협의해갔다.

활동보조의 방법과 함께 물리적인 공간도 중요하다. 집은 내 몸에 맞춰서 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나 외부에 있는 화장실은 그렇지가 않다. 장애인 접근성이 열악한 상황에서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많고 화장실마다 좌변기 위치나 높이, 양옆의 보조손잡이 여부 등 설치 기준이 달라서 사용할 때마다 매번 적응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서 자주 가는 장소는 접근 가능한 화장실을 알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 보조하는 사람의 동선을 고려한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제도의 빈틈들이 ‘일상의 노하우를 만들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휠체어에 탄 장애여성이 팬티를 내리고 있다. 팬티에는 생리대가 붙어 있고, 성기 주변에는 생리혈이 묻어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휠체어에 탄 장애여성이 팬티를 내리고 있다. 팬티에는 생리대가 붙어 있고, 성기 주변에는 생리혈이 묻어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생리 역시 보조를 받을 때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내가 생리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몸도 불편한데…”라며 걱정했다. 나를 걱정하는 말인 듯 보이지만, 결국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신체를 가진 나는 생리로 인해 민폐 하나를 더 추가한 존재가 되었다. 실제 활동보조받는 상황에서 생리는 스스로도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활동지원사가 보조할 때 생리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손에 피가 묻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은 없는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간혹 “생리를 안 했으면 덜 힘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지원사의 태도에는 장애여성의 생리를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이 스며들어 있다. 활동지원사가 느끼는 어려움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불편함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더는 내가 필요한 부분을 요청할 수 없고 서로의 신뢰를 만들기도 어렵다. 반면, 활동지원사가 이를 해야 할 업무로 인식하고 불편해하지 않을 때 안도감이 들면서 또 다른 이야기와 시도들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신변보조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나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 실제 장애여성들이 겪는 치열한 고민들을 꺼내놓기 어렵다. 조금은 편하게, 각자의 방법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더 많은 장애여성들의 이야기가 발화되길 바란다.

성적권리를 말할 수 있는 관계

파트너와 관계에서도 활동보조는 분리할 수 없다. 이전에는 활동지원사에게 파트너의 존재를 숨겼다. 혼자 사는 여자가 파트너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파트너를 만날 때는 활동지원사와 파트너가 서로 마주치지 않게 활동지원사가 오는 시간을 조율했다. 보통 한 시간의 간격을 둔다. 예를 들어 활동지원사가 7시에 오기로 했다면 6시에는 파트너를 돌려보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활동지원사가 집에 오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며 섹스하던 중 갑자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활동지원사가 정해진 시간보다 이르게 온 것이다. 나는 여태 살면서 낸 가장 빠른 속도로 몸을 숨겼다. 모두가 당황하며 놀란 순간, 싸해진 분위기와 정적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기 충분했다.

이런 ‘아찔한’ 상황을 겪고 난 후, 일상에서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도 결국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생활을 감출 수 없는 현실만 계속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의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떤 합의와 소통이 필요할까. 지금은 활동지원사와 파트너 간의 존중하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활동지원사가 나와 파트너와의 섹스를 충분히 예상하는 상황에서 내 사생활을 존중해달라는 말 이외에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공간을 잘 정리했음에도 섹스한 이후에 ‘티’가 나지 않을까 불안감이 드는 이 상황은 어떻게 잘 소통할 수 있을지, 아직도 너무 어렵다. 또한 파트너가 집에 온 경우, 활동지원사가 해야 할 업무가 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내가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얼마만큼 주도하고 협상 할 수 있는가도 중요한 지점이 된다.

장애여성의 성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고 활동지원 현장에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자위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를 활동지원사에게 요청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나 같이 손 사용이 어려운 장애여성은 자위기구를 혼자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보조 없이 성적 욕망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나의 성적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몸을 만지고,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데 이미 예상되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 나는 시도 자체를 포기한다. 장애여성인 내가 나의 성적 권리를 안다는 것과 그것을 실현하는 것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활동지원 현장에서 이러한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장애남성 중심의 ‘장애인의 성적 권리’ 담론에서 장애여성은 성적 욕망을 말하기보다 폭력의 경험을 말하는 게 더 익숙하다. 그래서 단순히 섹스하는 것을 넘어 나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내 몸을 알고, 존중하는 관계를 맺고, 새로운 시도와 상상들이 이야기되었으면 한다.

자위도구를 이용해 자위하는 여성의 모습.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자위도구를 이용해 자위하는 여성의 모습.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코로나19, 적응할 수 없는 일상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힘든 일상을 견디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장애인의 열악한 환경은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게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자가격리에 대한 공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연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보조한다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의 보조 없이는 혼자서 끼니를 챙겨 먹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코로나19 이후, 나는 ‘내가 격리되면 어떡하지’하는 염려에 매 순간 불안을 느낀다. 정부 지침상 장애인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 우선적으로 가족의 돌봄을 받거나 시설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 장애인이기에 가족 돌봄은 어렵다. 또한, 대부분의 격리시설은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며, 설령 격리시설에 간다고 하더라도 내 몸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조받아야 한다는 건 큰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보조만 받을 것을 매 순간 각오하는 것뿐이다.

활동지원 현장에서 그동안 호흡을 맞춰온 관계가 코로나19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그에 대한 걱정이 크다.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방역을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재난상황에서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구체적 대안 없는 현실은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 겪는 현실을 책임져야 하는 건 가족과 동료, 활동지원사 뿐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극심해져 감염 위험이 높아질 때면 활동지원사를 양성하는 집합교육도 중단되면서 기존 활동지원사가 더는 일하지 못할 경우, 대체 가능한 인력은 없다.

계속 갈등하고 실패하기

활동지원사는 대부분 50~60대 여성이다. 남성중심의 구조 안에서 이들 역시 자신이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인식할 기회는 없었다.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에서 활동지원사는 나이 듦으로 인해 자신의 성적 욕망은 없어졌거나 새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관계가 형성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는 일상 안에서 활동지원사와 섹스, 자위, 관계 등을 주제로 대화를 하고 실제로 섹스토이샵에 같이 가보기도 한다. 우리는 자위기구를 직접 만져보면서 알지 못했던 부분을 낯설지만 흥미롭게 배운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활동지원사는 장애여성이 성적 욕망을 실현하거나 관계의 주도권을 갖기 어려운 위치와 조건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나아가 장애여성인 나의 경험을 듣고, 다르지만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기존과 다르게 해석하고 공감한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될 때, 내가 ‘불편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서로 불쾌한 감정만을 가지고 관계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생긴다. 장애여성 이용자와 활동지원사의 경험은 이렇게 만나 서로 연대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관계를 실패해 볼 경험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나, 그러한 다양한 관계망이 장애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 또한 과거에 갈등은 되도록이면 회피했으며, 관계가 좋지 않게 끝나면 나를 자책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지금은 관계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려고 노력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 감정이 상해 관계가 끝나버리는 때도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하며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해결되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갈등은 계속 반복된다. 그저 수많은 갈등의 고비 중 하나를 무사히 넘겼을 뿐이다. 매번 갈등을 겪어내며 활동지원사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내 삶에 필요한 나의 기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활동지원사와의 관계를 넘어 나의 가족, 친구, 동료와의 관계에도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매 순간 ‘실패’를 경험한다.

나는 나의 존엄한 사생활을 확보하기 위해 이처럼 복잡한 관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여성들도 활동지원사와 일상을 함께하며 이러한 관계의 역동을 경험하지만 이는 사회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동안 활동지원현장은 활동보조 24시간 보장, 수가 인상 등 제도 공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활동지원사와 이용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활동지원사와 관계를 만들고, 갈등 상황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은 개인이 돌파해야 하는 문제였다. 활동지원 현장에서 장애와 성별, 섹슈얼리티에 관한 복합적인 이야기가 가능해져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제도의 공백들을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메우는 상황에서 현재 장애인운동 현장은 이 주제를 토론할 역량과 경험이 있는가. 이제는 이 제도를 섬세하게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〇 참고자료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연구와 인권의제 개발프로젝트, 장애여성공감, 2016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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