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장애인 생존 위기 왔는데도 내년도 장애인 예산 ‘싹둑’
시설 장애인 집단감염 속출에도 정부는 속수무책… “탈시설지원법 제정 절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국회 예산 심의를 앞두고 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 10문 앞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과 장애인 예산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전장연이 국회 예산 심의를 앞두고 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 10문 앞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과 장애인 예산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피켓에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가연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사망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장애계가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이행과 장애인 예산 증액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국회 예산 심의를 앞두고 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 10문 앞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아래 탈시설지원법) 제정과 장애인 예산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탈시설', 이행 의지 있는지 의문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과제 42번으로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조성’을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 탈시설 지원정책을 도입해 거주시설 중심의 문화를 근절하고 지역사회 통합의 방향으로 국가가 책임질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현재, 장애인탈시설 관련 법 제정은 물론 탈시설 예산은 한 푼도 책정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탈시설민관협의체를 꾸려 장애계와 잠시 논의한 뒤로는 회의조차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전장연은 보건복지부에 탈시설 민관협의체를 재개하고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책임을 다할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 거주시설 및 정신요양시설에 대한 단계적 축소와 10년 이내 폐쇄의 내용을 담은 탈시설지원법을 마련해 요구하고 있다. 법안에는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초기정착 지원 및 지원주택 제공과 탈시설장애인 30명당 1명의 장애인 주치의 배치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은 내년 4월 20일까지 탈시설지원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전국 집중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처럼 장애계가 탈시설을 간절히 외치는 이유는 집단거주시설의 열악함 때문이다. 청도대남병원에서 정신장애인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24일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인 ‘라파엘의 집’에서 중증장애인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여주시가 25일부터 해당 시설에 코호트 격리조치를 했지만, 27일까지 장애인 입소자를 포함해 총 32명이 확진되어 확진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첫 확진자는 단독보행과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며,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시설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권달주 경기장차연 상임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권달주 경기장차연 상임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 상임대표는 “한국에서 거주시설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악명 높은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거주시설 폐쇄법을 만들어달라고 거듭 요청했었는데, 얼마 전 여주 라파엘의 집에서 중증장애인 26명이 집단감염되어 코호트 격리됐다”라며 “요양시설·병원에서도 수많은 장애인과 약자들이 감염위험에 노출된 채 학대당하고 있다. 다시 한번 국회와 행정부에 엄중히 선언한다. 탈시설지원법 당장 제정하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거주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라”라고 목소리 높였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시설에서 18년 동안 살다가 탈시설한 동생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다. 당시 동생이 있던 시설도 경기도 여주에 있었다. 이번에 라파엘의 집 집단감염 뉴스를 접하고 저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제 동생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K-방역이 자랑스럽다고 내세우지만, 여전히 거주시설에서는 집단감염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평범한 권리를 요청하고 있다. 탈시설한 가족을 둔 한 사람으로서 21대 국회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겠다. 장애인의 생존권과 탈시설을 위한 예산확보 투쟁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11월에 탈시설지원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을 함께 준비 중인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 활동가는 탈시설지원법 제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시설에서 죽고 싶은 분이 있나? 아무도 없다. 거주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외출과 방문을 금지당한다. 그래도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자신의 고립된 상황을 말할 수 없다”라며 “누군가는 법이 없어도 탈시설을 지원하면 되지 않냐고 묻겠지만, 그렇지 않다. 법이 없으니까 정부와 예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법에서 명확하게 ‘우리의 권리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라고 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정하 발바닥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김정하 발바닥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코로나19 핑계로 정부 부처별 장애인 예산 ‘싹둑’ 

코로나19 상황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연달아 추락사하고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 예산안에서 대상인원만 늘렸을 뿐, 월 이용시간은 전년도와 동일한 100시간을 유지했다. 주간활동서비스 제공시간이 확대되면 활동지원급여가 차감되는 이른바 ‘줬다 뺏는 활동지원서비스’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에 전장연은 월평균 주간활동서비스 지원 시간을 132시간으로 확대하고,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 및 농어촌 지역 맞춤 서비스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미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경북지부 부회장은 “발달장애인에게 힘든 시기에 경상북도가 내년부터 주간활동 서비스 도비 추가시간 50시간 삭감하겠다고 통보했다”라며 지역에서의 힘든 투쟁 상황을 알렸다. 

이정근 부모연대 부회장은 “코로나 상황이 2단계로 올라가도 직장 다니는 분들은 빠짐없이 나가지 않았느냐. 그런데 발달장애인은 직장과 다름없는 복지관도 못 나가게 되는데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함만 호소하고 있다. 생활패턴까지 깨져서 창문에 몸을 던지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지만, 언론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라며 “갈수록 외면받는 현실 속에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함께 싸워나가자”라고 결의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많은 장애인들이 생존에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오히려 내년도 예산은 자연증가분 정도만 상승했고, 일부 예산은 잘려 나가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달부터 장애등급제 폐지 2단계로 ‘이동지원 종합조사’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내년도 교통약자 이동지원 예산 중 저상버스 예산에서 약 8억을, 특별교통수단 예산에서 약 4억을 감액했다. 고용노동부는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알려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예산에서 1억 원가량 감액했다. 

이에 전장연은 △장애인연금 △장애인 활동지원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지원 △장애인탈시설 지원 △지원주택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확대 △장애인 지원 고용서비스 제공기관 운영비 확대 △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 등을 비롯한 총 22개의 장애인 정책 예산 6조 7515억  원(정부안 2조 5153억)을 요구했다. 

한편, 장애인들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원내 정당의 당사를 찾아가는 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정의당,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탈시설지원법안과 내년도 장애인 예산 요구안을 전달했다.

결의대회가 끝난 뒤 장애인들이 원내정당 당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결의대회가 끝난 뒤 장애인들이 원내정당 당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