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시설에 설치된 자위방?

장애인 거주시설 내에 자위방을 따로 만드는 것을 성적 권리를 보장하는 대안으로 이야기하던 사례가 있었다.1) ‘시설 장애인의 자위행위 권리’2)란 이름의 책도 등장했다. 급진적인 대안처럼 이 소식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주시설의 조건상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오히려 무절제한 욕구를 허용함으로써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 입장은 달라 보였지만, 자위를 허용하는 것으로 장애인의 성적 권리가 활짝 열릴 것이란 의견에선 일치한다. 장애인운동은 시설이란 존재 자체가 인권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비판했고, 장애여성운동은 장애인 거주시설의 통제와 관리 시스템이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것을 먼저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동의를 얻기 어려운 주장들이었다. 당연히 누구도 자위를 금지하고 허용하는 권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교육이 허용과 금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이제 자위까지 허용하겠다니 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한 권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금지했던 자위를 허용함으로써 이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규범의 순환 고리에 갇히게 된다. 금지는 보호주의로, 허용은 권리보장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김은정3)이 장애여성공감에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소개한 책 『Loneliness and Its Opposit(외로움과 그 반대편)』4) 3장은 발달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스웨덴의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섹슈얼리티는 “‘자연스럽지만 사적인 것’으로 여기는 반면 그룹홈 거주자들의 섹슈얼리티는 ‘부자연스러우나 공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언제나 공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시설화된 섹슈얼리티’는 사회가 이식하고 싶은 규범적 성교육을 통해 강화된다. 발달장애인이 ‘불필요한 정보’를 받았을 때 성적으로 과잉되거나 적절하지 않은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는 주변인에 의한 정보의 통제로 이어진다. 사회의 이러한 태도는 성생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개인의 현실을 부인하는 "성적 능력주의"를 드러낸다.5) 장애인운동에서조차 문제 행동 완화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리와 조절을 요청하는 상담이나 교육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곤 한다. 섹슈얼리티의 통제는 ‘성적인’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일상과 관계 전체의 통제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제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보호하는 안내자는 그만두고, 섹슈얼리티의 시설화를 탐구하며 억압에 함께 맞서 싸우는 동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여성이 ‘노크’라고 적혀 있는 방문 앞에서 보호자로 추정되는 다른 여성에게 “잠깐만 방에 들어오지 말아줘”라고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 여성의 머리 위에는 ‘자위하고 싶어’라는 생각풍선이 있다. 그러나 곧 보호자인 여성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너, 방에서 혼자 또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니?!”하며 화낸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한 여성이 ‘노크’라고 적혀 있는 방문 앞에서 보호자로 추정되는 다른 여성에게 “잠깐만 방에 들어오지 말아줘”라고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 여성의 머리 위에는 ‘자위하고 싶어’라는 생각풍선이 있다. 그러나 곧 보호자인 여성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너, 방에서 혼자 또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니?!”하며 화낸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시설에 맞는 몸을 만드는 성교육

자위교육은 몸을 통제하는 훈육이 되었다. 자위할 방법을 교육해 달라는 요청은 늘었지만, 내 몸과 관계를 맺고 성적 즐거움을 자유롭게 탐구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려웠다. 발달장애여성의 성적 즐거움을 다룬 성교육을 본 적이 있는가? ‘발기-사정-뒤처리’란 단순한 구조의 장애남성 중심의 정보 전달이 자위 교육이란 이름으로 활성화되었다. 한두 가지 방법의 자위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욕망을 허용하거나 통제하며 관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만지고 느낄 사적인 공간, 혼자서 자신의 몸을 탐험하는 충분한 시간, 폭력과 쾌락 사이에서 안전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교육은 드물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몇 번’이란 매뉴얼이 전문적 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성교육 프로그램을 안내한 한 자료엔 공공장소에서 자위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혼자 있는 시간 줄이기’를 제안한다. 다수의 발달장애인은 학교 졸업 후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다. 다른 사회적 관계는 줄어들고 활동지원사나, 보호자 등 익숙한 사람들과 장시간 같은 공간에 놓인다. 이런 환경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보장받는 발달장애인은 몇이나 될까. 사적 공간과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여 모든 일상이 노출되는 것, 몇몇 지원자와만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환경이 원인으로 분석되진 않는다. 왜 자위할 장소와 빈도를 구분 못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을 보장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살피지 않을까.

얼마 전 교육에선 “활동지원사가 하루 12시간 지원을 하는데, 본인 집에 데려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장애인 이용자가 자위하는 것을 보고 가족 모두가 놀랐다. 멈추는 방법을 안내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 사람과 12시간 같이 있어야 하는 상황, 활동지원사의 사적 공간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머물러야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 방법은 없다”고 답했다. 보통 한두 사람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 사생활을 갖기 어렵다. 견제할 구조와 사람이 없을 때 지원자의 통제력도 점점 커진다. 발달장애인 성교육은 이런 상황에 당사자가 맞서고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례를 통해서 시설화된 몸은 물리적인 시설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상적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성적 권리를 따로 떼어서 성취할 수는 없다. 발달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자신을 훈육하는 관계와 공간 안에 늘 둘러싸여 있다. 그 위치를 이탈하면 불안과 위험의 원인이 되기에, 이를 제거하기 위한 보호주의는 강력해진다. 성교육이 상담이나 관리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경험과 욕구, 권리 의식으로 성적 권리를 재정의하는 현장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러한 조건들이 시설 밖에서도 ‘시설에 맞는 몸’으로 살아가도록 훈육된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발달장애인의 성교육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고 해도, 교육의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공·사 공간의 구분에 대해서도 ‘내 몸을 보이지 말라’는 메시지가 강조되어 주변인들이 나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는지 말할 기회는 적다. 사례만 보면 발달장애인은 문제 행동의 주체지만, 행동의 서사로 자세히 다가가면 당사자의 맥락을 듣고 파악하지 못하는 사회의 무능과 만나게 된다.

성교육에서 발달장애인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삶에서 경험했던 불편한 시선과 관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일단 시작되면 A부터 Z까지 명확한 자기 서사와 해석들이 존재하고, 그 안에 자신과 주변인의 성인식이 드러난다. 당사자들은 주변의 훈육적 규범과 자기욕망 사이에서 말과 행동을 고르며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의 말과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까 봐 전전긍긍해 하기도 한다. 성적인 비밀이 보호자나 지인에게 노출되었을 때 부정적 반응을 경험했거나 관계의 주도권이 적어 비밀이 노출된 후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항상 나는 나의 모든 걸 말해야 하지?” 갸우뚱하면서도 익숙하게 “선생님 이거 해도/말해도 돼요?”라고 허락을 구하는 말을 시작한다. 발달장애인이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상상하는 이들이 많은데, 내가 경험한 발달장애인들은 누군가가 허용한 자리에 머무르는 것에 익숙했다. 그들은 나의 모든 역사를 아는 사람들과 온통 주변엔 ‘선생님’뿐인 위치 속에서 폐 끼치지 않으려 허락받는 것에 능숙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가장 많이 사용하며 실패하지 않는(혼나지 않는) 의사소통을 하려고 애썼다. 성교육 안내서엔 종종 “웃지 않기, 단호한 말투 사용하기, 싫어요, 하지 마세요 등으로 표현하기”6)를 교육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일상적으로 거절과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성적 폭력에만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보호, 돌봄, 관리, 안전, 교육 등을 이유로 친밀한 관계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조가 성적 폭력이 발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폭력임을 인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관계, 종종 가해자가 친밀함과 자원이 되어주는 유일한 사람인 현실에서 이러한 거절은 너무 어려운 미션이다. 단호한 거절은 일상적 관계에서 경험하는 폭력에 맞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경우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력도 갖기 어렵다. 교육, 상담, 보호, 관리, 돌봄, 지원 등의 다양한 이름을 덮어씌운 친밀한 관계에서의 통제는 여전히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거나, 외부에 알려짐으로써 겨우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사회는 쉽게 오랫동안 성적 폭력이나 경제적 착취에 노출된 이유를 장애 특성에서 찾으려 했다.

붉은 조명이 은은한 혼자만의 방 안에 한 여성이 편하게 쇼파에 기대어 있다. 촛불과 음악을 켜놓고 자위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붉은 조명이 은은한 혼자만의 방 안에 한 여성이 편하게 쇼파에 기대어 있다. 촛불과 음악을 켜놓고 자위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발달장애, 개인적 일탈은 왜 사회적 위협이란 낙인이 되었나

장애인 거주시설의 성폭력 문제는 심각한 사건을 중심으로 사회에 드러났고 운영 주체나 종사자 등 주로 관리 권한을 가진 이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다수였다. 2005년 김포사랑의 집 성폭력 사건과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등이 그 예이다. 오랜 세월 감금하고 성폭력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던 관리/운영 주체들의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장애인 거주인의 성적 행동을 문제 삼는 관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11년 소위 ‘도가니 사태’ 이후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정부 합동대책이 쏟아졌지만,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성인권 교육 제도화 외에 근본적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 대책, 성교육을 통한 규범의 강화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성교육이 강화될수록 권리가 증진되기보단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적 행동을 판별하려는 의도가 노골화된다. 발달장애인의 개인적 일탈은 이제 범죄화되어 사회적 위협이란 낙인이 씌워진다. 지체/발달장애여성을 성폭력 피해자로만 호명하고, 지체장애남성을 성적 권리와 욕망을 가진 위치로 구획 지었던 사회적 시선은 이제 발달장애남성을 가해자화 하며 위협적인 존재로 본다. 이 위협의 실체는 무엇일까. 실제 발달장애남성의 성적 행동이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은 장애유형보다 남성이라는 성별 때문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일어나는 현실을 함께 볼 수밖에 없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성적 행동이 위협으로 느껴지는 이유로 의사소통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주민처럼 의사소통이 어렵기에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도를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나는 ‘나를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문제적’ 집단 안에서 벌어진 ‘사건’은 ‘재현’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는 쉬우나 막상 그 ‘해결’은 너무나 어려우며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7)는 황지성의 말처럼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사회가 위협으로 느끼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러한 복합적인 분석보다 장애 특성으로 인한 범죄로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 결과 장애남성의 섹슈얼리티가 구성되는 사회적 맥락은 삭제된 채, 모든 행동을 성적으로 바라보며 범죄화/과잉성애화하는 하는 입장과 어떤 성적 의도도 없다는 무성애화하는 극단적 입장만이 존재하게 된다.

발달장애인의 성적 시민권을 고민하기 위해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특수한 영역 혹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둘수록 장애인의 시민권 역시 제한된다. 서동진은 “‘이성애 시민과 동일한 권리’ 자체가 성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권리이고 성적인 부분을 간과하고는 이성애 시민과 동등한 권리적 주체가 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8)라고 말했다. 시민권을 구성하는 기반이 이성애적 정상규범을 전제하는 한 성소수자의 시민권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 주장은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도 대입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상적인 몸을 가진 장애인의 성적 권리는 애초부터 비장애 이성애 시민과 동등한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일정 정도 할당된 권리에 만족해야 한다.

허윤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서 법규제로 ‘비정상인’과 ‘비국민’을 가려냈다고 분석한다. “1950년대 한국사회에서 병역법과 경범법은 가시화된 여장남자를 단속하고, 남성 ‘국민’을 만드는 데 복무”9)했다는 것이다. “남성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진짜사나이’”를 만들고, 여장남자를 처벌함으로써,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법적 규제를 거쳐 국민 만들기”10)로 이어진다고 밝힌다. 이를 통해 “시대와 ‘불화’하는 퀴어한 몸들에 대한 사회의 불안, 혐오 등의 감정 판단이 법 제정과 집행에 개입할 여지”11)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 모자보건법의 우생학적 사유를 통한 재생산권 통제, 장애등급제 등 국가는 장애인의 몸을 비정상화하는 체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도 사회복지 안에서 시설 수용 정책 중심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삭제한 채, 발달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불안을 근거로 국가가 발달장애인의 몸을 훈육하는 방식의 제도화된 성“규범화” 교육을 진행해온 역사는 성소수자를 통제한 역사와 만난다.

성적 낙인과 규범을 통해 시민권을 할당하는 방식은 청소년 섹슈얼리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과정은 체벌 금지, 두발과 복장 자유화, 집회의 자유 등을 쟁취하기 위한 학생인권운동의 역사를 계승하면서도 특정한 연령과 섹슈얼리티를 배제해온 기존 시민권의 범주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2) 십 대의 성적 시민권에 대한 고찰은 발달장애인의 성적 시민권 논의에 힘을 준다. 십 대 섹슈얼리티와 발달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들이 교차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성숙하고, 관리나 통제가 필요한, 자기결정권을 가지기 어려운, 주거권/경제권 등에서 자원과 선택지가 빈곤한 상황 등이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보호와 안전 담론 속에서 성적 권리를 유예 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는 이러한 상태가 바로 섹슈얼리티의 시설화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길(Michael Gill)은 “성적인 존재가 될 능력이라는 개념은 적합함(fitness)에 대한 젠더화된, 계급화된, 인종화된 평가와 뒤섞여 있다. 어떤 몸들은 감시와 개입 없이 성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다른 몸들은 통제와 감시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13)고 말했다. 성적 권리 제한을 통해 시민권을 제한하는 방식에 대해서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시민권 논의와 분리해 내는 방식은 장애인의 성적 권리뿐만 아니라 소수자들의 성적 권리의 범주도 축소시킬 것이다. 왜 비이성애적 실천과 발달장애인의 성적 실천들이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교정되어야 하는 문제행동으로 취급받는지, 왜 다양한 성적 실천들 또한 인간 삶의 조건으로 이해되지 않는지 질문해야 한다. 시설화된 섹슈얼리티를 부수고 모두를 위한 성적 권리를 이야기할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있다. 그 아래에는 “서로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의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 중의 하나겠죠?”라는 문구가 써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있다. 왼쪽에 있는 사람 피부는 하얀 편이며,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검은 편이다. 그 아래에는 “서로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의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 중의 하나겠죠?”라는 문구가 써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상호의존성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하는 관계

타인의 보조나 지원이 필요한 몸들의 성적 권리는 대상화나 보호주의로 실현될 수 없다. 장애여성운동에서 오랫동안 주목해온 ‘의존성’을 성적 관계에서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자위나 성관계를 지원하는 장애인 성서비스라는 제도적 방식이 아니라 성적 실천에서 다른 몸들은 어떻게 상호의존하며 다른 감각과 관계를 구축해내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적 영역, 즉 대소변과 목욕 등 신변에 대한 것과 성적 욕망과 실천에 관한 것들에 공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 동정적이고 더럽다는 생각을 거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 역할과 젠더 표현, 공중화장실의 구조 등 사회 전반의 사적인 영역과 관련된 것들이 공적 영역의 문제로 구획되어 있음에도 왜 어떤 문제에 대해선 공공의 권리와 거리가 먼 이질적인 사례로만 다루려고 하는 걸까.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조력과 지원이 필요한지 고민하기보단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성욕은 인정하지만, 허용의 범주를 타인이 갖는 한 사랑과 저항이 동시에 가능한 권리를 발달장애인이 갖긴 어렵다.

발달장애인의 성적 욕망과 실천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성적 관계와 상상력을 촉진하는 이야기로 경청하는 세계를 상상해 본다. 상호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의존성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아니라 비발달장애인이 어떤 변화를 먼저 실행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 변화는 지원자로서, 함께 억압받는 동료로서 기꺼이 겪어야 할 과정이어야 한다. 성적 규범에 갇히라고 규율하기보다 혼돈 가득한 지식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떤가.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어떤 지침이 없는 곳에서도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자양분, 그리고 이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힘”14)을 함께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특히 성적 폭력 중심으로 이루어진 담론과 정책에 틈을 내기 위한 필수적인 도전이다. 성적 즐거움을 찾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위험에 대한 걱정으로 즐거움을 막기보단 위험 전후에 곁에 있어 줄 지원과 동료를 고민해야 한다.

“사.생.활.방.해.하.지.마. 발음해 봅니다. 써봅니다. 뜻을 말해 봅니다. 가치를 익혀 봅니다. 가까운 관계에서 연습해 봅니다. 틀립니다(혹은 상대방이 받아들여 주지 않으니 연습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사과합니다(혹은 상대방에게 왜 나의 표현을 받아들여 주지 않냐고 화를 냅니다) 부끄럽습니다(아니 화가 납니다). 괜찮습니다(아니 주눅 들었습니다). 다시 시도해 해봅니다(또 해볼 수 있을까요?). 나 없을 때 내 이야기하지 마세요. 내 지갑 내가 관리해요. 비밀 서랍이 필요해요. 아무도 만질 수 없어요. 복지카드 왜 맨날 걷어 가나요? 내 혜택은 직접 내가 받고 싶어요. 통장내역 알려주기 싫어. 내 명의로 함부로 통장을 만들지 말아요. 내 도장은 어디에 있나요. 새로운 말들로 이어지게 하고 다시 연습을 시작합니다.” 이 말들은 사생활에 대한 성교육에서 함께 연습한 과정과 표현을 글로 써본 것이다. 성교육에서 함께 호흡하며 우리는 서로의 참고자료가 된다. 공동의 도전행동을 서로 부추기며, 상대방의 실패가 때론 다른 동료의 자원이 된다. 많은 경우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들은 이미 생존과 저항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김순남은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로서 ‘잘 살아가는’ 삶의 모델 부재를 경험하고, 이성애 규범적 생애주기 외곽에서 동성애자의 삶이 사회적으로 의미화되지 못하여, “실패한 삶” 혹은 “비존재”의 삶을 귀결되는 가능성을 담지“15)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도로부터 배제된 이런 상황이 ”배제나 실패의 의미만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독자적인 관계의 모델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사랑하기’, ‘가족하기’, ‘공동체 만들기’의 친밀성 실천을 해나간다“고 밝혔다.16) 발달장애인에게 비발달장애인의 세계는 규범만을 강요할 뿐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되긴 어렵다. 장애인운동 안에서도 발달장애인은 인지와 비이성적이라는 평가로 섹슈얼리티에 대해선 예외적 평가와 사례 관리가 필요한 사람으로 구분되어 왔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은 그들만의 정보와 커뮤니티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한다. 마치 “백인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흑인의 운명은 아니”17)라는 말처럼 이들은 비장애인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발달장애인의 운명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규범과 규칙 사이에서 불가능을 체화하고, 몸의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 도전행동이 시설화된 몸과 섹슈얼리티에 균열을 내고 있다. 시설화된 이 세계에서 모두의 성적 권리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 토론하기 위해서라도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예외로 두어선 안 된다. 혼란과 불안과 동시에 즐거움이 존재하는 ‘도전의 세계’를 교육하고 평가하며 사례회의 하는 것을 멈추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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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지혜, 「장애인의 성을 다시 말하다」, 시사인, 2016.5.5

2) 정진옥 성지작업활동시설 원장, 「시설 장애인의 자위행위 권리 성지작업활동시설」, 2008년.

3) 현재 시라큐스대학교 여성과 젠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장애여성공감의 오랜 회원이다. 이 책은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세미나에서 김은정님과 함께 진행한 세미나 덕에 책 내용의 일부인 챕터3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귀중한 내용을 공유해 주신 김은정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4) Don Kulick, Jens Rydström, 『Loneliness and Its Opposite: Sex, Disability, and the Ethics of Engagement』, Duke University Press Books, 2015. 3. 13.

5) Michael Gill, 『Already Doing It: Intellectual Disability and Sexual Agency』,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6) 홍선영·윤치연·김화정·장민지, 「장애아동 유형별 성폭력예방교육 실태분석 및 프로그램 개발」, 부산여성가족개발원, 2012.

7) 김혜선 외 36명, 『경계없는 페미니즘』, 와온, 2019.

8) 서동진, 「인권, 시민권 그리고 섹슈얼리티: 한국의 성적 소수자 운동의 정치학」, 『경제와 사회』, 2010.

9) 허윤, 「1950년대 퀴어 장과 병역법·경범법을 통한 ‘성 통제’」, 『‘성’스러운 국민』, 서해문집, 87쪽, 2017.

10) 허윤, 위의 논문, 108쪽.

11) 허윤, 위의 논문, 98쪽. 

12) 김연주·나영정, 「2013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통한 시민권의 재구성–연령과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기억과 전망』, 여름호.

13) Michael Gill, 위의 책.

14)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177쪽.

15) 김순남, 「이성애 결혼/가족 규범을 해체/(재)구성하는 동성애 친밀성:사회적 배제와 ‘독립적’ 삶의 모델 사이에서」, 『한국여성학』(29호), 2013.

16) 김순남, 위의 논문.

17) 오드리 로드 주해연 박미선 옮김, 시스터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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