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2007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운동 사회의 성평등과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07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운동 사회의 성평등과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다른 장애인단체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내가 활동하고 있는 조직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에 대하여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활동가나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건네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은 이들은 대개 “농성을 해요.”, “천막을 쳐요.”와 같은 대답을 한다. 농성 투쟁. 그것만이 전장연의 정체성이고 차별성일까? 소위 주류 장애계라고 하는 단체들도 필요에 따라 집회나 농성의 방식을 활용해서 단체의 요구를 주장한다. 하물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전 당대표도 삭발·단식 농성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농성과 전장연의 농성은 선명한 차이가 있다. 만일 그들의 농성과 전장연의 농성이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만큼 흐릿해진다면 나는 전장연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전장연은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상설적 투쟁체’로서 정체성과 차별성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전장연을 가르는 선명한 ‘전선’은 무엇일까? 강령에 나와 있듯 ‘지배 권력에 편입되지 않으며,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나가는 모든 현장에서 ‘전선’은 만들어져 있다. 그 ‘확고한 원칙’ 속에 장애인운동이 만들어낸 수많은 전선이 있겠지만, 나는 ‘장애인운동 내 반성폭력운동’이라는 전선이 특히 다른 장애인단체와 전장연이 선명하게 차이를 드러내는 전선이라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으로 인해 반성폭력 이슈가 전 국민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의 발화는 조직을(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지고 비난받는다. 전장연도 자원이 부족한 조직으로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 간의 갈등으로 심하게 진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전장연은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상설적 투쟁체’로서 정체성과 차별성을 가져야만 생동하는 조직이다. 피해자의 곁에 서는 것이야말로 조직 전체가 흔들릴지라도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상설적 투쟁체’로서 살아남는 길임을, 전장연은 출범 당시부터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강령에도 아래와 같은 조항을 두고 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반성폭력위원회’라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닌 기구를 설치하고, 조직 내 성인지적 관점 확산을 위한 대중 사업과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정 접수·조사 등을 진행해왔다.

5. 우리 자신의 민주화와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우리는 대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켜나감과 동시에 우리 자신의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회전체 뿐만이 아니라 운동사회 내부에도 만연해 있는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의 입장과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 (후략)

_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강령 중에서

전장연 반성폭력위원회는 2007년 8월 17일 전장연 창립총회에서 ‘장애인운동 사회의 성평등과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이하 내규)’를 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활동이 시작됐으나, 그 태동은 2005년 4월부터 시작된 ‘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의 여성위원회 준비모임으로 보고 있다. 이 준비모임은 2005년 10월 전장연(준)의 여성위원회 준비모임이 되었고 전장연 공식 출범까지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평등한 소통과 연대를 위한 우리의 약속 제안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를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단식 농성 중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여성인권침해 관련 대응 등의 활동을 진행하였다. 또한 전장연 창립총회에서 ‘장애인운동 사회의 성평등과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를 제정하기 위해서 내규 초안을 작성하고 제안하였으며, 내규에 대한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공청회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전장연 반성폭력위원회의 주요한 일상사업 중 하나는 내규에 근거한 ‘반성폭력 의무교육’이었다. 내규에 따라 전장연 중앙운영위원과 지역조직에서 보직을 맡은 회원은 의무교육대상자로 지정되었고, 7월, 9월 총 2회에 걸쳐 진행되는 반성폭력교육 중 1회 이상(6시간 이상)을 참여해야 했다. 반성폭력위원회는 반성폭력 의무교육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반성폭력 의무교육이 어렵지만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별로 재정과 인적 구조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의무교육 이행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 의무교육 대체 과제 제출 등으로 의무 이행 수위가 점차 낮아짐에 따라, 2011년 2월 총회에서 내규를 개정하여 의무교육을 자율교육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사실상 의무교육이 폐지되면서 반성폭력위원회의 활동은 축소되었고, 비공개로 진정되는 조직 내 성폭력·인권침해 사건 조사 및 권고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성폭력 없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만들기 - 자립생활과 성평등’을 주제로 강의하는 모습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성폭력 없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만들기 - 자립생활과 성평등’을 주제로 강의하는 모습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상설적 투쟁체’로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했던 전장연 반성폭력위원회의 활동은 매우 선도적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회의적인 평가 속에 의무교육 존폐를 논의하다가 끝내 자율교육 전환으로 결정됐을 때, 반성폭력위원회 활동을 했던 주체들은 무기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운동조직으로서 하기로 해놓고 하지 못하는 일이 수백만 가지인데, ‘반성폭력’ 의제라고 해서 과연 그 한계를 넘어서는 권한이 발동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현실의 상황을 수긍하는 한편, ‘현실적인 문제라며 너무 손쉽게 조직의 한계로 평가내리는 것은 아닌가? 조직의 예산과 역량을 보다 적극적으로 배치하지 않는 문제는 아닌가?’라는 의문도 떠올랐다. 자율교육으로 전환된 현재, 반성폭력교육은 지역조직 중에 예산과 역량 배치가 가능한 곳 4개~6개 지역 조직이 매년 기본 교육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비록 힘 빠지는 과정도 있었지만 ‘장애인운동 내 반성폭력운동’이라는 전선은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우리 자신의 민주화와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성폭력위원회는 다시 2018년에 워크숍을 열어 ‘장애인운동 내 반성폭력운동’을 평가하고 이후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여전히 장애인운동 사회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성욕’을 부적절하게 저지르는 가해자의 문제로만 환원되고, 조직 내에서 어렵고 골치 아픈 일로만 여겨진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학대와 인권침해가 시설 종사자 개인의 폭력적인 성향에서 비롯되는 사건이 아니라 ‘거주시설’이라는 불평등한 권력구조가 만들어내는 문제임을 우리는 명백하게 알고 있다. 성폭력 문제 역시 가해자의 성욕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불평등’한 권력구조에 있음을 주목하면 되는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리 안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그저 ‘성폭력 저지르지 않기 운동’으로 납작하게 해석해왔던 것은 아닐까?

반성폭력위원회는 그간의 위원회 활동이 성폭력 사건 발생 이후 조사와 권고 등 사후 활동 위주로 진행된 점이 위원회로서의 최소한의 권한과 책임이었다고 평가하는 한편, 조직 구성원들에게는 ‘성폭력 저지르면 진정당하는 곳’이라는 인식과 긴장감을 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이 ‘성폭력 저지르면 안 된다’에만 머무른다면,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자기 권력을 성찰하고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시도되지 않을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은 ‘불평등’에 저항하는 운동임이 분명하다. ‘가해자 되지 않기’라는 협소한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피해자도, 가해자도 만들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 끝에 2019년 내규를 개정하여 ‘반성폭력위원회’는 ‘성평등위원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전장연 성평등위원회는 앞으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중사업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활발하게 활동하고자 한다. 우리 조직 내의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활동하기 위한 성평등위원회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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