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초록의 동산과 나무가 자리한 가운데, 왼쪽부터 오리, 돼지, 사람, 소의 머리가 나란히 한곳을 보고 있다. 사람 머리 위에 앉은 닭 또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수동성만 강조되는 기존 채식 이미지와 달리, 생명 있는 존재들의 조용하지만 활기찬 연대가 느껴진다. ⓒ다이애나랩
초록의 동산과 나무가 자리한 가운데, 왼쪽부터 오리, 돼지, 사람, 소의 머리가 나란히 한곳을 보고 있다. 사람 머리 위에 앉은 닭 또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수동성만 강조되는 기존 채식 이미지와 달리, 생명 있는 존재들의 조용하지만 활기찬 연대가 느껴진다. ⓒ다이애나랩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사회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오는 식당 앞을 지날 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이 있다. 참석하지 않을 수 없어 애써 자리를 지켰지만 불편한 감정에 휩싸였던 장면들이다. 그 기억 안에는 사회 초년생 시절 회식 자리, 직접 참여한 전시의 오프닝 행사도 있다. 작업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고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에 인내가 필요했고 고통스러운 날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힘든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감정노동을 하는 것인지도 파악조차 못 했다. 오히려 타인들이 나를 배려하고 걱정하느라 불편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식사’는 환대, 포용, 사교의 의미를 가질 텐데 나에게는 언젠가부터 어떻게든 잘 넘겨야 하는 허들같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기, 즉 비육식을 택하고 나서 나의 사회적 관계는 달라졌다. 가장 불편한 것은 바로 나였다. 나의 선택적 식습관으로 ‘까탈스럽다’거나 ‘함께 일하기 불편하다’는 오해가 생길까 끊임없이 배려 강박에 시달렸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지만, 살 타는 냄새가 가득한 삼겹살집에서 나는 먹지도 않는 고기를 직접 굽기도 했다. 그리고 조용히 쌈을 위해 놓인 상추와 고추장을 가져다 메뉴에도 없는 비빔밥을 대충 만들어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육수 대신 맹물에 찌개를 끓여달라거나 특정 재료를 빼고 조리해 달라고 부탁하면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타박을 듣는 일이 예사라 알아서 해결하고 말았다.

이런 경험의 축적으로 특정 그룹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건(vegan) 지향-채식주의자’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을 거라 상상조차 못한 것 같다. (‘비건’은 동물의 살뿐 아니라 우유나 계란, 꿀과 같이 동물의 삶을 착취한 음식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을 말한다. ‘비건 지향 채식’이란 그러한 삶의 태도를 매일 엄격하게 지키기는 어려울지라도 조금씩 더 실천해가는 채식의 단계이자 태도를 말한다.)

한번은 이렇다 할 반찬도 없이 고추와 양파만 곁들인 뜨끈한 고깃국물 요리가 주메뉴인 곳에 들어갔을 때, 대충이라도 끼니를 때울 방도가 없었다. 웅녀도 아니고 양파와 고추만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괜찮은 척 있기가 어려웠다. 또 하루는 본인이 참여한 전시의 행사 자리였는데 미술관에서 준비한 케이터링에 그 흔한 샐러드조차 없었다. 생각해보면 축하를 받아야 하는 자리였지만 배려조차 받지 못했다. 그날 종일 빈속에 포도만 집어 먹어서인지 아니면 짜증으로 인한 위산 분비 때문인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집에 돌아왔다. 주최 측은 심지어 비건인 나에게 유기농 꿀을 특별 선물이라며 건넸다.

채식은 트렌디한 고급 취향이다?

편하게 식사할 곳을 제안하기 쉬운 환경이었다면 이런 일이 덜했을까. 종종 동료들이 나를 배려하기 위해 장소 선택을 맡길 때,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근방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을 급급하게 찾아야 했다. 즐거운 휴식이 되어야 할 식사가 스트레스로 번지는 일이 늘고,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한 번씩 던지는 말에 상처받았다. 그러면서도 왜 나는 오래도록 이것을 ‘차별’이라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까.

오늘날 육식은 자본주의 대량생산 방식으로 움직인다.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깊숙이 배어있는 인식을 나의 정치적 선택과 지향으로 매번 거스르기는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웰빙’이라는 말이 온 사회를 휩쓸던 때라 ‘채식’을 두고 ‘비싼 유기농을 소비하는 트렌디한 고급 취향’쯤으로 오해하는 시선도 있어 여러모로 불편했다. 웰빙은 기실 잘 먹고 잘사는 평화로운 ‘개인’의 삶의 가치를 말할 뿐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생태적 삶을 긍정하며 지역 농산물에 관심 갖는 경우가 더 많다. 트렌드나 부유함을 떠올리는 ‘웰빙’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그 말을 피하지 말아야 했다. ‘개인이 잘 사는 것’이 지역 공동체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잘 사는 방향과 연결되고 확장된다고 더 이야기해야 했다.

발리 관광 지역의 비건 식당. 생분해 비닐봉투, 바다에 버려진 유리 쓰레기를 수집하고 재활용하여 제작된 다회용 빨대, 바나나잎 등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를 이용한 포장, 비건 페스티벌 개최 풍경 등을 모은 네 컷 이미지. 세계적 관광지 발리에는 1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이주해 수많은 사업에 투자해 지역의 자본화가 심각하다. 관광객이 주로 가는 친환경 비건 식당들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들은 발리의 환경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 ⓒ김화용
발리 관광 지역의 비건 식당. 생분해 비닐봉투, 바다에 버려진 유리 쓰레기를 수집하고 재활용하여 제작된 다회용 빨대, 바나나잎 등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를 이용한 포장, 비건 페스티벌 개최 풍경 등을 모은 네 컷 이미지. 세계적 관광지 발리에는 1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이주해 수많은 사업에 투자해 지역의 자본화가 심각하다. 관광객이 주로 가는 친환경 비건 식당들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들은 발리의 환경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 ⓒ김화용

메뉴판이 선언문이 될 때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고가 났다. 한국을 방문한 해외 작가들과 함께 식당에 방문했는데 한 작가가 극심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 견과류 알레르기를 설명하고 조심할 것을 알리기 위해 한글로 메모도 써서 가져온 터였다. 의사소통이 원활한 우리도 있었기에 견과류는 빼줄 것을 당부하고 큰 걱정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당황스러웠지만 응급약이 있어 위기를 모면했다. 일행은 부랴부랴 주방으로 달려가 그가 먹은 찌개에 들어간 재료를 확인했고, 결국 소량의 땅콩가루가 들어간 걸 파악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음식에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는지 체크할 때마다 항상 듣던 말이 다시 들려왔다. “많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음식이 위협이 될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한 후 식탁을 다시 돌아보았다. 많은 이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배를 채울 때, 누군가는 자신에게 위험한 재료가 포함되어 있는지 긴장하며 체크해야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손쉽게 포섭당하지 않기 위해 힘겹게 원재료를 추적하며, 심지어 어떤 이는 식당의 문턱이 걸림돌이 되어 진입조차 못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약한 존재는 우리에게 먹히기 위해 짧은 삶을 살덩어리로서만 살다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평온한 식탁에 오르기 위해 사실 뒤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헤게모니가 뒤얽혀 있다.

식당 메뉴판에 음식에 포함된 알러지 유발 성분을 적어 놓는 것, 비건 및 채식 옵션이 가능한지 여부를 표기하는 것, 유아용 의자가 비치되어 있는지, 또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지 알려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한 줄의 표시는 개인의 노고를 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 표시는 해당 가게가 개인적 취향, 질병 및 장애 유무, 정치적 지향 등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거창한 말 같지만 식당의 메뉴판은 그렇게 선언이 될 수 있다.

잘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끊임없이 드러내기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를 기점으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버스 그리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비장애인에게 ‘원하는 곳에 버스를 타고 간다’는 평범한 행위가 곧 누군가를 배제한 채 누려온 특권임을 인식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투쟁이 무엇보다 인상적인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많은 장애인을 공적 영역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본 적이 있는가’ 생각하게 만들어서다. 이 사회는 장애가 있는 이들을 특수학교로 보내고 시설에서 생활하게 하면서 끊임없이 ‘정상 사회’에서 분리해왔다. 그렇게 우리는 소수자의 존재를 잘 포착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복해서 소수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분리하는 통에 어쩌면 우리는 배제와 혐오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는지 모른다.

잘 보이지 않던 존재들의 ‘있음’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은 서로를 좀 더 알게 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비록 한계는 있을지라도 공간의 작은 표식, 도구, 장치 같은 것들은 이 공간이 최대한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되기를 지향하고 있다는 알림이 된다. 이런 작지만 섬세한 파장이 우리의 경험을 바꾸고 서로의 간극을 좁혀가는 움직임이 될 것이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닭과 돼지 그리고 소 등 가축동물의 경우도 생각해본다. 사람과 가까이 살아 길들여지고 ‘가축’이 된 이들은 인간 가까이 살아왔다. 우리가 ‘전통’이라 강하게 믿는 육식은 오랜 역사가 있지만, 과거의 육식은 현재의 공장식 축산과 확실히 달랐을 것이다.

가축동물이 마을이나 농장을 떠나 공장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생명을 극단적 ‘살덩어리’로만 다루는 비극만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미약하나마 동물의 생을 인지할 수 있는 관계망이 끊어지면서 인간은 더욱 손쉽게 동물을 학대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가 되었다.

목숨을 내놓은 돼지의 ‘살점’을 판매하는 삼겹살집에서 마스코트로 돼지의 모습을 희화화하여 그려놓은 것을 보면 인간이란 참 잔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에게 ‘학살’의 대상이 아니라 ‘애지중지’의 대상으로 분류되어온 개의 경우, 많은 이들이 식용을 끔찍하게 여기며 반대한다. 직접 만나본 경험과 몸으로 만든 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종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서 인간이 결정하는 차별적인 배제-포섭의 정치가 변덕스럽고 분열적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욱 식탁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가랑비처럼 일상에 촘촘히 스며든 동물들과 연대하기

이제 인생 반 토막의 시간을 비육식으로 지내왔지만, 처음엔 딱 3개월만 비건 지향으로 살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3개월이 생각보다 힘든 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안의 복잡했던 모순을 인정하고 세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채수를 끓이다 보면 재료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표고버섯의 기둥, 파의 뿌리, 양파의 껍질, 배추의 시든 겉잎까지 많은 경우 쓸모없어 버려지는 것들이 채수에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동물성 성분이라는 것이 단순히 덩어리 고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젤라틴으로 만든 영양제 캡슐부터 소고기 시즈닝을 뿌려 놓은 과자까지, 피하기 어려운 가랑비처럼 일상에 촘촘히 젖어 들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정상성’에 균열을 내고 그것에 도전할 때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조금씩 넓어진 역사를 떠올려본다. 지금 우리는 메뉴판에 어떤 도전의 문장을 쓸 수 있을까.

2017 베지월드 베를린 풍경. 채식 축제 ‘베지월드(Veggie World)’는 유럽의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채식 행사다. 각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 기반의 채식 및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기업, 사회운동 단체, 창작자들이 참여한다. 비건 요리 워크숍부터 비거니즘과 관련한 농업·사회학·의학 등 다양한 학술 세미나, 구인 구직 정보 등을 제공한다. 단순히 식자재와 관련된 제품뿐 아니라 동물권·기후위기 관련한 다양한 활동,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정치적 태도와 기업 운영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함께 갈 것인지 고민하는 장이기도 하다. ⓒ김화용
2017 베지월드 베를린 풍경. 채식 축제 ‘베지월드(Veggie World)’는 유럽의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채식 행사다. 각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 기반의 채식 및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기업, 사회운동 단체, 창작자들이 참여한다. 비건 요리 워크숍부터 비거니즘과 관련한 농업·사회학·의학 등 다양한 학술 세미나, 구인 구직 정보 등을 제공한다. 단순히 식자재와 관련된 제품뿐 아니라 동물권·기후위기 관련한 다양한 활동,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정치적 태도와 기업 운영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함께 갈 것인지 고민하는 장이기도 하다. ⓒ김화용

필자 소개

김화용. 미술작가/문화기획자. 고정관념, 관습,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며 이를 둘러싼 경계, 다양성, 젠더에 대한 고민을 만남, 여행, 워크숍, 퍼포먼스 등의 방법으로 작업해왔습니다. 비거니즘 시각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의 신화 뒤에 가려져 있던 비인간 생명종의 착취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옥인 콜렉티브>라는 미술가 그룹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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