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권 시절, 노점 단속 투쟁하다 의문사한 이덕인 열사
시민사회 단체 공대위 꾸려 진실규명과 명예 회복 촉구

이덕인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이덕인,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 -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결정 -'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이덕인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이덕인,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 -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결정 -'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이덕인 열사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시민사회 단체가 출범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등 8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이덕인공대위)’는 26일 오후 2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다음 달에 출범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가 이덕인 열사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967년에 태어난 이덕인 열사는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 인천노점상연합회, 아암도 노점상 철거 비상대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인천시 연수구 아암도에서 노점을 하는 노점상이기도 했다.

이 열사가 활동했던 1995년은 처음으로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돼 지역마다 재개발 광풍이 불던 때였다. 인천 아암도 앞 갯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천시는 노점상을 쫓아내야 갯벌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에 인천시는 아암도 노점 철거를 계획한다.

1995년, 아암도 노점 철거 당시의 모습. 망루 위에 농성자들이 올라가 있고, 망루 아래에는 포크레인이 있다. 사진 장애해방열사_단
1995년, 아암도 노점 철거 당시의 모습. 망루 위에 농성자들이 올라가 있고, 망루 아래에는 포크레인이 있다. 사진 장애해방열사_단

1995년 11월 24일, 연수구청, 군인, 경찰, 용역 등 천여 명이 노점을 철거하기 위해 동원됐다. 이 열사는 공권력의 탄압에 항의하며 미리 설치한 망루 위로 올라갔다. 망루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체포였다. 식수와 음식, 의약품 등 모든 것이 차단된 상황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위해 25일 탈출을 시도한 이 열사는 사흘 후인 28일 오전, 바다 위 변사체로 발견된다.

상의는 벗겨진 채 두 손은 밧줄에 감겨 있었다. 누군가에 의한 의도적 타살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4시, 경찰 1,500여 명은 인천 길병원 영안실 콘트리트 벽을 뚫고 난입해 이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간다. 강제 부검 후, 경찰이 발표한 사인은 ‘익사’였다. 이듬해 4월까지 시민사회 단체는 진상규명을 위한 장례 투쟁을 이어갔지만 끝내 김영삼 정부의 사과는 받지 못했다.

이덕인 열사의 죽음에 대한 정부 입장은 정권마다 오락가락했다. 2002년에야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기구였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열사가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2008년)는 이 열사의 사망을 “노점을 단속한 지자체의 고유 사무”라고 축소하며 명예 회복과 배·보상심의 신청을 기각했다. 2009년, 과거사위가 다시 한번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한 사망인지에 대한 조사는 미진하므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명예 회복의 길이 열리는 듯했으나, 2010년 12월 과거사위 해산으로 희망은 사라졌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덕인공대위가 다시 꾸려진 이유는 다음 달에 과거사위가 다시 출범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대 국회 막바지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과거사위는 다음 달부터 활동을 재개한다.

이덕인공대위 출범 기자회견 모습. 참석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고 아래에는 큰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현수막에는 '장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 25주기 추모,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이덕인공대위 출범 기자회견 모습. 참석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고 아래에는 큰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현수막에는 '장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 25주기 추모,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한목소리로 과거사위가 이 열사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창훈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25년 전, 이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날 때 그의 가슴 속에는 민중 해방 세상, 장애 해방 세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렸던 희망찬 세상을 위해 과거사위가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최을상 의장과 이원교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왼쪽부터 최을상 의장과 이원교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최을상 전국노점상총연합 의장은 “지금 이곳, 광화문의 촛불 행렬이 문재인 정권을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하지만 정권이 바뀐들 우리 노동자, 빈민, 장애인, 철거민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과거사위가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원교 우동민열사추모사업회 회장은 “김영삼 정부는 민주주의의 열망으로 태어난 정권이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던 그 시절에 공권력이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태어난 정부다. 국민 한 사람이 죽어도 이유를 밝히는 게 정부의 책임이다. 과거사위는 이 열사 죽음의 진실을 하루빨리 밝혀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길 간절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덕인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도 참여했다. 이 씨는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복잡한 심경을 대신해 참가자에게 안부를 전했다.

이덕인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가 정부서울청사 민원실에 요구안을 접수하고 있다. 요구안 봉투에는 '이덕인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이덕인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가 정부서울청사 민원실에 요구안을 접수하고 있다. 요구안 봉투에는 '이덕인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후 활동가들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열사의 기일을 기리며 열사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 열사의 유족 이기주 씨, 최을상 의장, 이원교 회장은 정부서울청사 민원실에 진실규명 요구안을 접수했다. 수신처는 행정안전부, 과거사위, 국무총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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