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코로나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⑨
장애인거주시설, 요양시설, 정신병원 등에 수용된 사람들

청도대남병원에서 정신장애인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던 지난 2월 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코로나19 사망자를 애도하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 11개가 국가인권위원회 계단에 놓여있다. 그 앞에는 국화가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청도대남병원에서 정신장애인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던 지난 2월 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코로나19 사망자를 애도하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 11개가 국가인권위원회 계단에 놓여있다. 그 앞에는 국화가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 유엔의 충격적 보고서 “코로나19 사망자 절반이 시설 거주인”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은 나라에서 요양시설(Nursing home)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 중 42~57%에 이르렀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UNOHCHR)가 2020년 4월 29일에 내놓은 ‘장애인 권리와 코로나19’ 보고서를 살펴보다 이 어마어마한 수치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설마 오타인 건 아닐까? 유엔 공식 문서에서, 더구나 통계 관련 내용에 오타가 날 일은 만무했으나, 워낙 믿기 힘든 내용이다 보니 그런 의심까지 들었다.

원자료를 찾았다.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International Long Term Care Policy Network)’가 발표한 ‘케어홈(장기요양시설)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예비조사 자료였다. 4월에 3번, 5월에 1번 보고서는 계속 업데이트되었는데,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전체 코로나19 사망자 중 ‘장기요양시설(장애인 거주시설, 그룹홈, 요양시설, 정신병원, 장애아동 기숙학교 등 포괄)’ 거주인 비율이 72%(캐나다, 2020.4.26일 보고서 기준)에 이르는 국가도 있었다. 보고서마다 조금씩 수치는 달라졌지만, 전체 사망자 중 시설 거주인의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유사한 양상이었다.

미국 뉴욕장애인권익옹호모임(New York Disability Advocates)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 및 인근 지역 내 그룹홈 및 이와 유사한 기관 거주자들은 전체 인구에 비해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은 5.34배, 감염으로 사망할 확률은 4.86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3월 8일 기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요양원에서만 코로나19로 4,260명이 사망했고, 프랑스의 코로나19 사망자 3분의 1이 요양원에서 나왔다(4월 7일 기준).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신장애인 시설 내 한 방에 20~30명가량이 수용되는 과밀화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애인 활동가가 하얀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장애인 안전대책 마련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장애인 활동가가 하얀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장애인 안전대책 마련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 나는 왜 코로나19에 감염되고도 이곳에 갇혀야 합니까

한국도 시설 거주인의 코로나19 감염 관련 공식 통계는 없었으나,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청도대남병원 폐쇄정신병동에서 나왔고, 해당 병동 환자 전원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사랑의 열매 나눔문화연구소의 조사(2020년 7월 15일)에 따르면, 요양병원에서는 7개소 385명, 정신병원 등 폐쇄병동 형태의 의료기관 3개소에서 330명, 장애인 거주시설 2개소에서 36명이 집단 감염되었다. 집단 사용 공간이 많은 시설의 특성상, 시설은 본질적으로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청도대남병원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과 잇따른 사망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코호트 격리 조치’였다.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이 정부의 코호트 격리 조치에 반발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구제를 요청했다. 그러고 나서야 청도대남병원에서 수십 년을 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서도 그 공간에 갇혀있어야 했던 이들은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코호트 격리’에 머물러 있다.

너무나도 선명한 이 죽음들을 방치하는 것은 차라리 ‘학살’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물론, 다른 국가들에서도 시설 거주인에 대한 특별한 코로나 19 대응정책이 갖춰진 곳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죽어야 끝나는’ 시설의 역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한 작은 단체 단독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그러던 중 유럽의 대표적 진보적 장애인운동 단체인 ‘ENIL(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 European Network on Independent Living)’이 “긴급탈시설”을 주제로 진행한 웨비나를 보게 되었다. ENIL은 2019년, 불가리아 정부를 EU 집행위원회에 제소한 단체이다. ENIL은 장애인 자립생활에 쓰여야 할 유럽연합 공동기금을 그룹홈 운영 예산으로 책정한 불가리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룹홈은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공간이 아닌, 시설 소규모화 정책의 일환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소의 근거였다. 탈시설 이슈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단체인 만큼, ENIL에서 진행하는 웨비나에 대한 신뢰도 매우 높았다.

이날 웨비나에는 단라미 바샤루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장, 카탈리나 데반다스 당시 유엔장애인권리특보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드러낸 집단 수용시설의 취약성과 반인권성을 지적하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아래 CRPD) 10조(건강권), 11조(위급상황과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 19조(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동참)에 따라 코로나19 긴급 재난 상황에서 시설 거주인의 탈시설을 즉각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지역사회 지원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시설 거주는 과거 당사자에게 유일한 선택지였음을 강조했다. 의제는 선명했고, 발언은 단호했다.

곧장 ENIL로 메일을 보냈다. 탈시설 의제에 목소리를 모으고, 더 많은 곳에 알리기 위해 12월에 열릴 13차 유엔 CRPD 당사국회의에서 사이드이벤트를 함께 개최하자는 내용이었다. ENIL은 흔쾌히 우리의 연대 제안을 수락했다. 한 차례 온라인 회의를 거치며 사이드이벤트 구성이 풍성해졌다. 유엔 CRPD 위원회 23차 세션에서 구성된 ‘탈시설 워킹그룹’ 멤버인 요나스 뤼스커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부의장을 비롯해 아프리카, 북미, 태평양 등 다양한 대륙별 시설 내 코로나19 피해 현황을 전해줄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모였다.

12월 2일, 뉴욕 시간으로는 오전 8시 30분인 밤 10시 30분에 사이드이벤트가 시작됐다. 굉장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한국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행사 끝까지 귀를 기울여 주셨다. 탈시설 의제에 관한 한국 장애계의 뜨거운 관심을 다시 한번 느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탈시설이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 의제이자, 당연한 미래라는 점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대표적인 국제 장애인 인권 기구인 유엔 CRPD 위원회에 탈시설 워킹그룹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었다. 요나스 뤼스커스 위원은 탈시설 워킹그룹은 다양한 장애인 당사자 그룹의 의견을 반영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당사국들에 이를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도출되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커뮤니티 케어’의 탈을 쓰고 진행되는 시설 소규모화 등 기만적인 탈시설 정책은 더이상 면피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일, 한국장애포럼이 보건복지부,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제1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아래 UN CRPD) 당사국 회의 사이드이벤트 ‘코로나19와 CRPD 19조; 장애포괄적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한 CRPD 촉진’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지난 2일, 한국장애포럼이 보건복지부,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제1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아래 UN CRPD) 당사국 회의 사이드이벤트 ‘코로나19와 CRPD 19조; 장애포괄적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한 CRPD 촉진’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 ‘긴급 탈시설’이 코로나 대응 정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

그러나 ‘긴급탈시설’에 대한 회의적 입장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었을 때 너무 많은 예산이 들거나, 제대로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돌봄이 가족에게 가중될 수 있다는 등이 주된 우려점이다. 이에 대해 이네스 불리쉬 ENIL 사무총장은 아래와 같이 답했다.

“‘긴급탈시설’이라는 개념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 많다. 많은 정부들에서도 시설의 심각한 코로나19 피해 사실에 대해 사람들을 나오게 하는 것보다 더 공고히 격리하는 것에 집중한다. 우리의 메시지는 탈시설이 코로나19 대응 정책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미 오랫동안 지연되어온 자립생활의 권리가 더이상 유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도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은 언제나 현실적 상황을 변명으로 지연되어 왔다. 그리고 이는 팬데믹에서도 이어졌다. 우리는 팬데믹 기간 중에도 시설이 보강되는 것을 보았다. 긴급탈시설은 ‘격리’가 아닌 ‘지역 내 자립생활'을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복지 패러다임으로 변환해야 하며, 이는 긴급 상황에서 더더욱 촉진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질리안 파렉 캐나다 요크 대학의 통합·장애 및 교육 연구소장은 긴급탈시설 의제에 대한 반대 근거가 ‘에이블리즘(비장애인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사실은 아주 오래된 차별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파렉 교수는 “시설 감염 및 사망률이 치솟자, 사회 및 노동 관련 제약을 포괄하는 코로나19 대응 방안이 마련되었으나, 사회는 경제적 손실을 더 큰 문제로 바라보았고, 이러한 제재 조치들은 곧 해제되었다”라며 “이는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감염과 사망은 부수적 피해’라고 보는 사회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근간에는 인간의 가치를 효용성, 능력에 기반해 계산하는 비장애중심주의(ablism)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파렉 박사의 분석을 들으며, 다시 한번 시설 유지를 옹호하는 이들의 근거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생각했다. 이들에게 시설은 ‘위험한 사회’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그저 경제적 효용성에 기반해 구성된, 비장애중심주의적 사회가치의 수호책일 뿐이다. 그리고 팬데믹은 다시 한번, 시설이 얼마나 ‘위험한’ 공간인가를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전 세계 각국의 장애인권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나 많은 시설이 있으며, 이를 유지하는 변명이 너무도 닮아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이 절망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탈시설 운동에 대한 무한한 연대의 가능성에, 그리고 이 운동을 통하여 만들어낼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가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이다.

○ 참고자료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International Long Term Care Policy Network), ‘케어홈(장기요양시설)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조사(Mortality associated with COVID-19)’, 2020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UNOHCHR, 장애인 권리와 코로나19(Disability Rights and COVID-19), 2020년

-질리안 파렉, 코로나19와 캐나다의 장기 돌봄 정책(Institutions and COVID-19 cases in Canada), 2020년

-ENIL, ‘통합을 통한 안전’: 긴급 탈시설 사례를 중심으로(Safety through Inclusion: the Case for Emergency Deinstitutionalisation), 2020년

필자 소개 

최한별. 한국장애포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장애계의 투쟁이 세계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대를 확장하는 기쁨과 고통(!)에 푹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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