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재생산권리 넘어 실천적 변화에 주목한 ‘재생산정의’
‘사회 안전’이유로 장애여성에 대한 시설화, 이제는 ‘안전’ 재개념화할 때
의학적 근거 없는 의료인의 ‘비장애인중심주의’ 반성 필요해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 상 낙태죄(자기낙태죄 조항 제269조 제1항, 의사낙태죄 조항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금으로부터 약 2주 뒤인 12월 31일까지 정부와 국회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형법 및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0월 7일, 형법 상 낙태죄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낙태의 허용요건 조항을 신설한 법안을 입법예고 했다. 낙태죄 완전 폐지가 아닌, 임신 24주 주수 제한을 두는 등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8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낙태죄 폐지 관련 공청회가 열렸지만, 여야 추천 전문가 8명 중 5명은 낙태죄 유지를 주장해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정치적 논란만 가중됐다. 이에 법 개정시한인 12월 31일을 코앞에 두고 졸속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대로라면 낙태죄 처벌 조항만 폐지될 뿐, 성과 재생산권리의 실현을 위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 내년을 맞이해야 한다. 단순히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안에서는 모자보건법상 우생학적 예외사유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뿌리 깊게 박혀온 우생학적 사고와 정책이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임신중지의 합법적 근거는 태아의 손상을 기준으로 하며, 장애를 이유로 성적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낙태를 권유받을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재생산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젠더 불평등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이는 임신중지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요인들을 바꿔나가 ‘재생산정의’를 실천하는 활동을 통해 가능하다. 안팎에 따르면 재생산정의는 ‘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기 전에, 누가 ‘나’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 말하자면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한 문제다(관련 기사). 지금까지 성과 재생산권 논의에서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그런 권리를 지금까지 누가 인정받았고 누가 배제되었는지, 그 삶의 조건을 조명할 때다.

비마이너는 올해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를 기획연재 중이다. 1부에서 장애여성공감과 함께 장애여성의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해 짚어보았다면, 2부에서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아래 셰어)와 함께 장애여성의 재생산정의 실현을 위한 모색을 한다. 이를 위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리빌딩 6층에서 비마이너, 장애여성공감, 그리고 셰어의 공동주최로 ‘낙태죄 처벌 변화 이후 장애여성의 재생산정의 실현’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나영 셰어 대표가 사회를 진행했으며, 비마이너 유튜브채널에서 생중계되었다(다시 보기).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리빌딩 6층에서 비마이너, 장애여성공감, 그리고 셰어의 공동주최로 ‘낙태죄 처벌 변화 이후 장애여성의 재생산정의 실현’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강혜민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리빌딩 6층에서 비마이너, 장애여성공감, 그리고 셰어의 공동주최로 ‘낙태죄 처벌 변화 이후 장애여성의 재생산정의 실현’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강혜민

‘사회 안전’ 위해 정당화된 우생학, 그로 인한 장애·인종차별

황지성 셰어 기획운영위원은 ‘우생학적 통제를 넘어 재생산정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담론’에 대한 발제를 했다. 그는 앞으로 낙태죄가 개정되어 우생학 조항이 삭제되거나 개정될 예정이지만, 단지 조문에서 글자가 삭제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황 운영위원은 “근본적으로 우생학적 조항이 무엇을 의도한 것이었는지를 되짚어, 앞으로 우생학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생학의 역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우생학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이나, 여성 참정권 운동과 같은 사회개혁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시기와 겹친다. 황 운영위원은 “이 시기에 우생학이 가장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생학은 바로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인식 속에서 가장 잘 합치될 수 있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당시에는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해 많은 것들이 제도적으로 정비되던 시기였다. 예컨대, 국가는 공공복지나 교육 및 사회 보장 영역에서 개인들이 실업을 통해 빈곤해지지 않고, 질병에 걸려 일을 못 해 빈곤해지는 위험을 차단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안전 차원에서 ‘위험의 예방’이 중요시 여겨졌다. 

따라서 국가는 위험 상황을 미리 예방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특정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여기기도 했다. 여기에 정신의학 및 심리학이 덧씌워져 우생학의 절정기에는 지적장애인들이 바로 그 위험한 존재로 규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적장애인들은 예방적 조치로써 시설에 격리되고 강제 불임수술을 당했다. 우생학적 사고와 공공복지와 사회 안전에 대한 생각이 합치된 결과였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우생학의 시대는 끝났을까? 이에 대해 황 운영위원은 “사회는 없고 개인만 존재하는 현재, 타인에 대한 불안이 강화되어 안전과 처벌이 강조되는 시국에 살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유색인은 여전히 그 표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황지성 셰어 기획운영위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황지성 셰어 기획운영위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보호’ 명분으로 감금한 ‘여자 삼청교육대’… 이제는 ‘안전’ 재개념화 필요해  

한국에서는 공공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안전’을 명분 삼아 ‘시설화’를 정당화시켰다. 과거 주로 남성들을 수용한 시설로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이 있었다면, 1950~60년대 여성들을 수용한 시설로 (시립)보호소나 기술원이 있었다. 국가는 여성이 성매매했거나 가족의 보호를 받지 않고 집 밖에 나와 있는 경우, 성매매할 위험이 있다며 ‘보호’의 이름 아래 여성들을 시설에 예방적 감금했다. 황 운영위원은 “당시 보호소에는 장애여성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정신상 장애가 있다고 취급되었으며, 장애여성은 성매매를 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감금됐다. 이는 장애인 시설화가 젠더·섹슈얼리티와 분리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형벌 이외에 범죄의 진압·예방을 목표로 강제적 처분인 ‘보안처분’이 시행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윤락행위 등 방지법, 소년법, 모자보건법 등이 법률에 규정됐다. 특히 국가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1973년부터 1999년까지 우생학적 이유로 불임수술을 명령할 수 있었다. 이후 모자보건법은 계속 개정되었지만, 정신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인식도 계속됐다. 불과 10년 전, 2009년 시행령이 전부 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자보건법 시행령 15조의 임신중지 허용 한계에는 ‘유전성 정신분열증, 조울증, 간질증, 정신박약, 현저한 범죄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모자보건법에는 우생학적 조항이 남아있으며, 태아의 손상은 임신중지의 허용 기준으로 판단된다. 황 운영위원은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장애 인구 중 지체장애인이 약 50%로 가장 많고, 정신장애인이 4%이다. 그러나 실제 시설수용 인원에는 지체장애인은 2%, 정신장애인이 70%에 육박한다. 역사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현재에도 미치지 않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황 운영위원은 장애여성의 재생산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안전’의 재개념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은 누가 어떻게 말했는지에 따라 권력관계의 산물이 된다. 그동안 장애여성들은 ‘안전’의 이름으로 주거, 의료, 성과 재생산권리 영역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제는 장애여성의 시각으로 사회적 안전을 재개념화하는 작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예훈 셰어 기획운영위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최예훈 셰어 기획운영위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를 ‘문제’로만 여겼던 의료인들 반성해야  

최예훈 셰어 기획운영위원이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날 ‘의료와 장애의 불화 속에서 모색하는 변화’를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그동안 국가의 인구정책으로 자행된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과 피임의 역사에 대한 사죄를 비롯해,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몸의 차이를 기형이나 비정상으로 인식하는 의료인들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운영위원은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나눴다. 그는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장애를 ‘문제’로 인식한 의료적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육과 훈련을 받았지만, 이러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의학이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는 성별은 염색체, 호르몬, 유방, 자궁, 생식기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최 운영위원은 “태어난 아이의 성별 결정은 외부 성기모양으로 판별한다. 한 개인이 한번 보고 이 정도면 남자, 혹은 여자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건데, 이는 오히려 의학적인 판단과 거리가 멀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객관적이지 않은 의학에 의구심을 품은 그는 젠더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여겨진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는 “의학이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을 때,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도 함께 깨졌다”라고 말했다.  

의료 영역에서 장애는 숱하게 선별되어 왔다. 산전검사와 착상 전 유전진단의 과정에서 의사들은 ‘이런 경우에는 출산 후 몇 퍼센트의 생존율을 가지며, 수술 가능성과 예후는 어느 정도다’라고 진단과 예후를 말한다. 그러나 최 운영위원은 “사실 장애가 있는 태아의 기대수명은 의학적인 것 이외에 다른 변수들이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심장 이상이 있는 경우, 몇 차례의 수술과 양육, 그리고 삶의 과정까지 생각하면 사회 전체적 자원과 변수들이 개인에게 직결된다”라고 밝혔다. 

차별적 편견으로 장애 대하는 의료인, 비장애중심주의 문제 삼아야

의학적 판단을 이유로 그동안 ‘태아 손상’은 임신중지의 합법적 근거가 됐다. 현행 모자보건법과 피임시술의 요양급여 인정기준에도 우생학적 기준이 적용된다. 최 운영위원은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은 여전히 산전검사와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행위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의료인이 장애인을 상상하는 방식은 의학적 근거가 아닌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근거한다”라고 밝혔다. 최 운영위원은 “전문의 훈련과정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교육이 전혀 없으며, 환자로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도 여전히 고정관념에 의해 판단한다. 또한 장애인을 진료할 때, 환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보호자가 항상 진료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는 행위가 관례처럼 이뤄진다”라고 비판했다.  

즉, 장애에 적합한 의사소통 방식에 따라 장애인 환자 당사자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어야 하는데, 장애에 대한 의사의 편견으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환자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받아야 한다고 의학은 말하지만, 여기서도 장애인은 배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 운영위원은 “의사들은 장애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친구로, 동료로 자주 장애인을 만나 친숙해져야 한다”면서 “정책의 초점은 비장애중심주의를 문제 삼는 것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차별 없는 의료를 제공할 수 있을지, 장애·인종·젠더·섹슈얼리티·연령 등 현실의 교차하는 위계를 재강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비마이너 유튜브 생중계 화면. 왼쪽에는 토론회 전체화면, 오른쪽에는 수어통역, 아래에는 문자통역이 지원되고 있다. 
비마이너 유튜브 생중계 화면. 왼쪽에는 토론회 전체화면, 오른쪽에는 수어통역, 아래에는 문자통역이 지원되고 있다. 

성과 재생산권리 운동과 장애인 운동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 촉구해야

그렇다면 어떻게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만 기대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최 운영위원은 나이로비 원칙(The Nairobi Principles on Abortion, Prenatal Testing and Disability)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2018년 10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와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장애여성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을 위한 공동성명인 ‘나이로비 원칙’을 발표했다. 이 원칙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과 장애인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나이로비 원칙은 우생학의 부정적인 유산을 버리고, 성과 재생산권리 운동과 장애인 운동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최 운영위원은 의료인에게 13가지의 나이로비 원칙 중 특히 3번째 원칙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은 증거에 기반한 결정 외에 그 어떤 결정도 유도하지 말아야 하며, 종교적·윤리적인 믿음이 아닌 과학적으로 타당한 증거와 인권 기준에 기반해야 한다”라며 “무엇보다 의료인은 온전하고 정상적인 신체가 있다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고,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른 결함을 가지고 있고, 의존적인 존재라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권리와 살아있는 현실에 맞게 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도 최 운영위원의 발제에 공감하며 “성과 재생산권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은 의존적인 존재를 거부하는 것을 넘어 ‘의존’을 재해석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진 활동가는 “사회에서 장애여성은 미성숙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독립적이지 않다고들 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은 의존하고 돌봄을 받는다. 자기결정과 의존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영국의 정신능력법에서는 모든 성인(16세 이상)은 자기결정권의 온전한 법적 능력을 지닌다고 가정해 결정 과정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진 활동가는 장애여성을 성과 재생산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동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여성은 당연히 섹스를 안 했을 것으로 생각하며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의 주체에서 배제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의료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너도 비장애인 아이를 낳을 수 있어!’라는 식으로 ‘도전’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과연 개인의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장애여성이 욕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를 개인의 몫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장애여성이 피해자의 위치로만 놓이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자위에 대해, 성공한 섹스와 망한 섹스에 대해, 관계와 보조를 받는 몸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장애여성의 섹스가 대상화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왜 장애인거주시설에는 장애여성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 

나아가 진 활동가는 장애인자립생활 현장에서 마주하는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 실현을 위한 경험과 고민을 나눴다. 그는 현재 숨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시설 안팎에 있는 장애여성들이 독립적인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탈시설을 지원한다. 진 활동가는 “장애인이 시설에 가게 되는 계기 중에는 가족과 함께 살다가 가족이 돌봄을 감당하지 못하면 시설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장애여성도 장애인거주시설에 있어야 하는데 왜 잘 보이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활동을 통해 추론한 결과, 장애여성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도 집에서 이미 많은 가사와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에 가지 않고 가정 내에서 노동력을 행사하거나,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닌 정신병원, 요양시설, 또는 성매매쉼터 등에 있는걸 알게 되었다. 즉, 장애여성에 대한 시설 문제는 장애인시설뿐 아니라 다른 영역의 시설까지 확장해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시설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진 활동가는 시설 속 장애여성들은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받고 있으며, 스스로 ‘관리가 가능한 몸’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진 활동가는 “시설은 집단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상황을 살피는 대신, 약물로 감정이나 컨디션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시설에서 만나는 장애여성 중에는 생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이유로 생리를 하지 않는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시설에서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장애여성의 신체에 대한 침해가 이뤄진 것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나무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나무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보호와 통제의 대상 아닌, 불평등 구조에 대항해 함께 싸우는 동료시민

나무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발달장애 여성을 주로 만나는 반성폭력 현장의 고민을 나눴다. 그는 장애여성의 범죄피해 예방을 위한 대응책이 오히려 사회적 낙인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지난 7월, 경찰은 재가지적장애여성을 보호한다며 지적장애여성 주거 공간 내 CCTV 등 방법시설 설치를 비롯한 다각적 지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무 활동가는 “장애여성의 주거공간에 CCTV를 설치한다고 해서 범죄피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장애로 인한 취약함을 더욱 낙인찍는 행위다. 게다가 ‘다각적 지원’을 한다고 하면서 지적장애여성의 사생활은 고려하지 않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발달장애여성의 전반적인 일상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로 연결된다. 나무 활동가는 “발달장애여성은 타인을 만날 때 가족이 반드시 함께해야 하고, 허락받아야 하며, 스킨쉽도 통제된다. 발달장애여성이 연애와 섹스를 하는 건 상상할 수 없으며, 자녀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하에 가족에 의한 ‘재생산권 통제’가 이뤄진다”면서 “발달장애여성은 성폭력 피해 경험 이후 휴대폰을 압수당하는 등 더더욱 외부와의 소통과 관계는 단절된다. 이 과정에서 발달장애여성은 통제를 당하고, 그의 어머니는 24시간 자녀를 향해 있게 된다. 사회에서는 어머니를 두고 헌신하는 삶이라 칭송하지만, 국가는 발달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 실현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철저히 개인과 가족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발달장애여성은 개인·가족의 책임과 통제를 넘어 동료시민의 위치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본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절대 아닌데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설명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배제되곤 한다. 그래서 당사자와의 존중감 있는 소통이 핵심이다. 당사자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사회 공동의 역할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발달장애여성은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아닌, 사회 인식과 불평등한 구조에 대항해 함께 싸우고 활동하는 동료시민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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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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