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장애를 의학이 정의하는 방식 그대로 받아들였던 산부인과 의사이다. 내가 관습적인 의료체계에 몸담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는 장애가 어떻게 이 공고한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인식하고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혀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지면에 나의 짧은 생각을 얹는 것이 예상보다도 훨씬 버거운 일이었다. 미약하지만 이 글이 앞서 행동해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연대의 마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글을 쓴다.

청진기 ⓒ언스플래시
청진기 ⓒ언스플래시

의료와 장애의 오래된 불화1)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은 몸을 분절적인 요소들로 환원시켜 몸의 기능이 손상된 결과를 장애라고 간주한다. 다시 말해 장애는 불변의 손상으로, 장애인은 복구와 재활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의료가 손상을 복구하여 재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장애는 완전히 복구될 수 없고 재활이 어려운 손상이므로, 의료와 장애는 영원히 불화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은 손상을 기준으로 의학적으로 진단이 내려지고 경중을 판단하여 등급이 매겨진다. 이에 따라 장애인의 삶은 손상된, 무능력한, 쓸모없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삶의 가치 등급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오랜 기간 장애등급제는 의사에 의해서 장애 정도를 신체기관의 손상과 불능을 기준으로 임의로 나누어 판단하고, 그에 따라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인연금, 장애인콜택시 등 지원 자격을 세분화하여 장애인의 일상과 삶을 구속한다고 비판받았다.2)

의과대학부터 전문의 훈련과정까지 내가 장애를 이해하는 방식은 확실히 의료적 모델이었다. 희귀질환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의사들은 드물게 발생하는 손상을 지닌, ‘정상’을 벗어난 사람을 ‘사례(case)’로 분류하여 주목할 뿐이다. 몸의 다양성 따위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오직 손상, ‘기형’을 발견하고 치료 대상으로 만들어 ‘정상’으로 복구시키는 것이 의료라는 이름으로 하는 의사들의 일이었다. 나의 머릿속에서 ‘간성’으로 태어난 사람은 ‘여성’이나 ‘남성’이 되어야만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했고, 검은 막대로 눈만 가린 나체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산부인과 교재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을 배우는 이유는 ‘비정상’을 발견하고 치료하기 위함이다. 생리를 시작하지 않은 어린 환자가 폐쇄된 질을 뚫어서 새로 만든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질 확장작업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비명 한번 못 지르고 누워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긴 했지만 그 역시 환자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선택’일 수 없는 결정이 남긴 것

이렇게 형성된 나의 장애 인식은 이후 임산부를 환자로 만날 때에도 영향을 미친다.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의 장애를 선별하는 행위는 나에게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그대로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임산부를 대할 때에는 초기부터 출산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각 시기에 해야 할 산전검사를 빠뜨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예정일을 앞두고는 더 자주 만나서 태아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산전검사에서 뭔가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일단 나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최대한 건조한 톤으로 의학적인 설명을 마치고 환자의 반응을 보면서 적절한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이런 경우에는 출산 후에 몇 퍼센트의 생존율을 가지며, 수술 가능성과 예후는 어느 정도입니다’, 이런 설명은 정확히 의료적 모델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장애를 가진 태아의 기대 수명과 삶의 질에는 다른 변수들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 당장 몇 차례가 필요할지 모르는 수술비부터 양육에 드는 시간과 노력까지, 이는 개인이 가진 사회경제적 자원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에 비해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물론 정책과 제도도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임신한 경우,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되기 어렵다. 확률 수치로 표현되는 장애에 대한 의학적 설명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서 곧장 사회가 만들어낸 차별로 바뀐다. 이때부터 환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치료가 아니라 격려가 담긴 말뿐이다. 임신중지 결정은 우생학적 사고에 젖은 한 개인의 정상성을 향한 욕망일까. 출산 결정은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의료적 모델을 꺾고 얻어낸 승리의 결과일까. 임신중지를 결정하면 ‘낙태죄’라는 사회적 낙인뿐 아니라 비보험이라는 현실적인 비용의 무게 또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출산을 결정하면 어머니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대항해 아이를 위한 방패막이 되어 싸울 각오를 해야만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긴 하지만 ‘선택’은 아니다. 의료와 과학기술 발달이 결정의 시기를 앞당겼을지언정 결코 ‘선택’의 폭을 넓히거나 가능케 하지는 않았다.

의사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의사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상상 속의 장애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임신한 경우에는 태어날 아이도 장애를 가지고 있을까 봐 먼저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우려로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몸으로 세상을 살아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의사가 먼저 임신중지를 권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은 의학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발언에 실린 전제는 장애인은 임신하고 양육할 만한 자격이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물며 장애를 가진 사람이 비장애인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태어날 아이에게 가하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의사들이 장애를 가진 경우 분만보다 쉽게 제왕절개를 권하는 이유는 장애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전문의 훈련과정에서 장애에 대한 교육이 없었고 장애를 가진 환자를 다양하게 만난 경험도 없으니 장애에 대한 지식이 없음은 당연하다.

이런 편견과 무지 속에서 의료인은 장애인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 의료가 전제한 장애의 틀 안에서 ‘상상 속의 장애인’만을 만나왔다. 가시적인 신체 손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못지않은 일들을 해내는 감동적인 스토리,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아이에게 동정과 연민을 끌어내는 자선 단체의 영상처럼 사회가 정형화된 이미지로 만들어낸 장애인만을 의료인 역시 만나왔다. 장애인은 나와 동등한 동료시민이 될 수 없고 영원히 비장애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3)

결국 의료가 해온 것은 무엇인가. 장애뿐 아니라 인종, 섹스와 같은 범주로 다양한 몸을 위계화하고, 손상된 몸을 복구하여 등급을 올려주는 것이었던가.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은 비장애인이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장애인을 위치시킨다. 이런 접근은 복지 모델과 결합하여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생계비나 의료비를 지원하고, 비장애인이 하지 않을 일자리를 적당히 배당하는 방식으로 불평등 문제를 봉합해왔다. 하지만 진짜로 평등해지면 곤란하다. 비장애인의 높은 생산성과 그에 따르는 사회적 가치를 장애인과 같은 등급에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비장애인의 비율이 높아야만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국가적으로도 이득이다. 장애가 유전된다고 여겼던 과거에 한센인을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의 강제불임수술에 기여한 의사들은 사회적으로 이로운 가치를 위한 역사적 선택을 하였을 뿐이다.

동의할 수 있는 자격

‘보호가 필요한 영원한 아이’인 장애인에게 당연히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상상력은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실현된다. 환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보호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료에 참여하는 상황이 관례처럼 행해진다. 이 과정에서 진료 참여는 환자의 비밀보장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술과 같은 결정까지 연결되어 신체의 자율성 침해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피임시술을 하러 왔을 때, 환자가 자신의 신체에 미치는 변화와 시술의 의미에 대해 이해가 없을 수 있다. 어머니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지만, 내가 환자에게 피임의 효과에 대해 다시 설명하는 상황이 되면 어머니가 난감해지기도 한다.

청각장애가 있고 글로 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혼자 병원에 오기가 어렵다.4) 환자가 수어가 가능한 통역자와 함께 오면, 이때 통역자는 보호자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환자 상태에 대한 기본 정보를 주기도 한다. 내가 말을 하고 통역자를 통해서 환자에게 전달된다. 그 과정에서 수어를 모르는 나는 통역자에 의해 내 설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뉘앙스가 어떻게 전해지는지 알 수 없다. 통역이 매개된 상담에서는 성적 건강과 같은 민감한 내용의 질문은 피하거나 우회하여 설명하게 된다.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가 함께 있는 사람이 오면, 고유한 발음이나 표현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만난 나는 환자가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고, 그도 어렵다면 함께 온 보호자가 누가 되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때 보호자가 환자와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이며, 어디까지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지 미처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의 진료 결과를 공유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제삼자가 개입하는 순간부터 민감한 내용은 소통이 어렵고 그 과정에서 환자의 기밀도 보장되기 어려운 모호한 순간이 발생한다.

장애에 따라 보호자의 대리 결정이 필요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경우 일상적인 케어를 전담하는 사람은 거의 어머니들인데, 생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의 노동이 추가된다. 어머니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생리의 양을 조절했으면 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고민한다. 생리를 조절하는 방법은 생리에 관련한 호르몬을 조절하는 것인데 이는 피임법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이미 많은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아이에게 피임약을 추가로 복용하게 하고 싶지는 않고, 호르몬 루프를 삽입하는 것도 꺼린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묘안이 없는 가운데 어머니의 얼굴은 피로감이 가득하고, 결국 최대한 아이의 입장에서 결정하도록 격려하는 말로 끝이 난다.

사실 이렇게 병원까지 찾아오는 것은 사회경제적인 조건이 나은 경우이다. 휠체어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시설이나 집에서 감금과 비슷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면 언감생심 병원은 꿈도 꾸지 못한다. 실제로 장애인의 검진율은 비장애인보다 낮고,5) 건강증진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아서 기저장애에 더해 추가 질환이 발생하는 ‘이차적 장애’가 발생한다.6) 장애인이 병원에 오기까지 수많은 장벽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의사들이 장애인을 만나는 경험이 적다는 뜻이다. 경험이 적기 때문에 ‘보호자’로 칭해지는 제삼자가 진료에 개입할 때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간과해 버리기 쉽고 기밀보장 원칙을 지키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동의할 수 있는 자격은 평등하지 않다.

임신으로 배가 부른 장애여성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혹시 아이를 낳고 싶나요?’라는 물음 아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낳지 않을지를 선택할 때에는 무엇보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을 나 자신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그리고 내가 임신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가 가장 중요한 만큼, 임신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일일지, 아이를 낳은 이후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무엇이 필요할지, 내가 아이를 기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잘 알아보고 판단해야 해요. 그럼, 아이를 낳고 싶다면 어떤 것들을 생각해야 할까요?”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임신으로 배가 부른 장애여성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혹시 아이를 낳고 싶나요?’라는 물음 아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낳지 않을지를 선택할 때에는 무엇보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을 나 자신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그리고 내가 임신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가 가장 중요한 만큼, 임신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일일지, 아이를 낳은 이후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무엇이 필요할지, 내가 아이를 기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잘 알아보고 판단해야 해요. 그럼, 아이를 낳고 싶다면 어떤 것들을 생각해야 할까요?”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장애가 아니라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를 문제 삼기

장애인 의료접근성을 위한 정책을 의료비나 시설 문제로 접근하기는 쉽다. 여기에 더해 저출산 정책은 장애여성을 위한 의료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불임정책이 임신과 출산 지원정책으로 바뀐 것이다. 장애여성의 몸은 ‘임신하면 안 되는 몸’에서 ‘장애가 있어도 출산해야 하는 몸’으로 바뀐다. 이제 장애가 있어도 결혼하여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고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애여성의 불임정책과 임신·출산 지원정책은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여성의 몸을 임신·출산의 도구로 간주하는 이성애와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연결된 하나의 정책이다. 개개인이 가진 성적 욕망, 관계의 욕망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현재 ‘장애친화’를 내걸고 장애여성을 대상화하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7) 오직 장애여성의 임신·출산을 위해서만 진료시간을 충분히 하고, 수어통역사를 붙이고,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체중계와 진료대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하라고 개별 병원을 유도하고 설득하는 식이다. 필요에 따라 장애인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정책은 사회적 소수자를 우대하는 듯 보이지만 실효성도 없으면서 오히려 차별을 강화한다.

정책의 초점은 ‘비장애중심주의’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그동안 의료계에서 형성해온 장애의 인식 틀을 문제 삼는 것이어야 한다. 의료인 스스로가 비장애를 중심으로 사고해온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바꿔나가야 한다. 나이로비 원칙8)은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안전한 임신중지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누군가 자신의 임신에 대해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우생학적 실천이 아니며, 형법이나 다른 방식으로 임신중지에 제한을 두는 것이 장애에 대한 낙인을 없애주거나 장애인을 지지하는 방식도 아니다.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장애인의 권리와 살아있는 현실에 기반해서 훈련을 받고 산전검사와 상담 과정에서 중립적이고 편견 없이 근거에 기반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장애, 인종, 젠더, 연령 등으로 현실의 위계를 재강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료경험을 경청하는 것이 시작이다. 미성숙한 상태, 무성적이거나 성적 과잉 존재로 간주하여 온 장애인에 대한 의료경험은 비장애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장애에 대한 가장 전문가는 바로 장애를 가진 몸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들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전문가로, 동료로 만날 때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 일상에서 동료로, 친구로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의료인 교육과정에서 환자의 자율성 원칙에 따라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몸에 배도록 익히는 실천을 지속해서 경험해야 한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국가의 우생정책에 깊게 개입하여 강제불임과 피임시술을 했던 의료계의 뼈아픈 반성과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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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의 제목은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였다. 장애인을 불구로 낙인찍어 차별하고 배제하는 시대와의 불화는, 몸의 차이를 ‘기형’과 ‘비정상’으로 환원시킨 의료와의 불화이기도 하다.

2) 박정수, [인간학과 장애학, 그 ‘말과 사물’ ③] 의학이 그려낸 장애 정의와 그 한계, 2018.04.26., 비마이너 참조. 2018년 7월, 보건복지부가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이를 대체한 ‘서비스지원종합조사’ 역시 또 다른 장애등급제라 불리면서 장애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기존의 장애등급제에서 구분했던 6등급의 장애등급을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1~3급)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4~6급)’으로 구분하고, 활동지원, 보조기기, 거주시설은 종합조사(돌봄지원 필요도 평가)를 통해 급여량을 결정하는 식이다.

3) 의료인 스스로가 ‘장애인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 조사가 있다. 1990년 미국에서 의사를 포함한 의료 전문직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에 대한 태도를 평가한 연구에서, 장애인과 의료제공자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존감 수준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장애인 의료제공자들은 만약 자신이 중증장애인이라면 자존감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종혁, 「장애인 건강문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재인용, 『시민건강이슈』, 시민건강연구소, 2017-07.

4) 농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문법이 다르다. 한국어 문법을 그대로 따르며 한국수어 단어로 표현한 체계를 ‘한국어대응수어’ 또는 ‘수지한국어(Signed Korean)’라고 한다(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우리는 코다입니다』, 교양인, 2019). 글로 소통이 어려운 농인의 경우, 때에 따라 한국수어와 수지한국어의 이중 번역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어 통역자를 구하기조차 어려워 병원을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셰어 영역별 간담회-장애영역, 2019.12.24)

5)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가건강검진 수검률은 전체국민 77.9%에 비해 전체 장애인은 67.6%, 중증장애인 55.6%, 뇌병변장애인 47.9%로 보고되었다. 이규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하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9.

6) 박종혁, 위의 글.

7)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 서울형 무장애 산부인과 병·의원 서비스 인증제, 장애인 산모 안심병원, 여성장애인 임신출산 지원제도 등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장애여성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저출산 인구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이조차도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장애친화산부인과 연구보고서』, 국립중앙의료원, 2020.

8) 2018년 10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성과 재생산 권리 분야의 전문가들, 장애인운동 및 여성운동 활동가들이 모여 임신중지 권리에 중점을 두고 장애인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를 교차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임신중지, 산전검사, 장애와 관련된 나이로비 원칙’, 전문 번역은 장애여성공감 웹사이트 참조.

* 필자 소개 _ 최예훈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기획운영위원, 산부인과 전문의.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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