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종합계획서 끝내 누락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사람이 죽어도 안 바뀐다, 왜? ‘돈이 많이 드니깐’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 5명 중 1명은 ‘돈 없어 치료 포기’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당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복지공약 1호였다. 그해 8월, 문 대통령이 임명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전 장관은 광화문 지하보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찾아와 지난 5년간의 농성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부양의무자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문 대통령 임기 내내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한 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8월,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아래 2차 종합계획, 2021~2023) 발표를 앞두고는 삭발과 농성 투쟁까지 벌였다. 그러나 끝내 정부는 생계급여에서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의료급여에 대해선 구체적 계획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5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20주년이었던 올해 대통령의 약속은 산산이 파기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의료급여다. 정부는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을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건강보험 강화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건강보험료(아래 건보료)를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못 낸 건보료가 쌓이고 쌓여 결국 병원에 갈 수 없고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외면하는 동안, 이들은 소리소문없이 숨져 뒤늦게 발견됐다. 사람이 죽어야만 제도가 바뀐다고들 하지만, 사람이 죽어도 이 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폐지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동일하다. 시간과 시기의 문제인데,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은 결국 폐지되지 않았다. 사진 허현덕
폐지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동일하다. 시간과 시기의 문제인데,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은 결국 폐지되지 않았다. 사진 허현덕

- 부양의무자기준이 사람을 죽이는 과정은 이렇다

2019년 11월, 인천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20대 남매와 40대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 ㄱ 씨는 주거급여 수급자였다. 주거급여는 가구의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중위소득 45% 이하이면 받을 수 있다. 중위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 기준으로 줄 세워 놨을 때 가장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가장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 월 100만 원이라면, 주거급여는 월 소득이 45만 원 이하인 사람이 받을 수 있다.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는 건 어머니 ㄱ 씨와 20대 남매의 소득·재산이 적다는 게 인정된 거라 볼 수 있다. 이 집은 가난한 집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ㄱ 씨는 의료급여와 생계급여는 받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최저 생활비를 보장하는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 이하의 가구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작년 11월 보도에 따르면, 어머니 ㄱ 씨는 숨지기 약 1년 전인 2018년 10월에 주민센터에 주거급여를 신청하러 갔다. 그때 의료급여와 생계급여에 관한 안내를 받았지만 결국 신청하지 못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다.

이 3인 가구의 부양의무자는 수년 전 이혼한 전남편과 친정 부모였다. ㄱ 씨가 의료급여와 생계급여를 신청하려면 부양의무자들에게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아와야 했다. 그러니까 ㄱ 씨는 이혼한 전남편과 친정 부모에게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이 ㄱ 씨 가정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지 아닌지 국가가 조회하도록 동의마저 받아야 했다. 이는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내려놓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ㄱ 씨는 결국 포기하고 주거급여만 받았다. 인천에 사는 3인 가구의 주거급여는 월평균 24만 원이었다. 이 돈과 들쑥날쑥한 알바비가 이들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가족이 발견된 날은 문재인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지 나흘밖에 안 된 날이었다. 아파트 안에선 이들이 각자 쓴 유서가 발견됐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몸이 아파서 힘들다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양의무자기준을 비롯해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주범인 신청주의 복지,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등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했다. 사진 허현덕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양의무자기준을 비롯해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주범인 신청주의 복지,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등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했다. 사진 허현덕

약 1년 후인 2020년 12월, 방배동 재개발 지역에 사는 김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월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60대인 김 씨는 30대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다. 김 씨 역시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의료급여를 신청하지 못했다. 김 씨의 부양의무자는 관계가 단절된 딸이며, 발달장애인 아들의 부양의무자는 이혼한 전남편이었다. 김 씨 역시 인천 ㄱ 씨처럼 딸과 전남편에게 자신의 가난을 알릴 수 없어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신청을 포기했다.

김 씨는 건보료 생계형 장기체납자였다. 2005년에 뇌출혈 수술을 받았는데 2008년부터 12년간 건보료를 내지 못했다. 체납된 보험료는 500여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김 씨의 수익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공공일자리 급여와 주거급여 20여만 원이 전부였다. 결국 김 씨는 숨진 채 발견됐고 그의 아들은 홈리스가 돼 어머니 김 씨의 죽음을 알렸다.

인천 ㄱ 씨와 방배동 김 씨, 그리고 미처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사망자와 의료급여 탈락자가 속출하는 사이, 올해 8월에 발표된 2차 종합계획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결국 불발됐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한 이형숙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2017년에도 1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넣었어야 했는데 2차에 넣겠다며 당시 넣지 않았다. 그래놓고 2차 계획에서 이렇게 공약을 파기하니 화가 난다”면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도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 폐지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국가가 법을 개정하고 예산을 확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는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해 10월 발간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정책 과제‘ 보고서를 보면, 부양의무자기준이 왜 폐지돼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의 의료서비스 박탈 정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국민생활실태조사 결과, 방배동 김 씨처럼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가구의 비율은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이 가장 높았다.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은 최대 19.2%, 수급가구와 일반가구는 각각 17.4%, 4.6%다. 보고서는 “의료서비스 이용에서 비수급 빈곤 가구의 박탈이 더 크다”라고 해석했다.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가구와 차상위 가구를 합한 비수급 빈곤층의 의료비 지출이 수급 가구나 일반 가구에 비해 현저히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가구와 차상위 가구를 합한 비수급 빈곤층의 의료비 지출이 수급 가구나 일반 가구에 비해 현저히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또한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의 의료비 지출 부담도 현저히 높았다. 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가구가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에서 더 많이 나타났다. 수급가구는 11.1%, 일반 가구는 16.3%인 반면 비수급 빈곤층은 최대 35.8%였다. 100만 원을 벌면 35만 8천 원은 병원비와 약값으로 쓴다는 뜻이다.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의 사각지대는 생계급여보다 두 배 더 많다. 보고서에 따르면 생계급여 비수급 빈곤층은 34만 명이다.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은 약 두 배 더 많은 73만 명이다. 의료급여의 사각지대가 훨씬 넓다는 뜻이다.

이처럼 현재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소득의 3분의 1 정도를 의료비에 쓰며, 5명 중 1명은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예산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의료급여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한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교육급여 예산은 1030억 원, 주거급여 1조 9879억 원, 생계급여 4조 6078억 원, 의료급여 7조 6804억 원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 않은 현재에도 의료급여 예산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 중 가장 높다.

즉, 이는 결국 예산 문제다. 그럼에도 그간 정부는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수급자가 의료쇼핑 등으로 무분별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예산 낭비가 우려되며, 비수급 빈곤층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향후 케어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 정부의 비겁함을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로 돌리고, ‘의료급여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냐’로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한 사람이 '오늘의 생존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지금 당장 시행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한 사람이 '오늘의 생존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지금 당장 시행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 “가난한 사람이 최저생활 유지 못 하는 건 정부 책임”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와 기초법 전문가들도 정부의 이같은 대책은 여전히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를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배동 김 씨도 건보료를 12년간 못 내 병원에 가지 못했다. 만약 건보료가 체납된 상태에서 병원에 갈 경우 부당이득금을 취했다며 환수조치 당한다. 아파도 참아야 하고 그러다 죽는다. 윤 활동가는 “가난한 국민은 병원에 가지 말라는 게 문재인 케어”라고 말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또한 “2020년을 기준으로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는 약 80만 명이다. 건보료가 아무리 최저보험료라고 해도 얼마되지 않는 그 돈을 낼 여력이 안 돼서 체납하는 것이다. 최저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케어는 별 내용이 없는 것이라 봐도 무관하다”고 비판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정부의 입장에 관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예산을 마련할 구멍을 찾아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정 활동가는 “큰 예산이긴 하지만 의료급여는 기본권에 해당한다. 보편 인권의 측면에서 최소한의 의료와 생계 보장은 비용과 상관없이 당연히 갖춰져야 한다. ‘GDP 대비 1%의 예산을 가지고 빈곤층 5%의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게 우리의 요구인데, 이게 과연 과도한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예산이란 건 결국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예산이 많이 든다고 해서 최저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망각하고 비수급 빈곤층을 방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면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 않아 사각지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넓은 빈곤층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속히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사람이 '연락 안 하는 엄마 있다고 수급자 안 된다고 한다. 모든 걸 다 바꿔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한 사람이 '연락 안 하는 엄마 있다고 수급자 안 된다고 한다. 모든 걸 다 바꿔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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