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어느 대학의 장애인권 활동
① 장애인권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계기

대학 안에서의 활동은 누구나 접하기 쉬운 기록으로 잘 남지 않고, 길게 지속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종종 ‘추억’으로만 남는다. 졸업을 앞둔 필자는 더 많은 이야기가 글로 남아 읽히길 바라며, 대학 안의 활동이 어떻게 바깥과 연결되거나 단절되는지, ‘온실’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대학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여전히 필요한지 기록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그 안에서도 소수의 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연재가 더욱 많은 ‘다른 이야기’에 연결되길 바란다.

교내에 장애인권동아리 신입부원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은 파란색 배경에 하얀 글씨로 “바퀴는 계단 앞에서 구르는 법을 잊는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신입부원 모집”이라고 쓰여 있다. 문구 오른쪽 위에는 게르니카를 표현하는 하얀색 엠블럼이 있으며, 왼쪽 아래에는 계단 앞에 멈춰 선 휠체어 그림이 있다. 사진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페이스북
교내에 장애인권동아리 신입부원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은 파란색 배경에 하얀 글씨로 “바퀴는 계단 앞에서 구르는 법을 잊는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신입부원 모집”이라고 쓰여 있다. 문구 오른쪽 위에는 게르니카를 표현하는 하얀색 엠블럼이 있으며, 왼쪽 아래에는 계단 앞에 멈춰 선 휠체어 그림이 있다. 사진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페이스북

내가 활동하는 대학 장애인권위원회에서는 신년을 맞아 최근 신입회원을 모집했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학생이 지원했다. 평소 활동 인원이 스무 명이 안 되는데 서른 명이 지원했으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장애인권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 두 가지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의 존재를 처음 안 건 1학년 때 참여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 교육과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공부하는 학회에 들어가서 활동하느라 게르니카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장애’를 특정한 몸의 형태나 특성이 아니라 누군가가 특정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경험하는 무엇으로 설명하는 그날의 교육은 크론병으로 인해 어딘가 꾸준히 겉돌게 된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게르니카에 들어가기 전, 1학년 때 나는 주로 노동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에 발을 걸쳤는데, 한 곳에서는 1년 동안 활동하고, 다른 곳에서는 두어 달 만에 탈퇴했다. 활동 기간의 차이는 두 단체의 분위기의 영향이 컸고, 결국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생각보다 비슷했다. 양쪽 다 사람보다는 의제가 우선이었고, 나의 많은 고민은 운동 혹은 학문의 역사 안에서 ‘이미 끝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런 분위기에 지쳐 있을 때 게르니카를 다시 만났다.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회에 참석한 후 당시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고, 며칠 후 나는 동아리 첫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장애인권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겠다고 결정하던 과정에는 나의 두 가지 오해가 작동했다.

하나는 나의 질병을 곧 장애로 혼동한 것이었다. 사실 질병 또한 문화권마다 다르게 이해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제도의 부재가 질병의 고통의 큰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할 때, 질병과 장애가 무 자르듯 구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게르니카에 가입하던 당시에, 나는 단지 ‘나도 몸 때문에 힘들고 이 사람도 몸 때문에 힘들다’, ‘장애를 발생시키는 질병도 있다’라는 것만으로 나의 질병을 곧 장애로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과정을 생각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장애인권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 중 질병과 장애에 대한 오해는 좀 더 명시적인 편이었다. 최근에야 깨달은 또 다른 오해는 장애의 정치성에 대한 것이다. 추측건대, 당시 나는 장애인권 활동이 내가 1학년 때 하던 노동권이나 교육권 활동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장애인권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없지만, 사실 ‘정치’ 혹은 ‘정치적’이라는 말의 어떤 의미를 생각해도 장애와 정치를 떼어놓을 방법은 없다. 장애는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고려되기도 하고,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에 장애인 후보의 자리가 배정되기도 하고, 그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여지가 열려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것은, 대학 안에서 장애인권은 상당히 탈정치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장애인권 활동이 정치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나에게 1학년 때부터 하던 활동의 연장선인 동시에, 1학년 때와는 조금 다른 일이었다. 사회변화도 함께 생각했지만, 여기서 나의 핵심 고민은 나 자신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낫지 않는 질병을 겪으며 살아가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큰 사회적인 배경이 나의 선택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장애를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하여 배운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장애는 한 시간짜리 체험의 대상이었고, 중학교에서 장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고등학교에서 장애는 ‘특수’한 학생들의 문제이고 ‘나와는 먼’ 이야기, 혹은 ‘봉사활동’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이 특수학급에 있었는데도.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단체 재킷과 안희제 명찰. 재킷 지퍼 부분에는 노란색 세월호 리본이 걸려 있다. 사진 안희제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단체 재킷과 안희제 명찰. 재킷 지퍼 부분에는 노란색 세월호 리본이 걸려 있다. 사진 안희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영화감독이자 작가로서 장혜정 씨와 함께한 북콘서트에서 불행과 불평등의 차이를 강조했다. 불행은 사적인 문제이기에 ‘불우이웃돕기’처럼 이웃의 따뜻한 마음이나 선행으로 해결할 대상, 해결되지 않으면 안타까운 정도의 불운일 뿐이다. 하지만 불평등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고, 이 사회의 차별적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이고, 책임지는 공동체이다.

널리 공유되듯, 지금의 사회는 장애를 ‘불행’으로 여긴다. 이는 정말로 장애가 불행이어서라기보다는, 장애를 불행으로 여겨야 지금의 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몸 혹은 정신과 그렇지 않은 몸 혹은 정신, 길거리에 존재할 수 있는 몸 혹은 정신과 그렇지 않은 몸 혹은 정신의 구분은 법부터 공공예절까지, 지금 사회의 ‘질서’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것의 전제다. 장애를 불평등이라고 여기게 되면 우리는 그런 질서 하나하나에 질문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면 지금의 구조는 흔들린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받고 살다 보면, 그 순간들이 짧든 길든, 적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하는데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어 있다. 자신이 온 세상에서 받는 도움은 잊은 채, 그저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을 봉사나 도움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런 ‘착한’ 일은 피곤하기보다 뿌듯하고, 마음이 편하고, 좋은 일로 여겨진다. 나를 포함해서, 오랜 시간 건강한 비장애인으로 양육된 사람들은 이런 가치관을 체화하게 된다.

내가 동아리나 위원회에서 신입회원 모집을 담당하던 때에, 분명 단체명에 ‘인권’이 들어가 있는데도 ‘봉사하고 싶어서 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보다는 포괄적인 의미이지만 ‘좋은 일’을 하고 싶다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들도 많다(그런 사람이 오히려 더 많다). 이런 동기가 하나하나 틀렸다고 지적하고 싶지도 않고, 한편으로는 진실이기도 하다. 여기는 노동권 활동과 다를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느낌도 아마 이런 지점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정치를 어떤 의미로 파악하든, 장애는 정치적인 문제다. 그러나 대학에서, 혹은 대학까지 오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장애는 정치와는 무관한 문제로 다루어지거나 애초에 다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다른 인권 단체를 두고 대학 내의 장애인권 단체에 지원하는 ‘착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이 부족한 대학 내 단체들은 그런 사람도 대부분 받게 되어 있고, 나 또한 그런 인력 부족의 수혜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처음 계기가 어떠했든,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는 일일 테다. 나에게 대학의 장애인권 활동은 장애가 불평등이라는 것,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과 옆 사람의 삶을 통해 배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장애인권이 대학 안에서도 얼마나 주변화되어 있는지 깨닫는 과정이었다. (다음 달에 이어서…)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질병과 통증을 새로운 시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을 썼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