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쌓인 벌금만 4,440만 원
중증장애인 활동가 4명, 노역 투쟁 결의 후 구치소 입소
활동가들 “감옥 안에서나 밖에서나 함께 투쟁하겠다”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들. 왼쪽부터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사진 하민지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들. 왼쪽부터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사진 하민지
전장연은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노역투쟁 결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수막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투쟁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전장연 동지들이 노역투쟁을 시작합니다. 거리의 삶도 투쟁, 구치소에서도 투쟁, 전장연은 투쟁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동지들의 노역의 무게를 나눠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사진 하민지
전장연은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노역투쟁 결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수막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투쟁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전장연 동지들이 노역투쟁을 시작합니다. 거리의 삶도 투쟁, 구치소에서도 투쟁, 전장연은 투쟁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동지들의 노역의 무게를 나눠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사진 하민지

“저는 이분들의 노역 투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활동가 4명의 구치소 수감을 앞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이들을 향해 지지 발언을 한 활동가들이 제일 많이 한 말이다.

노역 투쟁을 결의한 활동가 4명 모두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러나 구치소에서는 전동휠체어를 쓸 수 없고 수동휠체어만 이용 가능하다. 활동지원사도 들어올 수 없는데 구치소 내 장애인 편의시설은 거의 없다.

벌금 4,440만 원.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고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거리에서 외친 대가다.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늘 빈곤에 시달리는 장애인들에게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수급비와 장애인연금 등 몇 십만 원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수년이 걸린다.

벌금을 쉽게 낼 형편이라 해도 벌금형이라는 처벌에 응할 수는 없다. 투쟁 차량과 통장이 압류돼 각종 불편을 겪더라도 사비를 털어 순순히 벌금을 낼 순 없다.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평등을 외친 목소리에 벌금이라는 처벌로 응수했다. 평등을 벌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처벌에 저항해야만 한다. 저항의 수단 중 하나로 노역 투쟁을 결의했다. 중증장애인 활동가 4명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배경은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노역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지의 옥고를 향한 연대고, 감옥 밖에서의 몫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감옥 밖의 몫은 여전한 투쟁이다. 차별과 혐오를 더는 참지 않겠다는 투쟁, 시혜와 동정에 더는 순종하지 않겠다는 투쟁, 언젠가 도래할 평등한 세상을 향한 투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8일 오후 3시, 서울시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치소로 자진 출두하는 활동가 4명을 배웅하며 “다시는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형숙 대표가 '나는 벌금 대신 양심을 택했다'라는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대표가 '나는 벌금 대신 양심을 택했다'라는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용기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회장 뒤로 그를 지지하는 연대인의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최용기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회장 뒤로 그를 지지하는 연대인의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운 모든 동지에게 내려진 벌금”

감옥행을 택한 활동가는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까지 총 4명이다.

이 대표는 이번으로 세 번째 노역 투쟁을 하게 됐다. 그의 벌금형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대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탈 수 없는 경기도 2층 버스를 점거했다. 2018년에는 장애인 예산을 확대하라고 요구하며 국회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했다.

권 상임공동대표는 성심재활원 탈시설 투쟁을, 박 이사장은 예산 투쟁을, 최 회장은 이동권과 노동권 투쟁을 하다 수백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일반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업무방해 등 죄목도 다양하다. 이 벌금을 다 합치면 총 4,440만 원이다.

지지 발언에 나선 정기열 이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운 모든 동지에게 내려진 처벌을 이들이 대신 감당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정 소장은 “이들은 지금까지 장애인 차별에 맞서며 이동권과 탈시설 투쟁을 이끌어왔다. 이 벌금은 이들만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 탈시설에 연대하고 장애인의 자유로운 삶을 외친 모든 사람에게 내려진 벌금이다. 이들이 노역하는 동안 우리는 감옥 창살 밖에서 더욱 힘차게 싸우겠다”고 말했다.

천성호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장애인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장애인은 학교에 나가 공부하기 어렵다. 그래서 장애인야학이 만들어졌다. 야학에 오려면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야 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보장되지 않았다”며 “장애인은 야학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지하철을 멈추고 버스를 점거하는 이동권 투쟁을 했다. 시설에서 나와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탈시설 투쟁을 했다”고 말했다.

천 교장은 “장애인의 교육권, 이동권, 생존권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권리인데도 국가는 책임을 장애인에게 물었다. 장애인은 투쟁하며 결국 벌금을 받게 됐다. 힘없고 가난한 장애인은 국가가 만든 악법을 깨나가고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한재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활동가들을 벌금형에 처한 것이 되레 법에 어긋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장애인 투쟁을 형사 범죄 취급하고 처벌하는 건 문제가 있다. 형법 20조 ‘정당행위’에는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장애인 투쟁은 이 법에 따라 정당행위로 인정할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시위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법을 어기면 형사 처벌하는 사법부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말했다.

즉, 시위 과정에서 법을 어긴 행위를 범죄로 볼 게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 4명이 검찰청 앞문을 막고 있다. 그들 앞에는 기자회견에 참가한 다른 활동가들이 마주보고 서서 박경석 이사장의 발언을 듣는 중이다. 경찰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사진 하민지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 4명이 검찰청 앞문을 막고 있다. 그들 앞에는 기자회견에 참가한 다른 활동가들이 마주보고 서서 박경석 이사장의 발언을 듣는 중이다. 경찰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대표가 피켓을 들고 활동가들을 향해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대표가 피켓을 들고 활동가들을 향해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달주 상임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달주 상임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개떡 같은 세상에서 장애해방을”

노역 투쟁을 결의한 활동가 4명의 표정은 의연했다. 옥고를 겪더라도 투쟁 없는 삶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권달주 상임공동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 상임공동대표는 “오늘 우리는 약자의 목소리를 짓누르는 이런 개떡 같은 세상에 저항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당당한 장애해방 운동가로서 우리가 왜 노역 투쟁을 하는지 이 사회에 알리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권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 투쟁이 벌금으로 탄압받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서 투쟁을 멈출 순 없다. 우리가 노역해서 이동권이 보장되고 탈시설이 완료된다면 10년이라도 노역할 수 있다. 우리는 몸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이 세상에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최용기 회장은 최중증장애인이다. 그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구치소에서의 생활을 걱정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감옥에 욕창 매트리스가 없다. 나를 굽혔다 폈다 하며 스트레칭해줄 활동지원사도 없다. 그걸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감옥 안에서 나의 투쟁을 돌아보겠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도 동지 여러분과 함께하겠다. 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하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옥살이를 하게 된 이형숙 대표는 “재판장에 가면 억울할 때가 많다. 이렇게 절박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원인을 제공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잘못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함께 투쟁해 세상을 바꾸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노역 투쟁은 저희 4명뿐 아니라 모든 동지와 함께하는 것이다. 저는 구치소 안에서 힘든 게 있으면 버텨낼 것이다. 감옥 밖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박경석 이사장(왼쪽)이 '벌금으로 입막지 마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그 뒤에는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이 '벌금을 원하냐? 나는 노역이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이사장(왼쪽)이 '벌금으로 입막지 마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그 뒤에는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이 '벌금을 원하냐? 나는 노역이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저마다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저마다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이사장은 악법이 뭔지 보여주겠다며 검찰청 앞 작은 횡단보도를 잠시 점거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이 횡단보도로 이동하자 경찰 수십 명이 다급하게 뛰어와 박 이사장을 에워쌌다. 횡단보도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경찰은 박 이사장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다. 박 이사장은 “이게 법이다”라며, 평등한 세상을 외칠 권리는 탄압하고 ‘질서’만을 보호하는 경찰을 규탄했다.

박 이사장은 또 “우리더러 집시법을 위반했다고 하는데, 정작 국가는 높으신 분들의 차량이 이동하면 도로를 다 막아서 그 차량이 막힘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건 법 위반이 아닌가? 그 행동은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 행동이 아닌가? 이게 무슨 법인가”라며 국가의 모순적 태도를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그놈의 법은 개새끼가 만드는 건지 소새끼가 만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들이 법 가지고 우리를 탄압하더라도 우리는 진실을 보여주고 권리를 주장하며 살겠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노역 투쟁을 결의한 활동가 4명은 오후 5시 40분경,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구치소로 향했다. 다른 활동가들은 구치소로 가는 이들을 배웅하며 연대와 지지를 보내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전장연은 현재 벌금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활동가 4명 개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벌금을 내는 것은 연대의 의미가 있다. 모금 동참은 국민은행 477402-01-195204 박경석(전장연벌금)으로 하면 된다.

검찰청 철문 사이로 구치소로 향하는 활동가들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검찰청 철문 사이로 구치소로 향하는 활동가들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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