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신아원 탈시설한 강 씨
강 씨 진술로 신아원 내 학대 의혹 드러나
신아원, 강 씨 회유하며 탈시설 의지 무시
장애계 “신아원 내 인권침해 조사해 달라” 인권위 진정

서울시가 송파구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내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아래 신아원)에서 탈시설한 강 아무개 씨의 긴급 주거지원과 개인별 지원계획을 약속한 가운데, 장애계가 황 아무개 신아원 원장, 박성수 송파구청장, 서정엽 서울시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장애여성공감 등 장애인권단체는 22월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생애에 걸쳐 거주인의 일상과 발언을 통제하고 평생 시설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길 강요하는 시설의 작동원리를 인권침해로 판단해 달라”라고 인권위에 촉구했다.

신아원에서 탈출한 강 아무개 씨가 지난 2일, 신아원에 보낸 퇴소요청서. 문서에는 '원장님, 이사장님. 저 찾지 마세요. 의무실 선생님. 약챙겨 오지 마세요. 통장, 도장, 내꺼 전화 주세요. 생제과(생활재활과) 찾지마세요. 지금 잘 살아요. 21.02.26'이라고 적혀있다. 사진제공 장애여성공감
신아원에서 탈출한 강 아무개 씨가 지난 2일, 신아원에 보낸 퇴소요청서. 문서에는 '원장님, 이사장님. 저 찾지 마세요. 의무실 선생님. 약챙겨 오지 마세요. 통장, 도장, 내꺼 전화 주세요. 생제과(생활재활과) 찾지마세요. 지금 잘 살아요. 21.02.26'이라고 적혀있다. 사진제공 장애여성공감

- 휴대전화 검열, 약물 강제복용, 강압적 태도 등 신아원 내 인권침해 의혹

82년생 강 아무개 씨는 지적장애인으로, 신아원에서는 30여 년간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12월, 신아원에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났다. 거주인 114명 중 강 씨를 포함해 총 56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서울시는 장애계의 긴급탈시설 요구를 무시하고 임시 숙박시설에 신아원 거주인을 긴급 분산조치했다. 그러나 거주인들은 사흘 만에 시설로 재입소당했다.

재입소 후 강 씨는 지난달 22일, ‘탈시설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장애여성공감과 송파구청에 보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신아원 종사자가 강 씨의 휴대폰을 압수했고 그 과정에서 강 씨가 시설을 뛰쳐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를 보낸 날, 슬리퍼 차림으로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을 찾은 강 씨는 “혼날까 봐 무서워서 나왔다. 더는 신아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 씨를 포함한 신아원 거주인은 신아원에서 휴대전화 검열, 약물 강제복용 등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 씨의 탈시설을 지원하며 오랜 기간 시설이 일상적으로 거주인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신아원 원장과 종사자는 거주인의 휴대전화를 검열해 압수하고 사진과 문자메시지를 삭제했다. 한 거주인은 이유도 모른 채 약 2주간 핸드폰이 압수돼 외부와의 소통이 모두 중단됐다. 신아원은 언제든 거주인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했다”고 말했다.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인권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수막에는 '장애인 거주시설 신아재활원 인권침해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활동가들은 피켓을 들거나 상의에 붙이고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인권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수막에는 '장애인 거주시설 신아재활원 인권침해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활동가들은 피켓을 들거나 상의에 붙이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유 활동가는 또 “강 씨는 1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물처방을 받았다. 현재 처방받은 약은 알코올 의존성 환자에게 사용하는 약물이다. 강 씨는 약의 효능과 부작용, 약을 복용해야 하는 이유 등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했다. ‘내가 옛날에 술을 마셔서, 자꾸 (신아원을) 나가려고 하니까’라는 말로 약물을 복용한 이유를 설명한다. 강 씨는 신아원 측에 ‘약 먹기 싫어요. 바꿔 주세요’라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무시됐다. 강 씨에게 약은 문제행동에 대한 징벌이었다”라고 성토했다.

신아원 종사자는 탈시설을 원하는 강 씨에게 강압적인 행동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활동가는 “강 씨는 ‘심장이 쿵쾅거린다. 원장님이 ‘쾅’하고 유리를 쳤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신아원이 탈시설하려는 거주인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탈시설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퇴소증명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아원은 이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팀장은 “신아원은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소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강 씨가 신아원 측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매일 신아원 종사자가 장애여성공감을 찾아와 강 씨를 압박한다. ‘아직 시설에 소속돼 있으니 데모하면 안 된다’, ‘키우는 강아지가 보고 싶을 거다’ 등 회유발언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진은선 팀장이 기자회견의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진은선 팀장이 기자회견의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신아원 사태, 현행법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신아원이 거주인에게 한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발언이 나왔다. 최현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신아원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발달장애인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거주인에게 방역과 검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신아원은 안내 없이 거주인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하고 검사결과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 8조 1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주인의 사진, 메시지 등을 검열한 행위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49조와 71조에 위배되는 심각한 범죄다.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활동가가 인권위 간판 앞에서 '신아재활원 전 거주인 탈시설계획 수립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인권위 간판 앞에서 '신아재활원 전 거주인 탈시설계획 수립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외에도 “약물복용을 강제한 것은 상해죄에 해당하고 장애인 비하발언을 한 것은 장애인복지법 위반이다”라고 말했다. “예배참여를 강요한 것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 침해이고, 탈시설 의사를 강력하게 밝힌 강 씨의 의사를 무시한 것은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라고 지적했다.

장애계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권위에 신아원 내 인권침해 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장애계는 지난 4일, ‘신아재활원 인권침해 해결 및 긴급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는 무기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18일, 서울시는 강 씨의 긴급 주거지원과 개인별 지원계획을 신속하게 수립하기로 약속했다. 신아원 거주인 116명 중 탈시설 의사가 확인된 거주인에 대한 개인별 지원계획도 세우기로 했다. 또한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조례 제정도 약속한 바 있다.

유진아 활동가(가운데)와 진은선 팀장(오른쪽)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유진아 활동가(가운데)와 진은선 팀장(오른쪽)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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