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공약만 앞다퉈 내놓는 후보들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등 빈민 관련 정책 거의 없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다. 당선이 유력하다고 점쳐지는 두 후보 모두 도시빈민에 관한 공약은 거의 내놓지 않았다. 박 후보는 이주대책 없는 재개발·재건축 공약을 내놨고 오 후보는 아예 민간개발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쪽방촌 주민에 대한 공약은 전무하다.

이에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29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후보는 빈곤정책 내놓고 도시빈민 생존권 보장하라”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여러 가지 색상의 피켓을 바닥에 넓게 붙이고 이는 '무인(無人)시위'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민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여러 가지 색상의 피켓을 바닥에 넓게 붙이고 이는 '무인(無人)시위'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민지

- 폭력적으로 쫓겨나는 철거민·노점상… “이런 재개발은 중단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서울의 도시개발 계획이나 거리정비로 인해 강제로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과 노점상의 발언이 가장 많았다.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시민대책위 위원장은 수협의 현대화사업으로 인해 시장에서 쫓겨난 후 2년간 농성 중이다. 윤 위원장은 “시장이 수협의 소유라 하더라도 시장 개설자는 서울시다. 그런데 서울시는 시장의 관리권한과 운영권한을 모두 수협에 넘기고 수협의 민간개발을 용인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시민의 생선곳간 같은 곳이다. 시민의 이익을 위해 공공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윤 위원장은 서울시장 후보를 향해 “난개발, 재개발 공약은 그만해 달라. 그런 개발 때문에 쫓겨난 사람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 그게 새로운 서울시장의 첫 번째 과제다”라고 강조했다.

강북구청의 재개발 사업승인 때문에 강제철거를 당해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홍성훈 전국철거민연합 미아3구역 철대위 총무 또한 서울시장 후보가 국민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지키라고 말했다. 홍 총무는 “서울시장 후보가 내놓은 공약에는 재개발·재건축지역 주민에 대한 본질적 대안이 없다. 선대책 후철거의 순환식 개발이 시행돼야 한다. 국민의 주거권과 생존권 등 기본을 가장 우선시하는 대안을 내놓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우종숙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중부지역장은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이던 당시, 많은 노점상이 철거됐다고 말했다. 우 지역장은 “오세훈 후보가 시장일 때 디자인 서울을 만든다며 ‘노점관리대책’이란 정책을 발표했다. 박원순 전 시장은 이를 그대로 가져와 ‘서울시 노점상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2009년 1만여 개였던 노점상이 2020년에 약 6,000개로 줄어들었다. 서울시장 후보는 노점상 가이드라인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호 이사장은 '쪽방지역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라!'라고 적힌 초록색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김정호 이사장은 '쪽방지역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라!'라고 적힌 초록색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 “서울지역 쪽방촌 공공주도 개발, 후보들 입장 밝혀라”

서울시는 작년 1월에 영등포쪽방촌, 올해 2월에는 동자동쪽방촌 공공개발을 발표했다. 쪽방주민을 임시 주거시설에 먼저 이주시키고, 공공주택을 짓고 난 후 주민을 입주시켜 재정착하게 하는 순환형 개발계획이다. 쪽방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공공개발에 환영의 의사를 밝히면서도, 공공주택의 좁은 면적과 개발과정에서 쪽방주민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영등포쪽방촌 공공개발이 발표된 작년 1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나머지 쪽방촌도 서울시가 책임 있게 공공개발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서울시가 아직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양동 쪽방촌은 민간개발 때문에 주민이 쫓겨나고 있다. 새로 서울시장이 되실 분은 서울의 다른 쪽방촌을 어떻게 공공개발할 건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쪽방주민 당사자 또한 공공주택의 좁은 면적을 비판했다. 박필규 동자동쪽방촌 주민은 “2008년부터 동자동쪽방촌에서 살았다. 공공주택 사업 발표났을 때 정말 좋았다. 하지만 공공주택 면적이 5평 남짓하다는 걸 알고 실망스러웠다. 조금 큰 쪽방일 뿐이다. 일반 임대아파트도 8평이 넘는다. 쪽방에 산다고 차별을 두는 건지 화가 난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면적을 제공해 달라”고 성토했다.

현재 동자동쪽방촌의 토지주와 건물주는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연일 진행하고 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이를 지적하며 “공공개발은 동자동쪽방촌 주민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토지주와 건물주가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붙였다. 동자동삼거리에서 1인 시위도 한다.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얻을 수 없으니 공공개발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횡포다. 아무도 듣지 않는 동자동쪽방촌 주민의 목소리를 서울시장 되실 분이 들어 달라”라고 말했다.

로즈마리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로즈마리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팬데믹으로 홈리스 급식 중단되자 “코로나19라도 먹을 지경”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팬데믹 때 무료급식이 중단됐다. 홈리스는 ‘코로나19라도 먹을 지경’이라고까지 얘기하며 홈리스를 배제하는 방역당국의 지침을 규탄했다”고 성토했다.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 또한 홈리스가 방역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서울시장 후보는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즈마리 회장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홈리스 급식지원에 대한 조항이 허술하게 적혀 있다. 11조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급식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따스한채움터’의 경우 서울시가 장소만 설치했지만 운영은 민간이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터지자 민간 급식소가 문을 닫아 인천이나 수원의 급식소로 밥 먹으러 다녀온다. 서울로 오면 배가 다 꺼져 다시 배고프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한 서울시는 팬데믹 상황에서 노숙인 지정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노숙인이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어렵게 한 바 있다. 로즈마리 회장은 이를 지적하며 “노숙인 지정병원을 정하지 말고, 노숙인도 비노숙인처럼 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의료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며 서울시장 후보가 노숙인 복지에 관한 정책을 제대로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늘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7일, 모든 서울시장 후보에게 정책질의서를 발송했다. 송명숙 진보당 후보,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 신지예 무소속 후보만 답변서를 보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정책질의서에 응답하라는 요구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에 붙어있는 색색깔의 피켓들.
바닥에 붙어있는 여러 색의 피켓들.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주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라! 우리는 상생을 요구한다!', '차별과 배제 없는 서울 만들기를 요구한다! 서울시장 후보는 빈곤정책으로 답하라!'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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