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다운 집’ 찾아 가정 탈출해도 가정 밖도 지옥
현장활동가 “탈가정 청소년 대안 없어… 무기력과 분노만” 
길거리에 버려진 아동·청소년 주거권리… “방기 말라” 
청소년 주거지원, 서울시 지원주택 50호 공급으로 물꼬 터야

집을 나온 날부터 탈가정 청소년들은 ‘나를 위한 집이 아니’라는 생각과 ‘이제 어디로 가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지낸다. 사진 강혜민
집을 나온 날부터 탈가정 청소년들은 ‘나를 위한 집이 아니’라는 생각과 ‘이제 어디로 가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지낸다. 사진 강혜민

- ‘집다운 집’ 찾아 가정 탈출해도 가정 밖도 지옥이었다

“제 목적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었고, 그래서 서울로 갔습니다. 쉼터가 아닌 곳을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당시 10대였던 저는 고시원에서 살기 위해 스무 살이라고 해야 했고, 홍대 근처라는 이유로 스무 살 홍대생이 되었습니다. 고시원은 제게 꽤나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제 짝꿍을 내 집에 데려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제 공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저 임시거주지였던 거예요.” (이인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아델 활동가 대독)

“저에게 집은 저를 무시하는 한숨들이 가득했고, 이유 없는 신체적 폭력이 일상인 곳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집은 숨 막히고 지옥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 집보다 길거리가 더 안전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왔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많은 범죄에 노출되었습니다. (…) 탈가정 청소년이라 하면 무조건 비행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개인의 사연들이 있고, 청소년이기에 제한되는 것들로 선택지가 없기에 밖에 나앉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행청소년이라서 탈가정을 한 게 아닌 탈가정이 되어서 비행을 경험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정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이인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의 발언을 아델 활동가가 대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인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의 발언을 아델 활동가가 대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청소년들은 ‘집다운 집’을 찾아 가정을 떠났지만 가정 밖에서도 그 ‘집’을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찜질방, PC방 등 비정적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고 먹고, 혹은 노숙을 해야 한다. 먹고 자는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해도, 탈가정 청소년이 일할 수 있는 자리는 없다. 그러다 일부는 성매매를 선택하거나 강요당하기도 한다. 또한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끼리 ‘가출팸’을 꾸리기도 한다. 

- 현장활동가 “탈가정 청소년 대안 없어… 무기력과 분노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탈가정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주거대책이다. 서울시 보궐선거를 맞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2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서울시장에게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요구했다. 

아동·청소년이 원하는 집은 ‘내가 나일 수 있는 집’,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집’,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는 집’, ‘월세 걱정 없는 집’, ‘다시 삶을 시작할 집’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서울시에 △주거위기에 놓인 아동·청소년 지원주택 50호 공급 △서울형 긴급복지제도 및 주거복지제도에 아동·청소년 포함 △아동·청소년 탈시설 권리 선언과 탈시설 계획 수립 △아동·청소년 주거복지센터 설립 등을 요구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2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서울시장에게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요구했다. 사진 강혜민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2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서울시장에게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요구했다. 사진 강혜민

15년간 탈가정 청소년 현장에서 활동했던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가진 대안이 너무 없다”고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변미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현장 활동가로서 15년을 활동하면서 너무도 부끄러웠다. (청소년들의) 수많은 절박함과 외로움, 고통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잘 곳과 먹을 것이 필요해 성매매를 선택했던 17세 그이를 나는 말릴 길이 없었다. 먹고 살 때까지만 그 일을 하겠다는 그이를 어떻게 말릴 수 있었겠는가. 보따리 하나 들고 좋은 쉼터를 찾아 낯선 곳을 전전하며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점점 무기력과 분노만 차오른다”라고 말했다.

거리를 전전하다 탈가정 청소년은 쉼터에 가기도 한다. 전국에 134개밖에 없는 쉼터 한 곳 당 평균 수용인원은 10명 안팎이다. 여성가족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가출청소년’ 수는 27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그중 1년간 약 3만 명만 쉼터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쉼터 개수를 늘리는 게 근본적 대안은 아니다. “낯선 사람들과 집단생활을 하며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 생활”은 결코 ‘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미혜 위원장은 “그럼 부모와 화해하고 원가정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그럴 가능성을 가장 꿈꿨던 게 바로 탈가정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계속되는 폭력과 학대로 원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청소년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정 밖으로 나올 때 두고 온 물건들. 화분, 인형, 고양이, 운동화, 티셔츠, 치마 등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캐리어 한 개가 있다. 사진 강혜민
가정 밖으로 나올 때 두고 온 물건들. 화분, 인형, 고양이, 운동화, 티셔츠, 치마 등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캐리어 한 개가 있다. 사진 강혜민

- 길거리에 버려진 아동·청소년 주거권리… “방기 말라”  

우선 이들은 보호와 통제의 시설 수용 중심의 정책을 폐기하고 아동·청소년을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기준으로 전국 아동양육시설은 240곳으로 이곳엔 아동 1만 585명이 수용돼 있다. 시설당 평균 44명으로, 80%는 30명 이상 집단거주하고 있다. 서울시에는 아동양육시설, 아동일시보호시설, 아동보호치료시설, 자립지원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의 아동복지시설 43곳이 있고, 2283명이 생활하고 있다. 작년 서울시 아동복지시설 예산은 약 913억 원이다. 

송지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변호사가 청소년 주거권을 위한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송지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변호사가 청소년 주거권을 위한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송지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변호사는 “집단 수용시설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지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시설보호를 폐지하기 위한 적절한 인적, 재정적, 기술적 자원을 할당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구했다”면서 “정부와 서울시는 아동·청소년 탈시설 권리 선언과 탈시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청소년’의 범위는 법령에 따라 혼용되곤 하는데, 보통 ‘아동복지법’의 만 18세 미만, ‘청소년기본법’의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로 보고 있다. 따라서 아동·청소년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주거급여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현재 만 30세 미만의 미혼자녀는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에 포함돼 있는 탓이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지원 정책도 있지만 제한적이다. 복지부 관할 아동복지시설에서 만 18세 이후 퇴소 청소년에게만 지원이 이뤄지기에 쉼터를 퇴소하거나 보호기간 종료 전 시설을 떠나면 이용할 수 없다. 

즉, 현재 아동·청소년은 법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자연스럽게 복지지원 대상자에서도 배제된다. 송지은 변호사는 “27만 명으로 추정되는 아동·청소년이 시설과 가정 사이에서 자립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연구도 이뤄진 적이 없고, 주거지원 전달체계도 없다. 더욱이 아동·청소년을 주거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현재 서울 길거리에 내몰린 아동·청소년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이들의 삶을 지원하고, 살기에 적합한 집을 제공할 책임을 서울시는 더 이상 방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대책은 부재하지만, 이들은 서울시 차원에서 지금 당장 충분히 할 수 있는 대책들을 수립하여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는 서울형 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제도, 주택바우처, 청년월세지원사업 등에서도 아동·청소년은 배제된다. 그러나 “서울시의 각 자치구가 ‘긴급복지지원의 위기상황으로 인정하는 사유’에 긴급한 위험에 처한 아동·청소년을 포함”하고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별도로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도 단독 세대주가 될 경우 보장가구가 될 수 있도록” 개정만 한다면 아동·청소년도 서울시의 복지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청소년 주거복지센터’를 설립하여 주거권 보장에 관한 공공의 책임 이행도 촉구했다. 

쉼터 등 시설에서 아동·청소년이 느꼈던 감정. ‘혼자 있고 싶어’, ‘아, 답답해’, ‘해라,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같이 자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어’ 등이 있다. 사진 강혜민
쉼터 등 시설에서 아동·청소년이 느꼈던 감정. ‘혼자 있고 싶어’, ‘아, 답답해’, ‘해라,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같이 자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어’ 등이 있다. 사진 강혜민

- 청소년 주거지원, 서울시 지원주택 50호 공급으로 물꼬 터야

지원주택은 지난 2019년부터 서울시가 장애인·정신장애인·홈리스·노인 등 주거취약자를 대상으로 지자체 처음으로 선보인 주거지원 모델이다. 지원주택 공급 기준은 ‘서울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근거한다.

이 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는 “육체적·정신적 돌봄이 필요한 주거취약자의 주거안정을 위해” 지원주택을 공급·운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이러한 입주대상자를 명시한 조례 제3조 제5호 ‘서울시장이 별도로 정하는 사람’에 ‘주거위기상황에 놓인 탈가정 아동·청소년’을 포함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주택 50호를 시범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지원주택 공급 시 아동·청소년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보증·임대료 책정이 중요하다. 지원주택 보증금은 최저 300만 원이고, 보증금에 비례해 임대료가 책정된다. 그러나 주거취약자의 경우, 3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홈리스 지원주택의 경우 300만 원 보증금을 미리 지원주택 운영기관에서 빌려준 뒤, 1년 이상 살면 300만 원을 거주자에게 돌려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아동·청소년 지원주택 기준은 ‘보증금 50만 원 이하, 임대료 월 10만 원 이하’가 적정하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지원주택이 포함된 공공임대뿐만 아니라 매입임대, 기존 주거, 사회주택, 민간주택 등의 다양한 주거지원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또한 현재는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신청이 불가능한데, 정부와 지자체가 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법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가 원하는 ‘집다운 집’이란 ‘내가 나일 수 있는 집’,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집’,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는 집’, ‘월세 걱정 없는 집’, ‘다시 삶을 시작할 집’이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이동’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내가 나일 수 있는 집’,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집’,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는 집’, ‘월세 걱정 없는 집’, ‘다시 삶을 시작할 집’을 원한다고 밝혔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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