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연속토론회③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과 국내외 실천 방안

최혜영 의원과 전장연 등은 22일 오후 2시, 유튜브 최혜영TV 생중계를 통해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연속토론회’ 세 번째로 CRPD에 기반한 탈시설 권리와 국제적·국내적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제공 전장연
최혜영 의원과 전장연 등은 22일 오후 2시, 유튜브 최혜영TV 생중계를 통해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연속토론회’ 세 번째로 CRPD에 기반한 탈시설 권리와 국제적·국내적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제공 전장연

최근 정부가 ‘탈시설’ 용어 사용을 노골적으로 기피해 장애계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성명을 통해 “탈시설을 법이나 제도 등에서 행정용어로 사용하지 말라”라며 “현재 탈시설이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의 가족들도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하며, 탈시설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CRPD)에서도 탈시설에 대한 선택권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을까? 

최혜영 더불민주당 국회의원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는 22일 오후 2시, 유튜브 최혜영TV 생중계를 통해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연속토론회’ 세 번째로 CRPD에 기반한 탈시설 권리와 국제적·국내적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최한별 사무국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발표자료에는 CRPD 제19조 내용을 설명하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선택의 문제?’라고 적혀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최혜영TV
최한별 사무국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발표자료에는 CRPD 제19조 내용을 설명하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선택의 문제?’라고 적혀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최혜영TV

CRPD, 탈시설은 선택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선택권' 보장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CRPD에 기반한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정의에 대해 발표했다. 

CRPD에서는 탈시설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의 권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제19조에서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당사국은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않음을 규정하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지, 탈시설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최 사무국장은 “혹자는 장애인이 탈시설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 자율성의 존중이고, 이것이 곧 CRPD의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문을 읽어보면 이 선택은 시설에서 나갈지 말지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가져야 할 선택의 권리이자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to live in the community, with choices equal to others)”라고 설명했다. 

‘가족 같은 시설’도 시설, 지역사회에서의 삶 대체할 수 없어

이와 같은 탈시설의 권리는 CRPD 제19조에 관한 일반논평 5에서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반논평이란 유엔의 인권규범들이 당사국에 의해 자의적으로 잘못 적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유권해석이자 권고이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는 지난 2017년, 장애인 당사자 및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제19조에 관한 일반논평 5를 채택했다. 

일반논평 5에서는 거주시설의 유형, 장애정도에 따른 탈시설, 자립생활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나 복잡한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한 지적장애인의 경우, 시설 밖에서 생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쉽게 판단되곤 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위원회는 “지적 능력, 자기 관리기능, 지원 필요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장애인에게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권리를 적용하고 있는 제19조와 상반된다”라고 명시했다.

나아가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참여’란 모든 유형의 거주시설 바깥에서의 생활을 의미한다. 그룹홈과 같은 소규모 시설, 심지어는 혼자 사는 집도 시설 또는 시설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자립적 주거 형태로 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 많은 시설이 내세우는 ‘가족 같은 시설’도 결국 시설이며, 지역사회에서의 돌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정의하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일반논평에서는 내가 누구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몇 시에 자는지, 식탁 위에 식탁보와 초를 둘 것인지, 반려동물을  키울 것인지 등 일상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삶을 자립생활이라고 한다”라며 “당사국은 탈시설을 해야 할 즉각적인 의무가 있으며, 헌법에서도 CRPD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으로써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탈시설지원법이 하루빨리 제정되어 CRPD가 잘 이행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스티븐 알렌(Steven Allen) 벌리더티(Validity Foundation) 공동대표가 “그룹홈은 집이 아니라 시설이고, 완전한 탈시설을 달성해야 할 당사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입니다”라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최혜영TV
스티븐 알렌(Steven Allen) 벌리더티(Validity Foundation) 공동대표가 “그룹홈은 집이 아니라 시설이고, 완전한 탈시설을 달성해야 할 당사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입니다”라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최혜영TV

선택의정서로 직권조사 받은 헝가리, 시설 투입 EU 재정 끊겨 

한국은 2008년 12월 CRPD를 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다.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게 되면, 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되어 국내에서 구제절차가 이행되지 않을 시, 위원회에 직접 개인통보제도를 통해 진정할 수 있으며, 직권조사 절차 등이 가능해진다. 지난 3월 31일,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정부가 14년째 선택의정서 비준을 미뤄온 점을 지적하며, 74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선택의정서 비준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유럽에서 활발한 장애인권리운동을 하고 있는 스티븐 알렌(Steven Allen) 벌리더티(Validity Foundation) 공동대표는 CRPD 선택의정서 개인통보제도를 통해 드러난 탈시설의 당위성을 가리고 있는 헝가리의 사례를 소개했다. 헝가리는 지난 2007년 CRPD 선택의정서를 비준했다. 벌리더티를 비롯한 장애인권단체들이 개인통보제도를 통해 헝가리의 집단 시설수용의 문제를 제기하자, 위원회는 조사단을 꾸려 3년 동안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알렌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헝가리는 인구 1천만 명에 불과하지만, 유럽에서 시설수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약 8만 5000명의 장애인이 시설에 살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탈시설 전략을 채택했지만, 30년의 장기 계획인데다 단계별 계획이 부재해 위원회의 비판을 받았다.

알렌 대표는 “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통해 정부관계자, 판사, 서비스 제공자, 당사자들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헝가리의 대규모/소규모 시설을 방문했다”라며 “위원회는 지난해 최종보고서를 통해 헝가리가 장애인의 권리를 중대하고 체계적으로 침해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위원회는 헝가리 정부에 △분명한 목표 없는 탈시설 전략이 충분하지 않은 점 △유럽연합 기금을 포함해 시설에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점 △그룹홈 중심의 작은 신규 시설을 지원하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특히 위원회는 탈시설의 의사를 묻는 건 선택이 아니며, 헝가리 정부가 ‘선택지’로 제공한 소규모 시설도 협약 이행이 아니라고 밝혔다. 많은 장애인 단체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어 헝가리 장애인단체가 솔직한 의견을 독립적으로 발표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알렌 대표는 현재 위원회의 권고가 헝가리의 탈시설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알렌 대표는 “유럽연합은 헝가리에 상당 규모의 재정 투입을 중지했으며, 공공재원이 시설의 유지, 보수, 확장에 투입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성과는 전 세계 장애인 활동가 덕분에 만들어졌다. 한국 또한 빠른 기간 안에 탈시설을 이뤄내기 위해 법률 기반을 다지고 있어 기쁘다”라고 밝혔다. 

최혜영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최혜영TV
최혜영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최혜영TV

시설폐쇄 시 반납하는 지원금, 탈시설 예산으로 전환해야 

최혜영 의원은 국내에서도 장애인 거주시설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탈시설지원법이 조속히 제정되도록 추진해 나갈 것을 밝혔다. 

최 의원은 “유튜브 댓글에서 시설폐쇄 시 그 시설이 반납하는 지원금을 장애인 당사자의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비용으로 쓰면 되지 않냐는 질문을 보았다”라며 “이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매년 5600억 원이 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가고 있는 반면, 탈시설 예산은 너무 부족하다. 시설을 폐쇄할 때 반납하는 지원금을 탈시설 후 자립생활 지원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탈시설지원법안을 통과시켜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정착하는 정책을 하루빨리 이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용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과장은 이 자리에서 “탈시설은 국정과제이지만 속도가 늦은 건 사실이다”라며 오는 8월 탈시설로드맵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외교부는 CRPD 선택의정서 비준에 호의적이며, 법무부도 큰 문제없다고 해서 실무적으로 검토 중이다. 올해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애아동·청소년의 탈시설 논의 필요해 

한편 토론에서는 장애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탈시설에 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소영 유엔인권정책센터 간사는 유엔 인권조약에서의 탈시설의 당위성을 검토하면서 “대부분의 조약에서는 탈시설 당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아동권리협약 일반논평 9에서는 시설위탁을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동’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 보지만, 국내 탈시설에서 장애아동은 어떻게 고려되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의견을 냈다.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의장은 “위원회는 아동권리위원회에 CRPD를 위반할 여지가 있는 기존의 시각이나 입장에 대해 의견제출을 하면서 입장을 조율해나가고 있다. 특히 아동권리협약에 장애에 대한 주류화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인영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은 “탈시설 하게 되는 장애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자립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인권위는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아동과 청소년 인권 실태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애아동의 탈시설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