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이용지원 요청 거부, 장애계 “장차법 위반” 규탄
규정에 없다고 ‘정당한 편의제공’ 거절하는 건 차별
UN CRPD ‘개개인 맞춤형 지원이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코레일이 ‘매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다급하게 화장실 이용지원을 요청한 중증장애인을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다. 장애계는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조우리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서 대기 중이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인 그는 안내소에 가서 코레일 직원에게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신체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직원은 ‘그런 건 도와줄 수 없다’고 답했고, 화장실 이용이 다급한 조 활동가의 거듭된 요청에도 ‘안 된다. 가시라’라며 끝내 거부했다.

이에 장애인권단체는 1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했다”고 규탄했다.

조우리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화장실 이용지원 요청에 ‘규정에 없다’며 거절한 코레일

조우리 활동가는 피해사실을 자세히 증언했다. 조 활동가는 “부탁드리기 전까지 수도 없이 망설이다가 정말 급해서 부탁을 드렸다. 원래 코레일 직원분들이 잘 도와주셨는데 그날따라 유독 ‘화장실까지 가는 길은 알려줄 수 있지만 화장실 안에서는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화장실로 가는 길을 모르는 게 아니라, 혼자서 이용하기 어려워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직원은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쩔쩔매고 있으니 지나가던 시민이 정 급하면 화장실 청소노동자에게 부탁해 보라고 했다. 그분께 부탁드려서 어렵게 볼일 보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후 조 활동가는 코레일에 왜 편의제공 요청을 거부했는지 물었다. 이에 코레일은 ‘규정이 그렇게 돼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답변했다.

코레일이 공개한 규정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근거해 마련된 ‘교통사업자별 제공 탑승보조 서비스’다. 코레일은 이 규정 중 ‘철도’에 해당하는 부분에 지원가능한 서비스는 승하차, 좌석안내, 이동지원, 발권지원 뿐이라며 ‘무조건 우리 회사의 의무위반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코레일 법무팀에 문의해서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장애인권단체는 서울역 정문 앞에서 코레일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하민지

- 규정 없어 편의제공 못한다? ‘정당한 사유’ 해당 안 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4조 1항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는 차별행위다. 3항에서는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라면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아도 차별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즉, 코레일이 화장실 이용지원 요청을 거절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장애인을 차별한 게 아니다.

그러면 규정에 없는 편의를 제공하는 게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이를 판단할 기준은 없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2009년에 발간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가이드라인’에서 기준을 찾아볼 수 있다.

인권위는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과 관련해 4가지를 들고 있다. △편의제공으로 인해 과도한 경제적 부담에 처하게 되는 경우 △대상시설 등의 구조변경 또는 시설의 설치가 불가능한 경우 △사용자와 시설주가 달라서 시설주가 동의하지 않아 사용자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 △정당한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본래의 목적을 훼손하거나 상실한 경우 등이다.

‘규정에 없는 편의제공’이 과도한 부담이 되려면 인권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네 가지 중 하나에는 해당해야 한다. 그러나 △화장실 이용지원은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 아니고 △서울역사를 구조 변경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일이 아니며 △서울역 KTX의 운영주체는 코레일이므로 사용자와 시설주가 다르지 않고 △화장실 이용 지원을 했을 때 ‘정당한 편의제공’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훼손·상실되지도 않는다.

곽남희 활동가가 ‘장애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곽남희 활동가가 ‘장애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개인 맞춤형 지원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또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서는 ‘정당한 편의제공’을 사전에 마련한 지원체계가 장애인을 지원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의무로 해석하고 있다.

위원회가 2018년에 발간한 일반논평 6호에 따르면 장애인 편의제공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접근성 의무’고 다른 하나는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무’다. 접근성 의무는 ‘사전적 의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건물, 서비스, 제품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와 절차 내에 반드시 수립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코레일이 내세우는 ‘규정’과 비슷하다.

위원회는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무를 ‘지금부터의 의무’라고 설명한다. 장애인이 접근불가능한 상황 혹은 환경에 접근을 요청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순간부터 제공돼야 하는 ‘사후적 의무’다. 접근성 의무를 다했다고 장애인이 모든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무’가 필요하다.

즉, 사전에 마련한 지원책이 장애인을 지원하지 못할 때, 장애인 개개인에게 맞게 지원해야 할 의무가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무’다. 위원회는 ‘장애인은 접근성 의무의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편의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호텔 앞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은 사전에 마련한 것이니 접근성 의무고, 장애인용 객실이 꽉 차서 장애인고객이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가까운 다른 호텔을 적극적으로 찾아 안내하는 것은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무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규정에 없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는 코레일의 입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입장과도 대치된다.

오욱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1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코레일 입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에선 고려할 만한 의견이 아니다. 규정은 당연히 사전에 정해놔야 하는 것이고, 정당한 편의제공은 장애인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그때그때 조치해야 하는 것이다”라며 “코레일은 규정에 정해진 업무가 아니라고 하지만 장시간 철도서비스를 이용하며 여행할 때 화장실 이용이 철도서비스 이용과 전혀 무관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오 부연구위원은 “코레일은 어떤 경우라도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화장실 이용지원을 요청하는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거절만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우정규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우정규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계 “정당한 편의제공 거절한 코레일은 사과하라” 규탄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는 코레일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절해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규탄했다.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코레일 규정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코레일만 치외법권에 있는 것 같다. 차별받은 장애인 당사자가 문제제기했을 때 규정을 점검한 후 현행법을 검토하고 답변을 해야 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규정만 내밀고 있다”고 규탄했다.

박승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화장실 이용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코레일은 이를 무시한 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편의제공을 거부하며 장애인 당사자를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다. 코레일은 공공기관이면서 다양한 장애유형을 지닌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뭔지 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코레일 서울역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시행할 것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 지원 서비스 매뉴얼을 새로 만들고 실행할 것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한 직원과 자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 관리자들이 피해당사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것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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