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아현동, ‘억대 프리미엄’에 밀려난 사람들

철거를 비껴간 아현동의 한 골목. 맞은편은 아파트 공사현장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무료나눔 이웃들이 줄어들어서인지 물건이 꽤 쌓여 있다. 사진 김윤영
철거를 비껴간 아현동의 한 골목. 맞은편은 아파트 공사현장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무료나눔 이웃들이 줄어들어서인지 물건이 꽤 쌓여 있다. 사진 김윤영

‘장화 없이는 못 사는 동네’였다는 곳들이 있다. 한때 강남이 그랬고, 염리동과 아현동 일대도 그랬다. 늘 질퍽거리고 장마철이면 곳곳이 물 천지였단다. 아현동에는 오래전부터 지게꾼 등 빈민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마포나루와 마포종점이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광복과 6·25를 거치며 서울에 새롭게 정착하는 사람들이 아현동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공간을 일군 동네인 만큼 아현동 골목은 다채로웠다. 판잣집과 단독, 다세대, 연립, 아파트가 뒤섞여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숨 고르며 올라야 했지만 언덕 위에 있는 방들은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조망을 품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반지하 방과 돼지슈퍼도 아현동에 있다. 임대 계약이 종료될 때마다 서울의 싼 집을 찾아 전전하던 나의 걸음도 아현동으로 자주 향했다. 좁고 가파른 골목에 서로 마주 본 대문 사이에서 열무를 다듬고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다정한 동네였다.

최근 아현동을 걸으면 그런 풍경은 가위로 오려낸 듯 조각난 모습으로만 남았다. 특히 대흥역과 이대역, 아현역, 애오개역으로 둘러싸인 아현동 일대에는 이제 도심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아현 뉴타운은 마포구 공덕동과 아현동, 염리동 일대에 지정된 8개 개발 구역1)을 일컫는다. 이 중 두 번째로 완공된 아현3구역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아래 마래푸)’는 3천 세대에 이르는 거대한 단지다. 2014년 9월, 마래푸 주민들이 입주를 시작하며 아현포차, 일명 ‘아포’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대표자회의가 결성된 이후 주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기하고 마포구청 항의 방문과 집회를 개최하며 아현포차 철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분위기 하면 ‘아포’

아현동 포장마차는 아현역 앞에 늘어서 있던 포장마차 골목이었다. 아현포차는 작은 컨테이너로 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간이 테이블을 내어놓고 소주 한잔 먹는 것도 좋았지만 실내의 ㄷ(디귿)자로 생긴 바(bar) 형태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요리를 해주는 이모나 옆자리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나에게 아현포차를 처음 소개했던 친구는 ‘맛있는 집보다 분위기 있는 집 찾기가 더 어렵다’며 ‘아포’를 자랑했다. 분위기에 관한 그의 취향은 ‘인스타 맛집’보다는 노포, 은은한 조명과 음악보다 형광 불빛에 자동차 소음 쪽이었다. 아현 포차는 가짜 레트로는 범접할 수 없는 멋이 있었다.

그런 깊은 내공의 멋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다. 마포대교 아래서 빨래를 두드리던 ‘찐’ 마포배기들이 3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만든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1986년부터 아현동 일대에 있던 리어카 노점상을 이 장소로 모이게 한 것은 마포구청이었다. 1991년 난지도 매립지가 완공되면서 아현동의 쓰레기 적치장이 있던 자리로 노점상을 내쫓았다. 4미터 50센티씩 각자의 자리가 생겼지만 또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포구청이 쫓아내는 대로 쫓겨 다니기보다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정비했다. 파이프를 끊어 자리를 완성했고, 이후에는 구청의 관리방침에 따라 컨테이너로 모습을 바꿨지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고 생계의 자리였지만 마래푸 입주민들은 이들을 없애고 꽃밭을 만들어달라는 민원을 지속했다. 마포구청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1월부터 마포구청은 자진철거를 종용했고, 이곳에서 장사하던 이들의 생계대책을 최소한 마련해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8월 18일 강제철거를 강행했다. 아침이 밝으면 용역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달려 나가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과 푸른 새벽이 그렇게 끝났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단속 반원이 오래된 유리를 팡팡 부수고, 알루미늄 문을 뜯어내고, 포크레인이 가게를 훑고 나니 25년의 역사가 사라졌다.

아현포차가 사라진 뒤, 주변 노점상에 대한 철거압박도 강해졌다. 2017년 여름, 철거를 막기 위해 마차에서 밤을 지새는 아현동 노점상의 모습. 사진 김윤영
아현포차가 사라진 뒤, 주변 노점상에 대한 철거압박도 강해졌다. 2017년 여름, 철거를 막기 위해 마차에서 밤을 지새는 아현동 노점상의 모습. 사진 김윤영

마을버스도, 아현포차도 사라진다

괴롭힘, 그것은 괴롭힘이었다. 삼십 년 넘게 장사하던 동네에서 존재를 반대당한다는 것은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는 일이다. 손발이 부르트는 노동으로 지켜온 삶의 터전을 두고 ‘그간 공짜로 장사했으면 이제 그만 하라’는 모욕을 듣는 것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소송을 하시든가 나중에 말씀하시라’ 조곤조곤한 비아냥을 건네는 공무원 앞에서 온몸으로 울부짖는 것은, 떡볶이도 먹고 국수도 먹던 정치인들이 ‘아현포차 철거’를 공약으로 내건 공보물을 돌리는 것은 괴롭힘이었다.

새로운 아파트 사람들은 이곳에 원래 살던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았다. 진보정당과 지역 시민단체들은 고령인 아현포차 상인들이 생계대책을 찾으며 서서히 운영을 종결할 방안을 찾자고 제안2)했으나 마포구청은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점은 불법이니 철거하겠다는 돌림노래만 반복됐다. 애초에 이 자리로 마포구청이 노점상을 몰아넣은 역사도, 도로점용료 등을 부과하며 사실상 관리하에 두었던 경험도, 적절한 대책이 없는 강제철거는 국제 인권규약에 따라 금지된다는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원래 여기 공사를 하기 전에, 십 년 전에 마을버스가 아현역에서 출발해서 (이 골목으로 이렇게 들어가면 아파트 위쪽으로 올라가는 건데) 그 마을버스 노선이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몇 년 동안 일시 중단됐었어요. 공사가 끝나고 그 노선을 다시 재개하려고 했어요. 왜냐면 언덕 위에도 사람이 사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거기 노인분들이 사시니까. 그런데 이것도 마래푸에서 민원을 넣어서 마을버스 노선 폐기를 시켰습니다.

_ 나동혁 (홍우주 사회적협동조합, 아현동 포장마차 강제철거 현장 발언 중3))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골목을 삼킨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주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언덕 위 주민은 마을버스를 뺏겼다. 어떤 사람은 애오개역까지 가던 지름길을 잃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현포차를 잃었다. 마포구는 2020년 ‘마포 걷고 싶은 길’ 두 번째 길로 아현동을 지정4)했다. ‘걷고 싶은 길’ 지정 사업은 2020년 마포의 잘한 일로도 뽑혔지만, 걷고 싶은 길의 명소 중 하나로 소개된 행화탕은 2021년 5월 영업을 종료한다. 마포로 3-3 재건축 때문이다. 서울 골목의 생명은 이렇듯 1년 앞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개발 앞에 사람들의 뿌리는 왜 이토록 얕기만 해야 하는가.

아현2구역 재건축 현장 입구. 이 자리에서는 2019년 1월 12일 박준경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사진 김윤영
아현2구역 재건축 현장 입구. 이 자리에서는 2019년 1월 12일 박준경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사진 김윤영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

가구거리와 웨딩거리가 한산해진 지금, 그나마 활기있는 아현동 골목은 아현시장이다. 아현시장 입구에는 ‘아현SK뷰 아파트’ 공사장 입구가 마주하고 있다. 이 공사장 출입구는 아현동에 살던 철거민 박준경의 영결식을 치렀던 자리기도 하다.

1981년생 박준경은 2008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아현동에 살았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저렴한 집이었다. 아현2구역 개발에 따라 2016년부터 퇴거하라는 압박이 있었지만 이들 가족은 떠나지 못했다. 아현 2구역은 아현 뉴타운 8개 구역 가운데 유일한 재건축 지역이었다.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세입자는 선택하지 못하지만, 개발 방식에 따라 보상대책은 달라진다. 재건축의 경우 아무런 보상대책이 없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철거를 피해가고, 누구는 재개발 지역이라 알량한 대책이라도 생기는 반면, 재건축이면 빈 몸으로 나서야 한다.

2018년 7월부터 빨라진 강제 집행은 폭력의 강도를 더해갔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박준경은 철거 위협 때문에 일도 나갈 수 없었다. 8월 6일에 일어난 강제철거에 박준경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어렵사리 집을 지켰다. 그러나 9월 6일은 막을 수 없었다. 용역 다섯 명이 박준경의 어머니를 이불로 말아 들고 나왔다. 세간살이는 트럭에 실려 갔다.

그때부터 모자의 빈집 살이가 시작됐다. 남아 있는 것, 그것이 철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1월 1일에 아현동에서 일어난 폭력의 강도는 살벌했다. 용역들은 소화기를 난사하고, 노인을 폭행했다. 11월 30일에는 아현동에서 그해 마지막 강제집행이 일어났다. 12월 1일부터 동절기라 서울에서는 강제철거가 금지된다. 11월 30일만 넘기면 3월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박준경은 머물던 빈집에서 마저 쫓겨났다. ‘찜질방이라도 가 있으라’며 5만 원을 건네준 어머니와 헤어진 뒤 그는 12월 4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단지 뒤에 쓰인 그의 유서에는 오랜 폭력이 만든 무력감, 두려움, 깊은 절망이 배어 있었다.

“세 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_ 박준경의 유서 중

개발의 이름에 따라 세입자의 상황은 천양지차 갈린다. 흔히 재개발은 지역이 낙후해 전체적인 개발이 필요할 때, 재건축은 지역의 인프라는 있지만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사용하는 것이라지만 한국의 개발 관련한 법은 개발자의 편의에 따라 우후죽순 변해왔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 아현2구역 역시 지역의 상황을 보면 재개발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2003년 뉴타운 광풍을 타고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됐다. 최소한 동절기에 사람을 내쫓는 후안무치만은 거두자는 동절기 강제철거 금지조례가 용산참사 이후 만들어졌지만 11월 30일의 폭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게 만드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다.

2018년 5월 아직 박준경이 아현동에 살고 있던 당시 UN 주거권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현장 조사차 아현2구역에 방문했을 때 동네를 돌아다니던 경비용역은 ‘왜 돌아다니는 거냐’며 UN 특별보고관마저 겁박했다. 이후 UN 주거권 특별위원회는 ‘한국의 재개발 및 재건축에 대한 법체계가 적정 주거권에 대한 지침을 완전히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박준경의 사망 이후 서울시는 관련한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미진한 상황이다. 재건축 지역에서 세입자 보상대책을 수립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권고안을 내놓는 정도에만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관련 대책을 잘 정비하면 끝나는 걸까. ‘세입자 관련 이슈’가 있어 미뤄졌던 아현동 재개발이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박수치는 사람들과, ‘세입자 이슈’가 종결되고 퇴거 절차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는 속보를 기쁘게 공유하는 사회에서 더 나은 길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박준경과 그의 동료들이 아현동 개발로 인해 불안에 떨던 그때, 언론은 ‘마포 개발의 삼두마차’, ‘억대 프리미엄’을 선전하며 아현동 개발을 환영5)하고 있었다.

2019년 1월 12일, 박준경 열사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열사의 영결식이 진행됐던 이 자리는 현재 재건축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최인기
2019년 1월 12일, 박준경 열사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열사의 영결식이 진행됐던 이 자리는 현재 재건축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최인기

박준경이 사라진 아현동에서 그를 기억한다는 것

2018년 12월 12일 마포구청 앞에 박준경의 분향소를 마련했다. 아현동과 신수동, 서울 곳곳의 철거민들이 매일 분향소를 지켰고, 옥바라지 선교센터의 기도회가 열렸다. 매일 아침과 점심시간에는 길게 늘어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아현동에서 박준경이 그러했듯 머무르는 것, 우리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바람이 부는 날에도 우리의 행렬이 마포구청 앞에 있었다. 이윽고 서울시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다. 어머니의 임대주택이 마련되고, 박준경의 영결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해결됐죠?” 마포구 정보과 형사가 한 철거민에게 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자 형사는 재차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해줘요. 해결된 거죠?”라고 물었다. 해결이 뭔데. 철거민이 되물었다. 분노와 슬픔이 단단히 서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해결이 뭔데. 사람이 죽었는데 도대체 뭐가 해결인데.

“힘 모아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의 투쟁을 결의하며 분향소를 철수합니다…” 이렇게 애써 설명하는 무엇을 어떤 이들은 ‘해결’이니 ‘타협’, ‘타결’이라고 부른다. 일상을 포기하고 이어온 분투의 시간이 다시 납작하게 구겨진다. 슬픔은 차라리 목놓아 싸울 수 있을 때 견딜만한 일이었다. ‘해결’로 박제한 시간에는 사랑도, 원망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고작 해결이나 타결을 하고자 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굴뚝을 오르는 노동자도, 자식의 시신을 냉동고에 두고 거리를 헤매는 부모도, 밥을 굶어 동료에게 연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해결이나 타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작은 물꼬조차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기게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왔지만 어떤 결과도 소중한 동료와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는 부족하다. 이에 대한 후회와 아픔마저 오롯이 ‘이쪽’ 사람들의 것이었다.

“이제 해결이 되었다고 하는데 준경이는 여전히 제 옆에 없네요.” 영결식장에서 박준경 열사의 어머니가 말했다. 추운 겨울 강에 몸 던진 자식을 다시 냉동고에 넣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을 덜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 슬픔이 너무 외로운 것이 되지 않도록 함께 기억하겠다는 무망한 약속이라도 자꾸 반복하는지 모른다. 다음에는 부잣집에 태어나 준경아, 추운 것도 싫어하는 내 자식 얼마나 추웠니. 재가 된 박준경의 위로 어머니의 눈물과 모란공원의 흙이 덮였다.

2019년 1월 12일, 마석 모란공원에 박준경 열사를 안치했다. 가족과 동료 철거민들이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있다. 사진 최인기
2019년 1월 12일, 마석 모란공원에 박준경 열사를 안치했다. 가족과 동료 철거민들이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있다. 사진 최인기

그를 위한 밥상

매년 겨울이면 모란공원에서 박준경의 추모제가 열린다. 젊은이의 제사상에는 불고기버거, 크림빵, 초코바 같은 것들이 빠지지 않는다. 밥 먹으라는 말은 한 귀로 흘리고 자꾸 초코바만 먹었다고 그에 관한 핀잔 섞인 이야기를 할 때도 엄마의 말에는 찰박한 눈물이 고여있다. 아들을 생각하며 지었을 밥이며 나물, 자작하게 조린 볶음들을 어머니는 다시 포장해 빈곤사회연대 손에 꼭 들려 보낸다. 혼자 먹으면 어차피 맛이 없다는 말을 더하며 싸주지만, 나도 눈물로 지은 밥이 지은이의 밥상에 다시 돌아가길 원치 않아 군말 없이 들고 온다. 그를 위해 지어진 밥을 매년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다. 잘 먹으면 그 마음이 몸 어디에 잘 저장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며 먹는다. 올겨울에도 크림빵과 불고기버거, 초코바 그리고 나물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박준경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골목이 사라진 아현동을 걸을 것이다.

2019년 1월 19일, 박준경 열사 49재 모습. 열사의 영정 앞에 불고기버거, 크림빵, 초코바, 우유, 과일 등이 정성스레 놓여 있다. 사진 김윤영
2019년 1월 19일, 박준경 열사 49재 모습. 열사의 영정 앞에 불고기버거, 크림빵, 초코바, 우유, 과일 등이 정성스레 놓여 있다. 사진 김윤영

*                *                *

1) 공덕5구역, 아현3구역, 염리2구역, 염리3구역, 염리4구역, 염리5구역, 아현2구역, 마포로6구역

2) 아현포차 문제해결을 위한 모임(가)은 2016년 7월 13일 지역주민-상인-마포구청 ‘공존을 위한 사회협약’을 마포구청에 제안했다. 마포구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 유튜브 ‘20160818 아현동 포장마차 강제철거’, CITY CINE, 2016.8.18.

4) 마포구 걷고 싶은 길 10선

5) ‘공덕1·아현2·염리3…억대 웃돈 얹고 달리는 '마포 재개발 삼두마차'’, 김형규, 한국경제, 2017.3.29.  

○ 참고자료

『아현포차 요리책』, 황경하 엮음· 박김형준 사진, 식소사번, 2017.

[자료집] 차별과 배제없는 서울을 만들기 위한 도시빈민 정책요구안 발표대회, 빈곤사회연대, 2021.3.17.

유튜브 ‘20160818 아현동 포장마차 강제철거’, CITY CINE, 2016.8.18.

마포구청 홈페이지  

“‘아현 포차’를 묻는다 – 사회적 해결방법은 어떻게 거부되었나”, 김상철의 다른 서울, 김상철, 미디어스, 2016.7.25.

“언론은 ‘사람이 가야만’ 오더라”, 김예리, 미디어오늘, 2019.1.15.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한 철거민의 죽음”, 정환봉, 한겨레, 2018.12.5.

‘공덕1·아현2·염리3…억대 웃돈 얹고 달리는 '마포 재개발 삼두마차'’, 김형규, 한국경제, 2017.3.29.

김윤영의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 가난한 이들을 쉽게 쫓아내고, 머문 자리마저 빠르게 지우는 도시에 애증이 있다. 서울 곳곳에 스며든/지워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공간과 권리에 대해 돌아보는 ‘다크투어 칼럼’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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