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정 반대하는 평생교육계에 장애계 ‘분노’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은 사회적 기준을 이동시키는 투쟁”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2일 오후 12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위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반드시 올해 안에 쟁취하겠다고 결의했다. 사진 하민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2일 오후 12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위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반드시 올해 안에 쟁취하겠다고 결의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들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을 위한 농성에 돌입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는 2일 오후 12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농성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위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반드시 올해 안에 쟁취하겠다고 결의했다.

이 자리엔 앞서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법안 제정 농성이 109일째(3일 기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옆에 전장야협은 전날 밤, 농성을 위한 초록색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했다.

기자회견 당일, 새롭게 설치된 농성장은 “장애인평생교육권리 쟁취!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 농성 선포 기자회견”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뒤덮고 있었다. 한낮의 온도가 30도에 달하여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수십 명의 사람은 이날을 위해 특별 제작된 종이 모자를 쓰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모자엔 “장애인에게 평생교육은 지역사회 통합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룸센터 앞 화단과 국회의사당역으로 향하는 길에도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염원하는 수백 개의 리본이 매여졌다.

이룸센터 앞 화단에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염원하는 수백 개의 초록 리본이 매여있다. 사진 하민지
이룸센터 앞 화단에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염원하는 수백 개의 초록 리본이 매여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반대하는 평생교육계, 장애계 ‘분노’

지난 4월 20일, 전장야협은 유기홍 국회 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대표발의로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전장야협에 따르면, “잇따른 국회 교육위원회의 파행으로 법안 상정 및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반 평생교육계에서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이 장애인의 사회통합이 아닌 분리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평생교육계의 주장과 달리, 장애인평생교육법은 장애인의 자립생활 및 사회참여를 목표(제1조)로 하며,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권리’로 명시(제3조)하고 있다. 나아가 평생교육과 고용·복지의 연계 근거를 마련하고, 장애인평생교육법에 대한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성을 강화하여 지원체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장야협은 “현행 비장애인 중심의 평생교육 지원체계에서는 장애성인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장애성인에 대한 평생교육은 장애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 목적과 교육 과정, 지원내용이 달라야 하지만 현행 평생교육법은 오히려 제약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 다사리학교 교장인 송상호 전장야협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청주 다사리학교 교장인 송상호 전장야협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평생교육법안 제정 투쟁은 사회적 기준을 이동시키는 투쟁”

청주 다사리학교 교장이기도 한 송상호 전장야협 이사는 “교육청에 찾아가면 우리 일이 아니라며 시·도청 가라 하고, 시·도청에 가면 다시 교육청에 가라고 한다. 시·도청, 교육청에 찾아가 ‘장애인이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도 어떤 누구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면서 “많은 장애인야학이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송 이사는 “비장애인은 복지관, 주민센터만 가도 공부할 수 있는데, 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은 없다”면서 “장애인은 정규학교에서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채 살아와서, 삶의 많은 영역에서 권리 침해를 당해도 제대로 문제제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경우, 중학교 졸업 이하 학력이 전체 장애인의 54.4%에 달하며, 이는 전체 국민 중 중졸 이하 학력인 12%에 비해 4.5배나 높은 수준이다.

또한 “평생교육계에선 ‘평생교육법이 있는데 장애인평생교육법을 왜 또 만드냐. 장애인들은 왜 특권을 바라느냐’고 한다”면서 “그러나 교육기본법이 있음에도 장애인의 특별한 사항을 고려한 특수교육법을 만들었듯, 평생교육법이 장애인을 소외시킨다면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선영 안산 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도 장애인야학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교장은 “처음에 ‘나무를 심는 학교’라고 지으니 산림청 가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면서 “장애인야학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장은 “장애인야학이라고 하면 ‘밤에 장애인 몇 명 모여서 뭘 하냐’고 묻는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밤이 아닌 낮에 공부한다. 장애인이 밤에 공부하려면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저녁 시간에도 활동지원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하나 그러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은 4300개라던데, 전국 평생교육시설에 등록된 장애인야학은 300곳 밖에 없다고 한다”면서 “비장애인에겐 그토록 강조하는 교육을, 장애인이 받고 싶다 하면 돈 없으니 지원 못 한다고 한다. 학령기에 보장하지 못한 교육권을 성인이 되어서라도 보장해야 할 텐데 이렇게 외쳐야만 하는 현실에 씁쓸함이 든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포장애인야학 교장인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은 장애인평생교육법안 제정 투쟁은 단순한 법 제정 투쟁이 아닌 사회적 기준을 이동시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했다.

“93년도에 노들야학에서 장애인운동을 만났습니다. 그때 장애인의 70.5%가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을 못 했어요.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도 없고, 지하철엔 엘리베이터도 없고, 장애인콜택시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야학에서 배움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적 기준을 이동시키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목소리엔 우리의 분노와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히 받아야 했을 권리가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지금 상태로 장애인이 사회에 나와봤자 무슨 통합과 참여가 가능하겠나.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정’은 장애인에겐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라면서 “우리는 단순한 법 제정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을 바꾸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을 쟁취해내자”고 외쳤다.

여의도 이룸센터 앞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법안 제정을 위한 농성장 옆에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장이 추가 설치됐다. 사진 하민지
여의도 이룸센터 앞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법안 제정을 위한 농성장 옆에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장이 추가 설치됐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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