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과학잡지 에피 공동기획 : 장애와 테크놀로지

장애인마다 개별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나 재화는 다양하고, 장애인 대부분이 명품코너의 큰손도 아니다. 기업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적다. 오래도록 장애인의 삶은 가족이나 종교의 희생과 헌신에 기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공공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재화도 주로 의료나 재활 프로그램 등에 국한되었다. 2021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혁신이고, 둘은 장애인들의 새로운 권리 의식이다. 정부를 시작으로 주민센터와 장애인복지관으로 이어지는 사회복지 전달체계는 종종 느리고,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고, 대체로 일방적이다(물론 여전히 중요하다). 장애인들은 이제 정해진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수혜자라고 스스로 생각지 않으며 각자의 개별적이고 다양한 삶의 필요들을 새로운 매체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표출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복지 전달체계 내외부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이렇게 표출된 요구에 부응하는 서비스의 생산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현실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소셜벤쳐 세 팀을 한 자리에 초대했다. 각자의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서, 기술과 장애의 관계,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의 법과 제도 속에서 마주하는 한계와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진행/정리 : 김원영

- 참석자 : 박원진(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백정연(소소한소통), 심재신(토도웍스)

왼쪽에서부터 백정연 사회적 기업 소소한소통 대표,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 사진 강혜민
왼쪽에서부터 백정연 사회적 기업 소소한소통 대표,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 사진 강혜민

김원영(아래 김) : 반갑습니다.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원진(아래 박) : 에이유디 시회적협동조합(아래 에이유디)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에이유디는 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과 사회 참여에서 겪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문자통역서비스1)를 제공하고, 문자통역에 필요한 IT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백정연(아래 백) : 사회적 기업 소소한소통(아래 소소)의 대표 백정연입니다. 소소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쉬운 정보를 제작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도서나 소책자, 각종 서식 등을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제작합니다.

심재신(아래 심) : 토도웍스(아래 토도)의 CEO(최고경영자)와 CTO(최고기술책임자)입니다. 토도는 이동에 불편을 겪는 분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사회를 맡은 김원영 작가. 사진 강혜민
사회를 맡은 김원영 작가. 사진 강혜민

김 : 참여하신 세 분 모두 창업자이신데요.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백 : 저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발달장애인분들과 관련된 일을 16년 정도 했습니다. 발달장애인법2) 시행 준비를 위해 보건복지부에 파견 근무를 갔고, 이때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easy read)에 관한 논의가 해외에서는 오랜 기간 진행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로 글을 읽고 청각장애인은 수어나 문자통역 서비스로 정보를 접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은 쉬운 정보를 권리로서 제공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그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 공고를 보았는데,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쉬운 정보에 대한 열정만으로 사업계획서를 쓰고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심 : 저는 이 질문이 부끄러운데요. 제 주변에는 가족이나 친척을 포함해 장애인이 한 분도 없으셨어요. 어느 날 딸아이가 휠체어를 탄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휠체어를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었고 원래 기계쪽 일을 하다 보니 그저 신기했습니다. 속도는 얼마나 나는지, 편한지 이런 질문을 호기심에 던졌어요. 그 아이가 (답변을 참 잘해줬는데요) 전동휠체어로 학교에서는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데 엄마 차에는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없어서 집에서는 수동휠체어를 탄다면서, 너무 힘드니 밖에는 나갈 수가 없어 집에서 게임만 한다는 겁니다. 잘 모르면서도 “거기다가 모터 달면 되잖아? 아저씨가 달아줄게”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나를 제작해서 아이에게 달아줬는데, 아이가 그걸 타고 병원도 가고 여행도 다니니까 주변에서 만나는 분들이 그걸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점점 제가 다니던 회사로 전화가 왔고, 이거 혹시 우리 아이도 만들어줄 수 있냐, 나도 살 수 있게 제작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난감했지만 양산 단계의 비용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다음(Daum) 스토리펀딩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어요. 그곳에 소개가 되고서 난리가 났습니다. 주변 분들이 제대로 해보기 위해 회사를 설립하라고 제안하셨어요.

토도웍스 홈페이지에 게재된 ‘휠체어 사용 아동 이동성 향상 프로젝트’ 성과표. 토도웍스는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아동에게 몸에 맞는 휠체어와 전동키트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토도웍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토도웍스 홈페이지에 게재된 ‘휠체어 사용 아동 이동성 향상 프로젝트’ 성과표. 토도웍스는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아동에게 몸에 맞는 휠체어와 전동키트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토도웍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박 : 저는 원래 전공이 특수교육이었어요.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초·중·고등학교까지 수업을 듣는 게 어려웠어도 참고서를 보든 과외를 받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했고, 대학에서는 노트북으로 대필 지원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졸업을 하니 모든 지원이 딱 끊기는 거예요. 임용시험 준비 과정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도 없어서 무기력에 빠진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다른 청각장애인분이 창업한 단체를 알게 되었어요. 청각장애인 대표,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관심이 생겨서 소셜벤처에 대해 찾아보니 멋진 기업들이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어요. 나의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영상에 자막을 입혀 올려주는 자막제공 플랫폼을 아이디어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석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서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에이유디를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좌담회 현장 모습. 사진 강혜민
좌담회 현장 모습. 사진 강혜민

- 급격한 디지털 전환의 가운데서

김 : 에이유디의 탄생과 성장에는 어디서든 문자통역서비스가 전달될 수 있는 IT기술 인프라가 그 배경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반이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크게 변하는 시기인데요. 제품과 서비스에서 각자 어떤 변화를 맞고 있고,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박 : 에이유디는 협동조합으로서 문자통역사가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각 기관 등에서 문자통역 서비스를 요청하면 저희 에이유디에서 문자통역사를 파견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을 맞아 많은 행사나 모임들이 전부 원격으로 바뀌었지요. 문자통역사들이 주로 현장에 가서 문자통역을 지원했지만 (에이유디는 이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문자통역을 제공하고 있었기에) 지금처럼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행사 등에 빠르게 대응이 가능했습니다.

에이유디 문자통역을 이용하고 있는 박원진 이사장의 모습. 
에이유디 문자통역을 이용하고 있는 박원진 이사장의 모습. 

김 : 줌으로 진행되는 강의에서도 에이유디의 문자통역을 많이 활용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음성언어를 문자로 전환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점차 정교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박 : 문자통역 서비스는 2인 1조가 가장 정확합니다. 한 사람이 타이핑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보완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비용이 큽니다. 보완자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AI가 음성을 듣고 출력을 해줄 때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오류를 문자통역사가 수정해서 보완해주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문자통역사가 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서비스를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심 : 토도는 장애아동들이 몸에 맞는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를 직접 개발도 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몸에 맞게 관리해주는 구독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개인에게 맞춰진) 접근성 데이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카페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접근 할 수 있다/없다를 표기한 배리어프리 지도가 있더라도, 그 출입 여부를 무슨 기준으로 정할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같은 휠체어를 이용하더라도) 어떤 장애인가에 따라서, 휠체어를 다루는 스킬에 따라서 어떤 분은 접근할 수가 있지만 어떤 분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국내의 거의 모든 장애아동이 각기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레벨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요. 이를 활용한다면 ‘너 정도의 스킬과 레벨이면 여기 한번 가볼 수 있어’ 같은 개별화된 배리어프리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저희는 사용자, 즉 나 정도의 레벨, 나의 장애 정도,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장비 능력 등에 기초해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백 : 발달장애인은 기술 기반의 서비스 이용 자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희는 카카오톡 채널을 개설해두고 발달장애인분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용어 등을 저희에게 친구처럼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쉬운 정보 콘텐츠가 점차 누적되면,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우리말365’라는 맞춤법 서비스를 해주듯, 발달장애인 한 분 한 분에게 모르는 표현을 더 잘 답변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더 쌓이면 언어 번역에 활용되듯 인공지능을 통한 ‘쉬운 정보’ 제공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 : 지금 상황에서는 ‘쉬운 정보’로 된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니까요.

백 : 저희가 이번에 낸 책 제목이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에요. 김초엽 작가님이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책 제목 그대로, 쉬운 정보 만들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소소한소통 홈페이지 첫 화면. “소소한 소통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누구에게나 ‘쉽게’ 만들어갑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홈페이지 캡처.
소소한소통 홈페이지 첫 화면. “소소한 소통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누구에게나 ‘쉽게’ 만들어갑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홈페이지 캡처.

- 장애인을 위한 기술, 무엇이 필요한가

김 : 새로운 기술을 통해 장애 문제에 접근하는 일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종종 비판도 받습니다. 예를 들어 AI를 통해 농인분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내용의 광고나, VR기기를 쓰고 경복궁 안을 관람하는 장애아동의 광고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백 : 저희 남편은 휠체어를 타지만, 남편을 걷게 하고 계단에 오르고 그런 테크놀로지를 기대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휠체어를 탄 채로 어디든 편리하게 이동하고 싶은 것이지요. 청각장애인분이 나오신 그 광고를 볼 때도 ‘꼭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만 소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원진 대표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박 : 저는 장애를 ‘정상화’한다는 의도라면 그에 반대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제가 ‘정상인’이 될 수 없거든요. 이 광고는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감동을 주려 한 거 같은데요. 저는 굳이 부모님께 AI 목소리를 들려줄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한편으로, 뇌병변장애인분들이 발표를 하는 경우처럼 (언어장애가 있으므로) 음성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택배가 왔을 때 택배기사님이 초인종을 눌러도 말로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가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택배기사님에게 전달하는 거지요.

김 : 말씀하신 것처럼 택배기사님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의사소통 보조’겠지요. 반면 광고 속에서는 목소리 자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된 거 같기도 합니다.

심 : 저는 (VR기기로 경복궁을 관람하는) 광고를 봤을 때 솔직히 혼란스러웠어요. “VR 관람 만드느니 경사로 하나를 설치해라”라는 댓글을 봤어요. ‘경사로가 더 싸니까 돈 얼마 안 들지 않냐’ 이런 이야기인데요. 저희가 제품 설치를 위해 주문하는 분들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는 장애 정도가 너무 심해서 저희 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어떻게든 이걸 타면 집 앞에 나가거나 여행을 갈 수도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이용할 수 없어) 아쉽다고들 하시거든요. 그런 분들에게는 VR을 통한 간접체험도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광고 제작진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어떤 기술에 대해 “VR 만들 돈으로 경사로 설치해라”라는 이야기에는 공감을 잘 못하겠습니다.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 사진 강혜민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 사진 강혜민

- 장애인 복지를 위한 법제도와 소셜벤처

김 :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이익을 내기는 더 어렵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공공 정책 지원을 받기도 하는지요.

심 : 저희는 소셜벤처이기에 재무적인 성과도 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시장에서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관련 시장이 작다는 점이지요. 세계적으로 장애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 시장이 큰 나라는 없는데도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고가의 제품이 생산되는데, 국가가 구매해서 장애인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고가의 제품을 직접 구매해야 해서 시장이 작고) 업체가 영세해서 좋은 인력이 이 분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 결과 이동보조기기, 의료기기 수입이 94%인 나라가 돼버린 거죠. 반면 독일의 한 휠체어 회사는 매출이 1조에 달하기도 합니다. 좋은 제품을 생산해서 수출도 하니까요. 저희도 유럽에 수출을 하고 있는데, 이런 개발 과정에서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 :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둔다면, 장애인보조기기도 산업정책 차원에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 같습니다. 현재는 장애인보조기기를 구매할 때 그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있긴 하지요.

심 : 저희 제품은 아직 의료기기가 아닙니다. 건강보험을 비롯해 각종 급여 지원을 받기 위해 식품의약안전처의 의료기기 인증을 5년째 진행 중인데 올해 드디어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아쉽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의료기기로 인정받고 있거든요. 5년 차인 올해 식약처의 허가를 받고 나서 다시 여러 부처를 찾아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3)

김 : 에이유디 역시 비슷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 : 문자통역 서비스 확충에 필요한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수어통역 서비스 경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법4)이 정비돼 있어요. 법률과 조례 등에 근거해서 서울시 자치구에 수어통역센터가 설립되어 있고 수어통역사를 뽑아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반면 문자통역 서비스에 대한 지원 근거는 거의 전무합니다.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수어통역센터라는 기존의 시스템을 이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문자통역 서비스의 제공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뤄지지 못합니다. 청각장애인은 당연히 수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통념도 있고요.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을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려면 대중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법적인 지원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강혜민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강혜민

김 : 수어통역만큼이나 문자통역도 중요하다는 것을 청각장애인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을 텐데, 공적인 지원 서비스가 설계된 후 유연하게 확장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에이유디의 서비스가 가지는 중요성도 느껴지고요. 소소가 제작하는 쉬운 정보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있지 않은지요.

백 : 저희 서비스의 최종 고객은 발달장애인이지만, 비용을 지불하고 쉬운 정보를 제작하는 곳은 주로 기관이에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것과 기관이 원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발달장애인분들은 일상에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하는데, 기관은 대부분 교육하고 지원하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세요. 쉬운 정보 콘텐츠에 대해 바우처(특정 서비스에 대한 구매권)가 제공된다면 발달장애인 개개인이 각자 원하는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들은 선거 관련 정보에 대해 강한 요구가 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정보를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제공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림 투표용지, 쉬운 공보물 등이요. 이를 위해 공직선거법의 개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 : 시간이 어느덧 많이 흘렀습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요.

심 : 토도가 생기기 이전에 아동의 이동권 문제는 실질적으로 많은 분이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어요. 휠체어로 이동이 필요한 아이들이 국내에 2000명 정도에요. 이 아이들이 친구나 보호자가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에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돌아다니면, 아이들 2000명과 주변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저희가 그동안 전동키트를 단 휠체어를 약 90%인 1800명에게 제공했고, 여기에 40억 원의 예산이 들었는데요. 40억 원으로 이런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성과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박 : 소셜벤처로서 정부에서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해결해보고자 시작했고,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에이유디는 6년 만에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어렵게 된 사례인데요. 문자통역 서비스의 인지도가 많이 낮았기 때문이에요. 정부에서 (이 중요성을 이해하고)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백정연 사회적 기업 소소한소통 대표. 사진 강혜민

백 :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는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문화가 있어요. 저희는 사회적 기업이라 기본적으로 매출 발생을 위해 양질의 상품을 만들고 판매를 시도하는데, ‘왜 돈을 받지?’ 이런 반응들이 많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지만,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 아이들이 스스로 휠체어를 조작해서 학교와 거리를 누비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확실히 토도웍스의 등장 이후 만나게 된 새로운 풍경 같습니다. 문자통역을 제공하는 문화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전과 후가 정말 큰 차이가 있지요. 저도 민간에서 운영하는 북클럽에서 에이유디의 문자통역을 받은 적이 있는데, 청각장애인들은 과거 학교 밖의 이런 모임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길이 생긴 것입니다. 장애인복지관의 프로그램이 아닌, 발달장애인 개개인이 즐기고 싶은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쉬운 정보’라는 아이디어로 구체화한 것은 소소한소통의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긴 시간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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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자통역은 소리 정보를 문자통역사가 (주로) 컴퓨터 속기를 통해 문자 정보로 변환해 주는 작업을 지칭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문자통역(속기)을 공공 기관이나 교육 기관이 장애인에게 제공해야 하는 ‘정당한 편의 제공’의 하나로 명시한다(제14조, 제21조).

2)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2014년 제정되어 2015년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학대나 폭력에 노출되기 쉽고 스스로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원칙과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10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 지원 등 중요한 정책 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하며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는 지원 도구나 전문 인력을 양성할 의무를 규정한다.

3) 장애인보조기기를 구입하는 경우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근거하여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중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장애인보조기기에 대해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제도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된다. 그런데 이 제도는 건강보험 재정으로부터 지원되는 만큼 의사의 처방전을 요건으로 하며, 보조기기 제품 및 업소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전동 기능을 포함하는 경우) 「의료기기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제조 허가를 받은 제품이어야 한다(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제26조, 보건복지부 고시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 기준 등 세부사항’ 별표3). 이러한 법령 체계에서 휠체어는 의료법상의 기기로 규율될 수밖에 없는데, 모빌리티 산업 전반의 혁신이 일어나는 가운데 이것이 언제나 타당한지는 검토가 필요한 문제다.

4) 「한국수화언어법」 제16조 제5항은 수어통역센터를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복지시설(지역사회재활시설)로 인정한다.

* 필자 소개

김원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작가. 『사이보그가 되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썼다.

* 이 글은 비마이너가 공동기획한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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