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폐지 안 된 부양의무자 기준
‘연 소득 1억 원 또는 재산 9억 원 초과’ 기준, “혼란 가중한 정부, 무책임해”

2020년 7월 3일, 박능후 전 복지부 장관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린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2년 뒤에 폐지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동일하다. 시간과 시기의 문제인데,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허현덕
2020년 7월 3일, 박능후 전 복지부 장관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린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2년 뒤에 폐지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동일하다. 시간과 시기의 문제인데,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허현덕

10월 1일부터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60년 만에 대폭 완화된다. 그러나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가 아닌, ‘폐지’되었다고 밝혀 현장에서의 혼선이 우려된다.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지난 9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60년 만에 폐지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2021년 10월부터 근로능력이 없는 등 생계 활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한부모가구 등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60년 만에 없어진다”며 “앞으로 수급가구 재산의 소득 환산금액과 소득만을 합산하여 기준 중위소득 30% 이하면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렸다. 

이어 복지부는 “2017년 11월부터 매년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해왔으며, 올해 2차 추경 과정을 통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당초 계획이었던 2022년보다 앞당긴 2021년 10월에 폐지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2017년부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완화를 추진해 왔다. 이를 통해 2020년 12월까지 약 17만 6천 명이 새롭게 수급자가 되었으며, 2021년 1월 노인·한부모 포함 가구에 대한 기준이 완화되고, 10월 기준 완화 정책으로 인해 약 23만 명(약 20만 6천 가구) 이상이 추가로 생계급여를 받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지 않았다. 생계급여를 신청하더라도 부모나 자녀 가구가 연 기준 1억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이거나, 9억 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소유하는 경우 생계급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부양의무자 기준은 버젓이 존재한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60년 만에 폐지됐다’고 알리는 9월 30일 자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60년 만에 폐지됐다’고 알리는 9월 30일 자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이번 정부의 발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임기 내 완수하지도 못했는데, 마치 한 것처럼 발표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당시, 복지공약 1호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광화문 지하보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찾아가 지난 5년간의 농성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는 현재, 결국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가 아닌 완화 되었으며, 의료급여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만 강조될 뿐 구체적인 계획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의 혼란스러운 부양의무자 기준 정책 발표에 이미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작년에는 한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중증장애인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소식에 탈시설했지만, 9억 원을 초과한 부모의 소득·재산기준에 걸려 생계급여에서 탈락했으며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지 않은 의료급여에서도 탈락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 활동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소식에 의료급여나 생계급여가 필요한 사람들이 급여 신청하러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서는 예도 있을 텐데, 지금처럼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태도는 매우 무책임하다. 60년 만의 폐지라고 말하려면 법률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조항을 삭제시켜야 하는데, 법 개정도 하지 않았다”라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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