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세계 장애인의 날 맞아 1박 2일 투쟁 진행 중
첫째 날 이재명 찾아간 장애인들… 장애인 정책 요구안 전달
탈시설장애인당(當) 대선후보 출정식도 열려
“진짜 대통령 후보가 장애인 정책 이행하도록 할 것”

세계 장애인의 날(3일)을 하루 앞둔 2일, 장애계가 1박 2일 투쟁에 돌입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아래 전장연) 등 장애계는 장애인 권리를 위한 법 제정과 예산 편성을 촉구했다.

첫째 날 오후 4시경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개정안 연내 통과를 요구했다.

같은 시각,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탈시설장애인당(當) 대선 경선후보의 출정식이 있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한쪽에선 장애인이 ‘진짜’ 대선후보를 만나 투쟁하고 다른 한쪽에선 장애인이 ‘가짜’ 대선후보를 내세워 비장애 중심 사회를 규탄했다.

이형숙 회장이 이재명 후보를 기다리며 ‘이재명 대통령 후보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 연내통과 약속하십시오’,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 장애인 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십시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회장이 이재명 후보를 기다리며 ‘이재명 대통령 후보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 연내통과 약속하십시오’,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 장애인 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십시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교통약자법 개정안 통과 요구에 이재명 “단순한 문제 아냐… 국토위 면담 추진”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등 장애운동단체 활동가들은 오후 3시 30분경, 이재명 후보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영등포구 콘래드 호텔을 찾았다. 이 후보가 주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그러나 휠체어 탄 장애인을 보자마자 방패부터 꺼내며 돌진한 경찰 수십 명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이형숙 회장만 겨우 간담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형숙 회장은 이재명 후보를 만나자마자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며 대선후보로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약속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신규 도입되는 버스는 다 저상버스로 하기로 한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재명 후보와 이형숙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재명 후보와 이형숙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 후보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저상버스 의무도입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토교통위원회(아래 국토위) 논의 후 계류 중이다.

지난 3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계단이 있는 일반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 6월 제388회 국회(임시회)에서 한 차례 논의됐다. 당시 국회에서는 ‘현행 저상버스의 대부분이 압축천연가스(CNG)를 연료로 하고 있어 충전소 등 인프라 확보에 대한 고려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정도만 논의됐을 뿐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법 개정안도 중요하다. 심 의원은 장애인콜택시의 지역 간 편차를 줄이고 지방자치단체에 떠맡긴 장애인 이동권을 정부가 책임지도록 하는 개정안을 지난 7월 발의했다. 같은 달 국토위에 회부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논의된 적 없다.

이형숙 회장이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며 두 가지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연내 통과돼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이 후보는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태도로 “저희가 잘 챙기겠다”라고 말한 후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이에 이형숙 회장은 “후보님, 장애인들이 이야기하는 저상버스를 잘 아시지 않냐”라고 말했다. 장애계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일 때부터 이동권 보장을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장애계는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요구했었다. 저상버스를 포함한 장애인 이동권 이슈를 이 후보가 모를 리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는 발언이다.

이재명 후보는 “(저상버스) 다 좋은데, 이렇게 지나가다 만나서 즉흥적으로 약속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형숙 회장이 “이렇게 만나는 거 아니면 이 후보를 어떻게 만날 수 있나, 문밖에서 기다리면 만날 수 있나”라고 물었지만, 이 후보는 답변 대신 “고맙다”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왼쪽부터 박경석 공동대표, 이재명 후보, 이형숙 회장이 장애계 정책 요구안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하민지
왼쪽부터 박경석 공동대표, 이재명 후보, 이형숙 회장이 장애계 정책 요구안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하민지

주한상공회의소 간담회가 끝난 후 이재명 후보는 장애계와의 면담 자리에서 ‘교통약자법 개정안 연내 통과는 약속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 국토위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국토위 국회의원 세 명과의 면담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위 소속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위 소속이므로 책임지고 면담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면담에 참여한 이형숙 회장과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이재명 후보에게 교통약자법,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연내 제정 요구안과 20대 대통령 선거 12대 장애인 정책과 40개 정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12대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 예산 OECD 평균 보장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장애인연금 대상 확대 및 장애인 표준소득 보장 △탈시설 권리 실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및 24시간 활동지원 보장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 보장 △권리중심맞춤형공공일자리 1만 개 보장 △장애인 이동권, 접근권 보장 △장애여성 및 정신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서비스 전달체계 공공성 강화 등이다. 40개 정책 요구안은 12대 장애인 정책의 세부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탈시설장애인당 후보들이 기호를 뽑고 있다. 사진 전장연
탈시설장애인당 후보들이 기호를 뽑고 있다. 사진 전장연

- ‘가짜 대선후보’ 9명 “진짜 후보가 장애인 정책 이행하도록 투쟁”

같은 시각, 여의도 이룸센터 앞 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투쟁 농성장에서는 탈시설장애인당 대선 경선후보 9명의 공식 출정식이 있었다. 이들은 가짜 대선후보로 나서서 장애인 정책 의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당내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 한 명을 가릴 예정인 가운데 2일에는 기호 순번을 선정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의 9개 글자가 각 후보의 기호가 됐다.

출정식에 참석한 서기현 후보(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 이규식 후보(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김수정 후보(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는 이날 출정식에서 “가짜 후보인 우리가 장애인 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도록 ‘먼저 투쟁’에 나서겠다”며 “진짜 후보들이 12대 장애인 정책과 40개 정책 요구안을 이행할 수 있게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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