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을 만난 세계》, 정창조 외, 오월의봄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자면, 요즘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한국 사회의 ‘열사’들을 만나게 된다. 열사들 가운데는 익히 이름을 들어 아는 이들이 많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삶을 부단히 이어가고자 했던 노동자·농민이었다. 열사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게 되는 역설적인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책을 펼친다.

《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정창조 외, 오월의봄) 표지 이미지. 표지는 최옥란 열사의 유서로 만들어졌다.
《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정창조 외, 오월의봄) 표지 이미지. 표지는 최옥란 열사의 유서로 만들어졌다.

-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

《유언을 만난 세계-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오월의봄)에서 우리에게 유언을 전해주는 열사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잘 몰랐던 인물일 것이다. 여덟 분의 장애해방열사는 사람들에게는 잊힌 열사이다. 아니, 애초에 기록되고 기억되지 못했기에 잊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장애인은 “살아서 기억될 자격이 없기에 죽어서 망각될 자격도 없는 변방의 존재들”(20쪽)에 속했으며, “어떤 사람의 삶과 죽음은 ‘불법’으로 규정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은 듯”(109쪽)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열사들을 기억하기로 했다면, 우리는 열사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는 많은 열사가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추모하며 ‘열사정신 계승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그 ‘열사정신’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고백하자면 부끄럽게도 나 역시 몇몇 집회에 참석하여 ‘열사정신 계승하자’는 구호를 외쳤던 적 있지만, 열사정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잘 알지 못했고 고민도 부족했다. 《유언을 만난 세계》는 이러한 고민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기존 열사의 문법에 그간 기록되지 못했던 ‘변방의 열사’들의 삶과 죽음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변방의 열사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나는 대로 드러내고, 이로써 ‘열사’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16쪽)

열사라고 하면 우리는 ‘숭고한 희생’, ‘영웅’ 같은 단어들을 연상할 터이다. 하지만 ‘변방의 열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이러한 기존의 문법을 거부하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고 선언한다. 이것이야말로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렇게 함께 갑시다”라는 우동민 열사의 유언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열사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처럼 열사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조금 이르게 떠나버린 우리 옆에 있던 동지였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록되지 못했다는 표현처럼 장애해방열사들과 관련하여 남아 있는 자료들은 많지 않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남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보니,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의 고통과 어려움이 더욱 크게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유언을 만난 세계》의 글쓴이들은 조각조각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열사와 함께했던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글을 기획하고 책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열사의 삶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열사의 기록을 쌓아나가는 과정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록하고 글을 쓰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어려움 속에서도 열사들의 삶을 전해준 글쓴이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장애해방열사들의 영정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장애해방열사들의 영정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 어떤 유언을 만나고 답할 것인가

《유언을 만난 세계》는 당시의 시간과 공간으로 나를 잡아끄는 느낌을 준다. 턱이 있는 서울거리로, 서초구청 앞으로, 인천 아암도로, 청계천 노점으로, 인천교육청으로, 국가인권위원회로 나를 이끌었다. 그 시공간이 현재와 크게 차이가 없게 느껴져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사들의 활동을 계기로 시작된 투쟁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열사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냈다”(65쪽)는 표현처럼 열사의 유언을 만나고 기억하고 활동하는 이들은 계속 투쟁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열사들의 유언을 만났고, 유언의 세계에 사로잡히게 된 것 같다.

열사들의 유언은 문자 그대로인 ‘남긴 말’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쓴이들이 열사들의 생애사를 재구성하는 데 노력하였던 것은, 그들의 생애 경험 자체가 또 하나의 유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 사람의 생애사는 다양한 울림을 주는데, ‘변방의 열사’들의 생애사는 읽는이로 하여금 다양한 유언을 만나게 만든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열사들은 장애가 있었고,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인식되었기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었으며, 그로 인해 빈곤한 삶을 살아야 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겪는 문제는 장애인이자 여성, 도시빈민인 최옥란을 통해 비로소 ‘사회문제’가 되었다”(252쪽)는 말처럼 열사들의 생애사는 그 자체로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투쟁의 불꽃이 터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는 살고자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안타까운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책을 통해 열사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김순석 열사의 죽음은 당시 청년장애인들의 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최정환 열사와 이덕인 열사는 청년장애인운동과 빈민운동의 토대 위에서 싸웠다. 최정환, 이덕인 열사의 죽음은 박흥수, 정태수 열사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최옥란 열사는 이들과 함께 장애여성이자 빈민으로서의 삶이 처한 모순과 문제에 저항하였고, 이후 확장된 장애인운동판에서 박기연, 우동민 열사가 동지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사들의 삶은 주변의 동지들, 글쓴이들과 연결되어 있다. 나 역시 그러하고,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연결은 “폭력과 억압이라는 과거사의 비극적 소재”, “비극적 과거사에 대한 ‘재현적 증거’”(110쪽)로만 남는 연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공간에 있지는 못해도 연결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면 “어느 대가족의 명절 풍경”(220쪽)에 함께할 수 있으리라.

박기연 열사가 남은 이들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듯이 유언은 계속해서 만나며 이어지고, 말을 걸고 있다. 《유언을 만난 세계》를 읽고서 어떤 유언을 접했으며, 어떤 답을 돌려줄 것인지 함께 고민해본다면 비로소 ‘유언을 만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열사라고 호명되지 않았던 많은 죽음들을 함께 기억해본다. 1978년 10월 25일 새벽, 휠체어를 타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육교를 건널 수 없어 서울시청 앞 차도를 건너다 택시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장애인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 후로도 사망사고가 빈발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불합리한 기준과 수급비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 활동지원이 없어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유언을 만난 세계》에는 이와 같은 많은 “살 수 있었던 죽음”도 함께 이야기되고 있다. 이들의 죽음 역시 그 자체로 무언가를 전하고 있는 “유서가 된 죽음”이다. 열사들의 유언과 함께 이들의 유언도 함께 되새겨보며 책을 덮는다.

필자 소개

문민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국현대사의 장애사와 수용시설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중. 역사연구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수집해서 재미없는 글을 쓰는 사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