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학이 장애학에 건네는 화해
치료, 증강 그리고 사이보그 ③

지난 2월 7일, 장애계는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점거했다.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이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보험적용 확대를 촉구하며 발언하고 있다. 그의 앞엔 ‘스핀라자 외 SMA(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개발 및 등재에 따라 보편적 적용을!’이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사진 허현덕
지난 2월 7일, 장애계는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점거했다.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이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보험적용 확대를 촉구하며 발언하고 있다. 그의 앞엔 ‘스핀라자 외 SMA(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개발 및 등재에 따라 보편적 적용을!’이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사진 허현덕

“20대의 저는 농성장 바닥에 누워 투쟁했지만, 40대에 이른 지금, 그나마 제 삶에 자유로움을 주었던 오른쪽 손가락마저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점점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낄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세계적으로 처음 안락사를 시도한 사람은 근육장애인들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살 수 있는 치료제가 있다고 합니다. 저를 포함해 이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치료제를 지원해주십시오.” (노금호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

지난 1월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에서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포럼’이 개최되었다. 쟁점은 단연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에 대한 고가의 약제에 급여를 적용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근육이 서서히 약화되는 희귀유전질환인 척수성근위축증은 그동안 치료제가 없어 질병의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나, 2016년 획기적 신약 ‘스핀라자(성분명 Nusinersen)’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약가가 터무니없이 고가로 책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치료를 위해서는 첫해에 연 6회, 이듬해부터는 연 3회를 투약하여야 하지만, 제약회사는 매번 투약해야 하는 한 바이알에 1억 원이라는 금액을 매겼다. 다행히 2019년부터 국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었으나, 투약을 위해서는 만 3세 이하에 임상 증상과 징후가 발현되어야 하며, 인공호흡기를 영구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만족하여야 했다. 나아가 요건을 만족한다고 하더라도 질병 당사자는 1회 투약당 600만 원을 내야 했으며, 치료제 투약 후 본인의 운동기능이 실제로 좋아짐을 증명해내야만 약에 대한 보험급여를 계속 보장받을 수 있었다. (척수성근위축증의 치료제를 둘러싼 보다 자세한 논점에 관해서는 기사 〈척수성근위축증 대책위, 원장 면담 요구하며 심평원 점거〉 참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핀라자와 같은 고가의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의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자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포럼’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포럼은 오히려 당사자들과 심평원 및 의료전문가들 사이의 뿌리 깊은 관점의 차이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논란은 포럼에서 ‘스핀라자’에 대한 발표를 맡았던 한 전문가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아주 안타까운 말씀을 드리면 고가의 치료 약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늦게 치료가 되면 기능을 돌리지는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오히려 기능을 늦춰서 환자는 더 힘들게 오래오래 힘든 삶을, 그리고 가족이 그걸 다 케어하면서 지내는 게 아닌가 현장에서 어려운 점들도 있습니다.”

늦은 약물 투약은 기능이 저하된 장애 상태로 지내는 삶을 ‘연장할 뿐’이라는 취지의 해당 발언은 여러 당사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위 발언에는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장애인의 삶의 연장은 “더 힘들게 오래오래 힘든 삶을” 지속시킬 뿐이라는, 장애를 지닌 삶은 빨리 끝나는 것이 낫다는 차별적 전제가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발표를 듣던 한 당사자는 위의 발언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스핀라자를 현재 맞고 있는 척수성근위축증 2형 성인 환자로 신경학적 척도상으로도 점수의 유의미한 상승이 있었지만, 독립적인 일상생활과 기능 면에서도 훨씬 더 나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보호자도 마찬가지고요. 삶의 질 상승은 개인의 주관적인 측면도 물론 존재합니다만, 과연 저 발언이 환자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포럼에서의 논쟁은 한 차례의 해프닝으로 지나갔지만, 발표자의 발화 속에서 드러난, 장애인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서의 차별적 시선은 단지 해당 개인 혼자만의 일탈적 생각이 아니다. 앞선 발표자의 발화 밑바탕에는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인 ‘비용효과성’에 입각한 사고방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보험 제도 속에서 급여의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과정에는 장애인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 것인지에 관한 비장애인 중심적 전제가 내재해 있다. 건강보험 제도 전체의 기저에 흐르는 차별적 시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보험의 급여 적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 어떤 치료를 지원할 것인가?

국민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를 모아 국가는 다양한 의료행위나 약제에 대하여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 이른바 건강보험 ‘급여’를 지원하는 것이다. 모든 행위에 대하여 보험료를 지급할 수 없기에, 심평원은 여러 의료행위와 약제 중에서 어떠한 것에 대해 얼마큼의 급여를 지원할지를 다음의 과정을 통해 결정한다.

건강보험 급여 평가도1)
건강보험 급여 평가도1)

신약의 경우, 보험급여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임상적 유용성’을 검토하게 된다. 즉, 다른 방식으로 대체가능한 것은 아닌지, 치료적 이익이 얼마나 큰지, 진료상 필수적인지, 급여기준에 부합하는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문제의 ‘비용효과성’을 검토한다. 여기서는 해당 약제가 효과 개선 정도 대비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계산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점증적 비용효과비(Incremental Cost Effectiveness Ratio, ICER)’이다. 새로 도입되는 신약이 질병을 치료하여 삶의 질을 1단위만큼 늘린다고 가정했을 때, 사회가 부담하여야 하는 비용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점증적 비용효과비‘이다.

예를 들어, 기존 약제를 투여할 때 삶의 질을 1단위만큼 늘리면서 연간 1000만 원의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가정하여 보자. 한편, 같은 질병에 대해 삶의 질을 2단위만큼 늘리면서 4000만 원의 비용을 발생시키는 신약이 개발되었다면, 신약을 도입할 것인지는 삶의 질을 1단위만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3000만 원의 추가 비용을 사회가 감수할 의향이 있는지의 문제가 된다. 즉, ‘점증적 비용효과비=3000[만 원/삶의 질 1단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증적 비용효과비를 이용하여 어떻게 건강보험 급여를 효율적으로 배분할지에 대해 보건경제학, 보건정책 분야의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약제 급여등재의 핵심 근거가 되는 점증적 비용효과비 계산의 논리 아래에는 삶과 장애,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핵심적 가정이 깔려있다. 다음으로는 점증적 비용효과비에서 ‘삶의 질’을 어떻게 측정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급여 평가 제도에 응축된 수많은 비장애중심적인 가정을 검토하고자 한다.

- 장애인의 ’삶의 질‘은 누가 평가하는가?

(1) 장애보정생존년수(DALY)

약제를 투약하였을 때 개선되는 ‘삶의 질’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1990년대에 시작된 세계질병부담(Global Burden of Disease, GBD) 연구는 삶의 질을 평가하는 직관적인 (그리고 반인권적·장애차별적 우려를 동반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사람 균형교환(person trade-off)’ 방식이다. 그 대표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다음의 [선택지1], [선택지2]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묻는 것이다.

선택지1

선택지2

1000명의 ‘건강한’ 사람들을 1년 추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2000명의 ‘양하지 절단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1년 추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사람 균형교환 방식에서는 여러 형태의 ‘손상된 몸’을 ‘건강한 몸’과 견주어 비교하는데, 여기에는 ‘건강한’ 사람의 목숨은 ‘장애를 지닌’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중하다(혹은 적어도 공적 재원을 통해 살릴 가치가 있다)는 전제를 함축하고 있다.2) 예를 들어, 위의 [선택지1]과 [선택지2] 사이에서 [선택지1]이 더 선호할만하다고 여겨진다면, 다음으로는 다음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선택지1

선택지2

1000명의 ‘건강한’ 사람들을 1년 추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3000명의 ‘양하지 절단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1년 추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이제 ‘건강한’ 사람의 목숨 1년은 3명의 ‘양하지 절단 장애’를 지닌 사람의 목숨 1년과 견주어진다. 여기서 전문가 집단이 두 선택지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하면 ‘양하지 절단 장애’는 ‘건강한’ 상태의 3분의 1의 고려 가치를 갖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음의 장애보정생존년수(Disability-adjusted life year, DALY)를 계산하게 된다.

장애보정생존년수(DALY)의 계산.3) DALY는 장애를 가지고 사는 년수(YLD)와 줄어든 생존 년수(YLL)의 합으로 구해진다. 이때 YLD는 더 중증의 장애를 지닐수록 더 큰 손실로 계산되며, 장애를 지닌 삶은 ‘건강한’ 삶과 동등한 가치로 고려되지 않는다.
장애보정생존년수(DALY)의 계산.3) DALY는 장애를 가지고 사는 년수(YLD)와 줄어든 생존 년수(YLL)의 합으로 구해진다. 이때 YLD는 더 중증의 장애를 지닐수록 더 큰 손실로 계산되며, 장애를 지닌 삶은 ‘건강한’ 삶과 동등한 가치로 고려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위의 양하지 절단 장애 당사자에게 약제를 투약하여 30년을 추가로 생존할 수 있다고 가정하여 보자. 그러나 장애보정생존년수에 따른 경제성 평가에서, 해당 당사자의 30년의 생명은 건강한 사람의 ‘30년’과 동등한 가치로 매겨지지 않는다. 그의 삶은 앞서 사람 균형교환에 의해 ‘건강한’ 삶의 3분의 1의 가치로 깎여있었기 때문에, ‘건강한’ 삶 10년의 가치로 고려되는 것이다.

이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위와 같은 ‘사람 균형교환’이나 장애보정생존년수의 평가가 오로지 전문가 집단에 의해 내려졌다는 것이다. 즉, 장애를 지닌 삶의 가치 평가를 해당 장애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 집단이 내림으로써, 장애인의 삶은 평가절하되고 고려할 가치가 적은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2) 질보정수명(QALY)

장애보정생존년수의 보급 이후, 이를 통해서는 장애나 질병 상태를 경험하는 주관적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주관적 삶의 질 평가를 반영한 ‘질보정수명(Quality-Adjusted Life Year, QALY)’이 보다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국내 건강보험 급여의 점증적 비용효과비 평가 내 ‘삶의 질’ 계산에서도 질보정수명을 사용하고 있다.4)

그러나 질보정수명 또한 사람 균형교환의 개념에 기반하고 있으며, 장애를 지닌 삶의 가치 평가에서 당사자를 배제한다는 장애보정생존년수의 한계를 그대로 노정한다.5) 질보정수명의 기본적인 산출 방법을 나타낸 다음의 그림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살펴보자.

질보정수명의 계산

위 그림과 같이 질보정수명은 삶의 질 계수에 생존년수를 곱한 값으로 측정되는데, 이때 삶의 질 계수는 개인이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완전한 건강이 1, 죽음이 0, 장애 및 질병 상태는 1과 0 사이의 값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중등도 장애가 있는 상태의 삶의 질 계수가 0.5라고 평가된다면, 같은 연수를 살더라도 질보정수명은 절반으로 계산되어 경제성 평가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장애보정생존년수의 방식과 동일하게 장애를 동반한 삶의 시간이 (소위 ‘건강하다’고 말해지는) 비장애로 살아가는 삶의 시간보다 낮은 비중으로 고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질보정수명의 삶의 질 계수 0.5를 지닌 장애 당사자의 2년은 ‘건강한 사람’의 1년과 동일한 가치로 판단된다.

장애보정생존년수보다 질보정수명이 나아간 점은, 이러한 장애/질병에 따른 삶의 질 계수가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설문자 개개인의 주관적 응답을 통해 산출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질보정수명은 “각 건강상태가 개인에게 주는 효용의 정도”를 측정하여 “개인의 [주관적] 선호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6)

그렇다면 급여등재 비용효과성 분석에서는 질보정수명 계산에 있어 ‘개인의 주관적 선호’라는 것을 어떻게 반영하는 것일까? 다음은 질보정수명의 측정과 관련하여 2021년 1월 심평원에서 발간한 《의약품 경제성 평가 지침》에 수록된 내용이다.

건강상태의 질 가중치는 간접 측정방식으로 산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즉, 선호에 근거한 일반 도구로 환자의 건강상태를 측정하고, 이 자료에 기존에 도출된 도구의 점수체계(tariff)를 적용하여 질 가중치를 산출한다. 건강상태의 선호도 측정대상으로는 국내의 대표성 있는 일반 대중을 선호한다. (31쪽)

인용문에서 언급하듯, 질보정수명의 계산에 사용되는 점수체계는 ‘국내의 대표성 있는 일반 대중’에게 주관적 선호를 조사함으로써 얻어진다. 즉, 장애/질병의 상태에 놓인 당사자 스스로가 느끼는 삶의 질이 아닌, 임의의 일반대중이 어떠한 장애/질병 상태에 대하여 ‘미루어 짐작하는’ 삶의 질 척도를 기준으로 장애 당사자의 삶의 질을 평가하고 있다. 결국 장애/질병 당사자의 삶의 질은 다수자인 비장애인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되며, 여기에 다양한 비장애중심적 관점이 개입한다. 예를 들어 일반 대중의 시각이 “나는 3년간 독립보행 불가 상태로 사느니 1년을 독립보행 가능 상태로 살겠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삶은 비장애인의 3분의 1의 가치로 점수 매겨지는 것이다.

또한, 질보정수명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설문 또한 장애차별적 가정 위에 수행되고 있다. 질보정수명 산출을 위한 설문 방식 중 대표적인 ‘EQ-5D(EuroQol 5-demension)'를 살펴보자.

EQ-5D(EuroQol 5-demension)

위의 설문에서 볼 수 있듯이, 독립적으로 걷는 데 지장이 있거나 혼자 목욕할 수 없다면 삶의 질 점수가 깎이며 이로 인하여 질보정수명에서 더 불리하게 고려된다. 그러나 장애운동과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서 주장하여 왔듯이, 장애 당사자에게 사회적 환경이 적절하게 조성된다면 이러한 설문의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활동지원서비스가 폭넓게 보장되고 장애인을 위한 보장구와 기기가 적절히 개발된 곳에서는 “혼자 목욕하거나 옷을 입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삶의 질 저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즉, 질보정수명과 삶의 질 측정에는 사회 환경의 개선이라는 선택지는 고려되지 않으며, (차별적 환경을 개선하는 선택지 대신에) 개인의 삶의 질을 평가절하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장애를 지닌 삶’을 ‘더 적은 가치를 지닌 삶’으로 만들어버리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애 당사자의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함으로써 건강보험급여 등의 지원이 더 필요한 당사자를 오히려 급여로부터 주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처럼 장애보정생존년수와 질보정수명의 개념에 기반한 건강보험급여의 비용효과성 평가는 비장애중심적 전제 위에 서 있으며, 이러한 관점을 반영하는 전문가 집단에서 서두와 같은 차별적 발언이 이루어지는 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의 보다 폭넓은 건강보장 급여 적용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건강보험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질보정수명의 전제에 대해 문제제기 한다는 것이기도 하며, 사회 전체에 만연한 장애차별적 시선과 평가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기도 하다.7) 장애인의 삶의 질은 누가 평가하는가? 장애 당사자의 삶의 가치는 누구에 의해 평가되는가? 뒤늦은 치료제 투약으로 “환자는 더 힘들게 오래오래 힘든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발언에 맞서, 그리고 건강보험과 국가의 비장애중심적 평가체계에 맞서, 당사자는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의 동등한 삶의 가치를 되찾아 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본 글은 척수성근위축증 약제의 개발과 건강보험 적용 과정을 둘러싼 다양한 비판 지점 중 ‘비용효과성 분석’과 ‘삶의 질 평가’와 관련한 극히 일부의 측면만을 다루었으며, 하기의 요소들 또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스핀라자는 초국적 제약기업인 바이오젠에 의해 개발되었다. 약제 개발과정에서 투입된 높은 연구비와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 수가 적어 약제의 단가가 높게 측정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현재의 천문학적 약가가 적절히 측정되었는지, 당사자의 접근성을 위해 초국적 기업이 책임질 측면은 없는지에 대해 시민들이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스핀라자는 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 간의 ‘위험분담제’를 통해 급여를 적용받은 약제이다.8) 위험분담제란 고가의 항암제나 희귀질환 약제와 같은 신약의 “효능·효과나 보험재정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회사가 일부 분담하는 제도”로, “비용 효과적인 의약품을 선별 급여하는 원칙을 살리면서도, 대체제 없는 고가항암제 등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되었다.9) (예를 들어, 고가의 신약에 대하여 제약회사가 지불받은 비용 중 일정 비율을 건강보험공단에 환급하는 방식의 위험 분담이 가능하다.) 따라서 약가 책정과 위험분담제 적용 과정에서 당사자에 대한 접근성이 충실히 보장되었는지, 장애차별적 전제 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위험분담제 사후관리가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시민들이 검토하는 과정 또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                    *                    *

1)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급여 평가도 

2) 장애보정생존년수(DALY)에 대한 윤리적 비판으로 다음의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Arnesen, Trude, and Erik Nord. "The value of DALY life: problems with ethics and validity of disability adjusted life years." Bmj 319.7222 (1999): 1423-1425.

3)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isability-adjusted_life_year 이곳의 그림을 필자가 편집하여 사용함.

4)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 경제성 평가 지침》, 2021년 1월, 10쪽

5) Harris, John. "QALYfying the value of life." Journal of medical ethics 13.3 (1987): 117~123.

6)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 경제성 평가 지침》, 2021년 1월, 32쪽

7) 단, 본문에서 다룬 내용은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의 ‘급여 등재’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스핀라자는 “대처 가능한 다른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자료 제출 생략 약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약제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 결과 - Nusinersen sodium(as Nusinersen 12mg(2.4mg/mL))')본문의 논의는 당사자가 스핀라자에 대한 급여 적용을 받기 위해 만족하여야 하는 조건들, 영유아기 이후의 투약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화, 건강보험 급여등재 체계 전반에 내재되어 있는 비장애중심적 전제에 대한 비판을 위한 것이다.

8)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약제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 결과 - Nusinersen sodium(as Nusinersen 12mg(2.4mg/mL))'

9) 아래 내용은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부, ‘위험분담약가협상 및 사후관리 설명회’ 2020.11.25. 발표자료 참고.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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