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약자 지원 위해 주거서비스 결합한 ‘지원주택’
대선후보들 앞다퉈 주택 수백만 호 공급 공약
지원주택 공급은 외면
지원주택 의무제공 명시한 법안은 국회 계류 중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주택공급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가운데, 시민사회단체가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 정책을 공약하라”고 요구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2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장애인·고령자 등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는 18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후보는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을 약속하고 주거약자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1960명의 시민이 서명으로 선언에 동참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활동가가 ‘주거에 나이는 없다. 청소년에게도 집을!’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기자회견에 참가한 활동가가 ‘주거에 나이는 없다. 청소년에게도 집을!’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 수용시설 중심인 주거약자 지원 정책… 대선후보는 ‘공급 폭탄’ 공약만

지원주택은 주거서비스를 결합한 집이다. 주거약자에게 주택을 우선 제공한 후, 실질적인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활 전반의 서비스가 함께 지원된다. 입주자는 개인별 욕구에 맞춰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 지원주택 공급을 요구하는 이유는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현실에 있다.

2019년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민 중 저소득층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득을 하나도 쓰지 않고 48.7년을 모아야 가능하다. 전국 저소득층으로 범위를 넓혀도 21.1년이 걸린다. 주거약자가 살면서 주택을 소유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적정주거특별보고관은 2018년 한국에 방문해 “주거권을 기본 인권으로 인식해야 할 뿐 아니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비주택 거주자에 대한 대책과 거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처럼 한국은 주거권 취약국이지만 법에는 주거권이 명시돼 있다. 주거기본법 2조는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장애인, 홈리스, 아동·청소년, 고령자 등 주거약자는 집이 아닌 집단수용시설에 갇혀 있다. 주거약자 지원 정책이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시설의 반인권적 구조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여러 명이 집단생활을 하는 구조 속에서 방역과 거리두기는 불가능하다. 시설의 집단생활 자체가 방역에 취약하다. 그런데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정부는 동일집단 봉쇄 조치(코호트 격리)를 취했다. 시설 문을 걸어 잠가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탈시설·탈노숙·탈원화’를 외치며 주거약자가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주거권을 요구해 왔다.

지난해 4월 19일,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열린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출범식. 한 활동가가 ‘지원주택 법적근거 마련하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주거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 두 개를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지난해 4월 19일,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열린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출범식. 한 활동가가 ‘지원주택 법적근거 마련하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주거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 두 개를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는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지난해 4월 19일 출범했다. 출범식 날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주거약자 주거유지 지원서비스에 관한 법률 제정안(아래 주거서비스지원법)을,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주거약자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주거서비스지원법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주택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명시한 법이다. 주거약자지원법 개정안은 모든 주거약자를 포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정부와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입주기간, 임차료 등 임대조건 또한 주거약자에게 적정한 수준으로 책정할 의무를 추가했다.

두 법안 모두 정부와 지자체가 주거약자를 지원할 책임을 강조하지만, 발의된 지 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국회 논의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만 된 상태다.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주택 공급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11만 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250만 호,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공공주택 200만 호 공급을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민간주도 재개발을 활성화해 75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 중 지원주택 공급을 공약한 후보는 없다. 이재명 후보는 장애인 정책공약에서 지원주택 확대를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물량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새 정부에 바란다! 지원주택 10만호 공급 공약 촉구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국회의사당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새 정부에 바란다! 지원주택 10만호 공급 공약 촉구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 공약 안 하면 대통령 자격 없어”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공약으로 내건 주택공급 물량 수백만 호 중 10만 호도 지원주택으로 구성하지 않는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 주거약자에 대한 공약이 없는 것은 대통령이 일부 국민만 국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라며 “또한 대선후보들은 종합부동산세 인하를 공약했는데, 이 정책으로 혜택 보는 사람이 전 국민의 4%다. 집 많이 가진 4%를 위해서는 공약을 내걸면서 지원주택 공급을 약속하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원주택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현재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유장군 씨는 “어릴 때부터 시설에 살았다. 시설 안에서 장애인은 인격체가 아닌 관리 대상일 뿐이다. 탈시설은 보수·진보 등 진영논리와 상관없이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다. (장애인이 탈시설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주택을 늘려 달라. 누군가의 관리 대상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지원주택10만호공대위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탈시설 후 지원주택 입주에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박 활동가는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모르고 그냥 떨어졌다는 문자 한 통만 와서 너무 슬펐다. 10만 호는 최소 기준이다. 더 많아져야 한다. 주거약자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연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는 아동·청소년 복지의 책임을 시설에 떠넘기는 국가를 규탄했다. 김 활동가는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청소년은 만 18세까지 시설에서 ‘잘’ 생활해야만 자립지원을 받을 수 있다. 탈가정한 27만 명의 아동·청소년을 홈리스 상태로 인식하고 홈리스 지원정책에 아동·청소년을 포함하라. 국가 책임을  미루지 말고 지원주택을 제공하라”라고 말했다.

지원주택10만호 공대위는 선언문에서 “20대 대통령선거는 주거정책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에 반해 집단수용시설 구조를 전환하고 주거약자의 주거권을 기본 인권으로 인식하는 주거정책은 없다”며 “주거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공간이다. 주거권에는 주택을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넘어, 주거약자가 적당한 생활수준을 지속해서 누릴 권리가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원주택은 외국에서도 인증된 모델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로 실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원주택을 제공하고 보건복지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 차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대선후보들에게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 공약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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