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 열사 묘역에서 20주기 추모제 열려
노동권 위해 전국 돌며 조직… ‘장애인청년학교’ 모꼬지에서 과로로 사망
20회 정태수상, 김봉조 대구사람센터 활동가‧노들야학 공동수상

3월 1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 주차장에서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 후 열사의 영정 앞에 사람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3월 1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 주차장에서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 후 열사의 영정 앞에 사람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오전 내 내리던 비가 점차 잦아들었다. 햇살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공간의 온도를 데웠다. 마석 모란공원 정태수 열사 묘역 근처 제1주차장. 사방이 묘역으로 둘러싸인 텅 빈 주차장에 대형 무대가 설치됐다. 무대 양편 세로로 길게 내린 검은 천에는 흰색으로 “그대 의로운 뜻, 우리가 이루리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 옆에는 목발을 짚은 정태수 열사의 젊은 시절 사진이 현수막으로 크게 인쇄되어 우뚝 서 있다. 그의 품에 안겨 노란색 오토바이를 타던 딸 세린은 올해 사회초년생이 되었고, 그와 함께 장애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동지들의 머리카락은 희끗하다. 열사가 장애해방의 큰 꿈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지 올해로 20년이 흘렀다.

진보적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은 매년 3월 1일이면 명절처럼 그를 기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다. 이날도 어김없었다. 3월 1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 주차장에서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낮 12시경부터 모인 사람들은 ‘십시일반 밥묵차’가 제공하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어묵탕과 고구마, 사과, 커피로 몸을 채운 이들은 1시부터 정태수 열사의 삶을 담은 다큐 ‘태수’를 시청했다.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에서 추모노래를 부르는 문화노동자 김종환‧박준 씨의 모습. 사진 강혜민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에서 추모노래를 부르는 문화노동자 김종환‧박준 씨의 모습. 사진 강혜민

- 장애인 노동권 위해 전국 돌며 조직… ‘장애인청년학교’ 모꼬지서 과로로 사망

정태수 열사는 1988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전산과를 수료한 후, 복지관 직업훈련원 수료생들의 모임 ‘싹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열사는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을 위한 단식 투쟁을 하고, 1990년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조직부 일을 시작으로 정립회관 비리 척결을 위한 점거 농성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아래 전장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전신)의 조직국장으로 최정환·이덕인 열사 투쟁에 결합한다. 이덕인 열사가 의문사한 인천 아암도 투쟁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96년 4월 20일 치른 ‘제1회 장애인고용촉진걷기대회’는 정태수 열사의 빛나는 성과 중 하나로 기억된다. 열사는 이 대회를 위해 제주도를 시작으로 한 달여가량 전국을 돌며 장애인들을 조직했다.

3월 1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 주차장에서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 강혜민
3월 1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 주차장에서 정태수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 강혜민

전장협과 통합된 서울장애인연맹(서울DPI)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는 장애인 문제의 이론적 토대 강화와 청년 장애인 활동가 양성을 목표로 ‘제1회 장애인청년학교’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2002년 3월 3일, 장애인청년학교 수료식을 겸한 모꼬지 뒤풀이 도중 과로에 의한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이날 추모제에서 정태수 열사의 부인이자 일과노래 문화노동자인 김영희 씨는 “20년의 시간, 장애인 동지들도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아픈 동지들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 “영희야, 힘내라”고 외쳤다. 울음을 삼키며 김 씨는 “앞으로도 같이 조금씩, 천천히 서로 챙기면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라는 말로 인사를 마쳤다.

정태수 열사의 부인이자 일과노래 문화노동자인 김영희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정태수 열사의 부인이자 일과노래 문화노동자인 김영희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목발의 투사가 남긴 사명

김병태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아래 정추사) 회장은 “정태수 열사는 활동가를 조직하고 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위해 전국을 휘저으며 다니던 목발의 투사였다”고 기억하며 “이제까지 장애인은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살아야 했지만 최근 장애계는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노동의 정의를 바꾸는 투쟁을 하고 있다. 혁명적인 투쟁으로 20년이 지났다. 앞으로의 20년 또한 장애해방을 위한 현장 투쟁으로 이 사회의 기준을 바꿔나가자”고 말했다.

정태수상 1회 수상자이기도 한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_단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정태수 열사 추모제에선 매년 열심히 활동한 장애해방운동가에게 정태수상을 수여한다.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_단 대표는 정태수상 1회 수상자다.

“1회 때 이렇게 힘든 상인 줄 알았으면 안 받았습니다. (웃음) 상을 받으니 매년 3월 1일만 되면 이렇게 추모제를 하러 와야 해요. 아파서 눕지 않는 이상 열사를 기리고 열사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이야기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아침마다 동지들이 지하철 선전전하며 시민들께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것을 페이스북 영상을 통해 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투쟁하는지, 아침 7시 30분부터 9시까지는 댓글 쓰는 활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나는 이 상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의 짐을 가지며 3월 1일이면 이곳에 오고, 투쟁 현장에 나가는 게 정태수 열사가 우리에게 준 사명 같습니다.”

- 20회 정태수상, 김봉조 대구사람센터 활동가‧노들야학 공동수상

이날 제20회 정태수상은 김봉조 대구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와 노들야학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대구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김봉조 활동가의 수상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수막에는 “대구 장애해방운동의 산 증인 김봉조 동지의 정태수열사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대구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김봉조 활동가의 수상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수막에는 “대구 장애해방운동의 산 증인 김봉조 동지의 정태수열사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김봉조 활동가는 대구지역의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대표하는 조직가이다. 지난 2002년 대구대학교에 입학한 뒤 동료들과 장애인권동아리 ‘레츠’를 창립해 학내 운동을 시작했다. 2006년에는 대구지역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을 전개하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준비위원회를 건설하는 데 헌신했다. 이후 사람들과 함께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창립해 지역 장애인 조직화를 위한 각종 자조모임, 동료상담, 문화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정추사는 “김봉조 활동가는 특히 조직의 성과나 빛나는 자리를 동료들에게 양보하고 지금도 지역 장애인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조직하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등 진정성 어린 활동을 이어가며 정태수 열사의 정신을 현장에서 계승하고 있다”며 시상 이유를 밝혔다.

이번 수상에 대해 김봉조 활동가는 “정태수 열사는 이 땅에서 차별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다. 그 마음이 제가 활동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동지들이 있어 지금까지 투쟁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과 같이 이 사회를 바꿔나가는 투쟁을 하는 동지가 되고 싶다”고 외쳤다.

20회 정태수상을 수상한 김봉조 대구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사진 강혜민
20회 정태수상을 수상한 김봉조 대구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사진 강혜민
20회 정태수상을 수상한 노들야학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강혜민
20회 정태수상을 수상한 노들야학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강혜민

공동수상 단체인 노들야학은 지난 1993년 개교 이래 장애인 평생교육 운동의 대표적 단체로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문화예술 등 다양한 권리 투쟁에 앞장서 왔다. 또한 진보적 장애인운동계에 많은 활동가를 배출함으로써 정태수 열사의 정신을 현장에서 계승하고 있다. 정추사는 “노들야학은 정태수 열사가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던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에서 열사가 동지들과 함께 만든 야학으로서 20주기 수상 단체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명학 노들야학 교장은 “수많은 훌륭한 활동가들이 있는데 이 상을 받아서 한편으로 죄송하기도 하다”면서 “우리사회는 아직도 투쟁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들야학도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장애인운동 집회와 추모제에서 20년간 음향 지원을 한 ‘음향 자유’에게는 특별감사패를 시상했다.

추모제 후 헌화를 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추모제 후 헌화를 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