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차 삭발결의자 김진석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김진석 활동가는 삭발식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사진 이슬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3월 30일부터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답변을 촉구하며 매일 아침 8시, 삭발 투쟁을 합니다. 장소는 인수위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3호선 경복궁역 7-1 승강장(안국역 방향)입니다. 비마이너는 삭발 투쟁을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결의문을 싣습니다.

김진석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눈을 감고 있다. 다른 활동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사진 이슬하
김진석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눈을 감고 있다. 다른 활동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사진 이슬하

저는 1967년에 2남 1녀의 막내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습니다. 그러다가 2살 되던 해에 소아마비라는 질병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김진석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이 훗날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게 하려고, 가난한 집안 환경 속에서도 이름 석 자라도 쓸 수 있도록 한글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일반학교에 매일같이 업어서 등하교를 시켜주셨습니다. 

비록 중·고등학교는 다니지를 못했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노력으로 늦은 나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3년 동안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부터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국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하면서 목표를 대학 공부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자립생활 목표가 이루어진 것이 꿈만 같고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좋았습니다.

이렇게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 덕입니다. 또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삭발식을 마치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김진석 활동가. 사진 이슬하

오늘은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입니다. 20여 년 동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와 많은 활동가의 헌신적인 투쟁과 활동으로, 중증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작년 12월부터 교육권·이동권·생존권 예산확보를 위한 활동으로 혜화역에서 투쟁활동을 했습니다. 때로는 많은 시민으로부터 장애인에 대한 혐오 섞인 비난의 말을 들으면서 지하철 시위를 했습니다. 

이런 시위 투쟁에 대해 한 정당 대표가 장애인을 폄훼하는 글과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헌신적으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활동가들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자립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선택과 결정으로 자유로운 헤어스타일로 자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랫동안 시설에서 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지를 못했습니다.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 야학에도 가고 학교도 가는 게 재밌었습니다. 

지금껏 중증장애인들은 시설이나 집안에서만 시혜와 동정을 받으며, 아무런 꿈과 희망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중증장애인도 산 좋고 물 좋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아가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국회에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된 상태라고 합니다. 하루빨리 법을 제정해서 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도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장애인권리보장법도 속히 제정되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김진석이었습니다. 

삭발식을 마친 김진석 활동가가 벌언하고 있다. 머리에는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라는 머리띠를 맺다. 사진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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