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거리홈리스 물품 폐기… 한국철도공사는 절차도 무시
“거리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
무더위에 역사에서도 쫓겨나는 홈리스… ‘빈민의 형벌화’ 만연

홈리스행동은 7일 오전 10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리홈리스 물품을 주도적으로 폐기한 한국철도공사를 규탄했다. 바퀴가 달린 가방과 침낭에 “거리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허현덕
홈리스행동은 7일 오전 10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리홈리스 물품을 주도적으로 폐기한 한국철도공사를 규탄했다. 바퀴가 달린 가방과 침낭에 “거리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허현덕

또 서울역 광장에 설치돼 있던 10여 개 동의 노숙용 텐트와 물품이 수거·폐기 처분됐다. 10여 명의 삶의 터전과 재산이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지난해 10월에도 서울역 광장에서 장사를 하던 마차와 짐, 홈리스의 물품이 폐기된 바 있다. 이에 서울 중구청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홈리스행동은 7일 오전 10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거리홈리스 물품을 주도적으로 폐기한 한국철도공사를 규탄했다. 

- 계속되는 거리홈리스 물품 폐기… 한국철도공사는 절차도 무시

지난 6월 7일 한국철도공사는 서울역 2번 출구 근방의 거리홈리스 물품을 수거·폐기 처분했다. 이때 한국철도공사의 요청으로 서울역파출소, 서울중구청, 서울시립노숙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아래 다시서기센터) 등의 기관이 참여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이들 공권력은 행정대집행법, 도로법도 준수하지 않았다. 이번 조치는 일반적인 청소행정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홈리스 물품을 마치 쓰레기 집듯이 쓸어가 버렸다”라고 규탄했다. 

‘행정대집행법’에는 “방치함이 심히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될 때”, “상당한 이행기한을 정하여”, “대집행을 한다는 뜻을 미리 문서로써 계고”한 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노숙 물품에 대한 폐기처분은 이 절차를 따르지 않고, 대부분 ‘도로법’을 따른다. 도로법 제74조 ‘행정대집행의 적용 특례’에는 “(행정대집행 절차를 따르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해당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도로에 있는 적치물 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러한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서울역(한국철도공사)은 정비당일인 7일이 아닌, 하루 지난 8일에야 서울 중구청에 협조요청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활동가는 “서울역파출소 노숙인 전담 경찰 박 아무개 씨에 따르면 이번 물품 처분은 ‘용산역 텐트촌 화재사건으로 인한 안전 예비조치 차원’이라고 한다”면서 “그 전부터 노숙 당사자들에게 물품 수거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명부에 서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동의를 강요했을 뿐 대안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역 2번 출구 인근 ‘노숙 텐트 및 물품 철거’ 전후 사진. 왼쪽은 2022년 1월 12일에 촬영한 사진, 오른쪽은 2022년 6월 9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모자이크로 가려진 곳은 텐트 한 동이 설치된 모습. 사진 홈리스행동 제공
서울역 2번 출구 인근 ‘노숙 텐트 및 물품 철거’ 전후 사진. 왼쪽은 2022년 1월 12일에 촬영한 사진, 오른쪽은 2022년 6월 9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모자이크로 가려진 곳은 텐트 한 동이 설치된 모습. 사진 홈리스행동 제공

서울역 인근 용산역 텐트촌도 강제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당사자와 활동가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강제철거는 피했다. 그러나 용산구청에서 대책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텐트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일을 빌미로 서울역에서도 홈리스 텐트를 철거하고 물품을 폐기 처분해버린 것이다. 

용산역 텐트촌 화재 피해 주민인 이창복 씨는 대안 없는 강제철거와 물품 폐기를 규탄했다. 

“나도 서울역에서 텐트 치고 사는 분들과 같은 처집니다. 용산역 텐트촌에 불이 났으니까 서울역 텐트촌에도 불이 날까 봐 쓰레기차를 끌고 와 강제철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살 곳을 마련하고, 잘살 수 있게끔 한 다음에 철거를 해야지, 힘없고 빽 없다고 강제철거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물품 처분에는 다시서기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이 동원됐다. 사회복지사들은 홈리스의 물품을 검은 봉지에 넣고 쓰레기 수거 차량에 싣는 일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시서기센터는 홈리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사회복지기관이다.

신현석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사회복지지부 조직국장은 “누구보다 홈리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회복지사가 홈리스의 삶, 주거 공간을 해치는데 참여했다. 폐기조치에 함께할 게 아니라, 폐기조치가 홈리스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이익을 대변하고 알렸어야 했다. 다시서기센터는 사회복지사의 윤리강령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거리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거리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거리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

홈리스인권지킴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홈리스의 물품은 집이고, 삶이 담겨 있다”라고 강조했다.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분이셨는데, 3주 전 금요일에 자신의 물품이 쓸려간 이야기를 하시면서 많이 원통해하고 억울해하셨습니다. 박스 폐지를 수거해 생계를 유지했던 분이었는데, (지난 6월 7일) 경위가 와서 ‘박스 등 챙길 거 있으면 챙기라’고 해서 폐지거래처에서 카트를 빌려서 박스를 실어 나르던 중 자신의 가방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른 청소차 쪽으로 가서 가방 중 한 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낭 1개, 손가방 1개, 침낭주머니 2개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에 가서 항의도 하고 텐트 바로 위에 있던 CCTV 확인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다시서기센터에서도 ‘우리는 모른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 들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소지품은 이분에게는 중요한 물품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2G 핸드폰에는 옛 지인의 연락처와 추억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학등단을 준비하고 있어서 여러 메모와 노트,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여전히 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청소차에 실려 압축폐기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에게는 폐기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비닐봉지, 침낭, 꼬깃꼬깃한 종이도 누군가에는 삶입니다. 함부로 폐기되어서는 안 됩니다.”

로즈마리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공동회장은 홈리스가 짐을 잃었을 때의 심정은 911테러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주거권을 보장해야 해결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짐은 그 사람의 전부예요. 그런데 홈리스는 인권이 없어요. 개나 돼지 동물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짐이 분실됐을 때는 마치 미국의 911테러와 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해머로 머리를 맞은 것같이 멍합니다. 짐을 다치지 않게 보호할 수 있는 주거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홈리스인권지킴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홈리스의 물품은 집이고, 삶이 담겨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 허현덕
홈리스인권지킴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홈리스의 물품은 집이고, 삶이 담겨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 허현덕

- 무더위에 철도역사에서도 쫓겨나는 홈리스… ‘빈민의 형벌화’ 만연

이러한 홈리스 물품 수거·폐지는 과거에도 계속 벌어졌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2020년 5월 22일 서울역 광장과 서울역 우체국지하도 옆에서 노숙 물품 수거 시도가 있었다. 2021년 7월 13일에는 서울역 3번 출구 밖에서, 2021년 10월 28일 서울역 우체국지하도 옆에서 물품 수거·폐기가 있었다. 올해 2월 15일에도 서울역 광장의 노숙텐트와 물품의 수거·폐기가 있었는데 6월 7일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더위에도 홈리스가 철도역사에 머물 수 없게 하는 조치도 벌어지고 있다. 철도안전법 48조(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위한 금지행위)를 근거로 철도역사에서 홈리스가 있을 수 없도록 집요하게 적용하고 있다. 서울역 역사 내, 광장, 심지어 2번 출구 앞 캐노피에서도 홈리스들은 쫓겨나고 있다.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서울역, 용산역에서 머무는 홈리스 대부분은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다. 그런데 누구나 이용하는 철도역사와 같은 공공시설에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은 홈리스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라며 “철도안전법 48조가 홈리스들에게 집요하게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홈리스행동은 이러한 물품 수거·폐기 처분과 공공시설에서 홈리스를 쫓아내는 행위를 ‘빈곤에 대한 형벌화 조치’라고 설명했다. 2011년 8월, 유엔의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빈곤층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며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정책, 법률, 행정적 규제를 ‘형벌화 조치’”라고 지칭한 바 있다. 

홈리스행동은 “홈리스가 거리,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생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최선으로밖에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정책과 환경이 문제”라며 “홈리스의 ‘짐’이 문제가 아니라 홈리스에게 ‘집’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수거·폐기 처분에 동참한 기관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빈곤에 대한 ‘형벌화 조치’ 당장 중단하라”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참가자가 “빈곤에 대한 ‘형벌화 조치’ 당장 중단하라”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