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반지하 없앤다’ 대책 발표
시민사회단체 “주거취약계층 더 열악한 주거로 몰릴 것” 우려
“공공임대주택 확대로 안전과 주거권 보장 받는 사회로 전환해야”

기후위기로 이례적인 폭우가 내렸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 반지하에 살던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죽고, 컨테이너로 지어진 임시숙소에 머물던 이주노동자가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사망했다.

가장 먼저 전해진 소식은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의 죽음이다. 8일 밤부터 쏟아진 폭우로 신림동 주택 반지하가 침수돼 그곳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집에는 40대 여성 두 명과 10대 여아가 있었다. 원래 이 집에서는 70대 어머니도 함께 살았으나 당시 병원 입원 중이라 집에 없었다.

사고 이후 전해진 언론 보도에 따르면 40대 여성 두 명은 자매였다. 언니는 지적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동생 홍아무개 씨는 백화점 면세점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홍 씨는 일터의 열악함을 바꿔나가고자 4년 전부터 노조 전임자로도 활동했다.

10일에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주택 반지하에 살던 50대 여성이 사망했다. 그에게도 장애가 있었으며 기초생활수급자였다고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신림동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제20대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신림동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제20대 대통령실 

상황이 심각함에도 정부 컨트롤타워는 부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일 막대한 폭우가 예상됐음에도 퇴근 후 집에 머물며 관련 상황을 보고 받았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9일 오전에야 윤석열 대통령은 부랴부랴 신림동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튿날인 10일 오전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상도동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이같은 비극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주거환경정비·도시계획·스마트기술 등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결집하여 주거취약계층의 안전 강화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서울시도 “시민 안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 없애 나간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폭우가 기후재난임을 고려했을 때, 이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 반지하 없애는 것은 근본 대책 아냐,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핵심

이번 침수로 주거공간으로서의 반지하가 새삼 조명됐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반지하는 일반적인 주거공간 중 하나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약 33만 가구가 반지하에 살며, 이 중 9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5%에 달하는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 즉,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택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일어난 “신림동 반지하 시세가 2억 정도”라고 한다. 네 가족이 살 수 있는 방 세 칸 집임을 고려했을 때, 이는 서울에서 저렴한 편에 속한다.

홍 씨가 활동했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는 10일 발표한 성명에서 “코로나19 재난으로 면세점 노동자들의 소득 저하는 반지하가 아닌 다른 주거 형태를 선택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라면서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 나은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10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시민 안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 없애 나간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10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시민 안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 없애 나간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서울시 대책에 주거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내용은 없다. 10일 서울시는 보도자료에서 향후 지하·반지하는 주거 목적 용도로 허가하지 않도록 정부와 협의하고, ‘반지하 주택 일몰제’로 10~20년에 걸쳐 주거용 지하·반지하는 순차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 대상으로 모아주택·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환경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이곳에 사는 세입자들에겐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거나 주거바우처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없다. 너머서울·민주노총 서울본부(아래 너머서울 등)는 서울시가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서 순차적으로 없애는 것과 관련해 “강행규정 없이 건물주에 대한 인센티브만으로 용도변경을 유도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면서 “무엇보다 현 상태로는 지하·반지하를 없애면 거주자들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간정비사업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에 대해서도 “지하주택의 수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심의 저렴주택이 줄어들면 가난한 이들은 또 다른 형태의 열악한 주거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가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주거 상향을 돕겠다고 밝힌 계획도 실효성이 없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원 대상자만 늘렸을 뿐 공급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그나마 공급되는 주택 유형 대부분은 민간임대주택을 활용한 전세임대주택으로, 현재 전세임대주택 지원금으로는 반지하나 옥탑방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밝혔다. 주택바우처 또한 1인 가구 월 8만 원 수준이어서 서울시가 밝힌 주거상향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너머서울 등은 “지하·반지하 주거를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도심 내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를 통해 안전하고 저렴한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공공임대주택 확대 계획 없는 반지하 대책은 개발 명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또한 “이번 사고를 빌미로 대책 없이 반지하마저 사라지면 서민들이 살 곳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면서 “원희룡 장관이 만들어야 할 근본 대책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에게만 안전을 보장하는 개발도시가 아니라,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조차 평등한 안전과 주거권을 보장받는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반지하 가족들이 당한 참변은 집으로 돈 버는 사회가 만든 죽음이자, 가난과 장애를 사회가 아닌 가족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해 온 사회에서 발생한 인재”임을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상도동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상도동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 그 자체’, 근본적인 시스템 전환 필요

무엇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 그 자체’라며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재난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너머서울 등은 비상상황임에도 서울시가 기후재난에 더 취약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깊이 우려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서울시가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는 개발에 관한 규제 완화와 각종 개발 계획이 가득하다”면서 “탄소배출 저감, 재난 대비, 서울의 에너지 자립도 제고 등을 위한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폭우 때 복개천 주변 지역의 피해가 큼에도 성찰 없이 수변지역 개발 의지만 난무한다”고도 규탄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번 침수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재난인프라 구축, 도시 녹지의 충분한 면적과 회복력 확보에 실패했다는 방증”이라면서 “(그럼에도)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인 불평등 구조를 바로잡을 의지와 노력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에 “지금이라도 적극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재수립하고, 기후재난에 취약한 계층과 부문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대규모 정책 수립과 예산 확대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번 폭우로 11일 현재 사망자는 11명, 실종자는 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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