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불평등추모행동 꾸리고 일주일간 추모주간 선포
노모가 중년 발달장애인 돌보는 현실 드러낸 죽음들
반지하, 지상으로 올라오면 끝? 땜질식 처방만 남발하는 정부
기후재난으로 발생한 참사, 근본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이번 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망한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얼굴 없는 영정을 들고 있다. 영정 밑에는 지난 8일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신상(40대 노동자, 40대 발달장애인)이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이번 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망한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얼굴 없는 영정을 들고 있다. 영정 밑에는 지난 8일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신상(40대 노동자, 40대 발달장애인)이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8일 저녁 8시 40분, 노조 지부장님은 홍아무개 동지로부터 ‘119 연결이 안 되니깐 빠르게 신고해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바로 119에 연락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습니다. 상황이 너무 급해서 112에 ‘119와 빠르게 연결해서 신림동 반지하방에 있는 물을 빼고 사람을 구해달라’고 신고했습니다. 이후 홍 동지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노조에서 바로 홍 동지가 사는 신림동 집으로 달려갔는데, 주민들이 밖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지하 창문을 통해 손을 집어넣으니 천장과 한 뼘 남짓한 곳까지 이미 물은 들어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해달라고 소리 지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시각, 대통령은 비싼 고층 아파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날 낮부터 폭우는 예상되었고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대통령은 퇴근했습니다. 

다음 날 대통령은 무얼 했습니까. 신림동 반지하에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주무시다 돌아가셨구나”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왜 미리 대피를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대통령실에선 참사가 일어난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배경으로 카드뉴스를 만들었습니다. 

10일부터 12일까지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3일간 대통령실 그 누구 하나 오지 않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서울시 관계자, 집권여당 한 명 문상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언론 앞에서 보여주기식 수해대책을 발표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닌 국민께 호소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 함께 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손에는 “불평등은 재난이다”라고 적힌 피켓과 함께 하얀 국화를 들었다. 사진 강혜민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손에는 “불평등은 재난이다”라고 적힌 피켓과 함께 하얀 국화를 들었다. 사진 강혜민

지난 8일과 9일, 서울·수도권 관측 사상 최고치로 기록된 집중 호우는 불평등의 지도를 따라 흘렀다. “누군가에겐 외제차가 침수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을 잃는 재난”(정록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이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반지하에 사는 주거취약계층, 그중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노동자, 청소년이었다.

시민사회계는 ‘불평등이 재난이다-재난불평등추모행동(아래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을 꾸리고 이번 사건을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이자 재난 대응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회적 참사”라고 규정했다.

168개의 단체가 참여(15일 기준)한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16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3일까지 일주일간을 폭우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주간으로 선포하고, 같은 날 오후 1시에는 서울시의회 앞에 추모분향소를 설치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투쟁”을 외치며 주먹 쥔 손을 하늘 높이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투쟁”을 외치며 주먹 쥔 손을 하늘 높이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노모가 중년 발달장애인 돌보는 현실 드러낸 죽음들

지난 8일 저녁부터 쏟아진 폭우로 신림동 주택 반지하가 침수돼 일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 집에는 40대 여성 두 명과 10대 여아가 있었다. 원래는 70대 어머니도 함께 살았으나 참사 당시 병원 입원 중이라 집에는 없었다.

40대 여성 중 한 명은 지적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동생 홍 씨는 백화점 면세점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가족들을 부양했다. 홍 씨는 일터의 열악함을 바꿔나가고자 4년 전부터 노조 전임자로도 활동했다.

이어 10일에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주택 반지하에 살던 50대 여성이 침수로 사망했다. 그 또한 발달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고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즉, 신림동과 상도동에서 사망한 발달장애인들은 모두 40~50대의 중년으로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에 대해 탁미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은 “노모가 발달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함께 살았던 것”이라면서 가족에게 떠넘겨진 발달장애인 돌봄 문제를 지적했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장애인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21년을 외쳤으나 정부는 여전히 예산 없다며 ‘검토하겠다’는 말만 한다. 부자감세로 5년간 40조를 깎아주면서 어떻게 돈 없다는 소리를 하나”라면서 “내일이면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데 그간 전 정부 탓만 하고 대체 무슨 일을 했나”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불평등이 재난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하늘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불평등이 재난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하늘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반지하, 지상으로 올라오면 끝? 고시원‧쪽방 등 주거취약계층 대책 필요

이번 참사로 주거공간으로서의 반지하가 새삼 조명받고 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하‧반지하에 사는 가구는 33만 가구로 파악된다. 이중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95%가 집중되어 있다. 서울에 20만 1000가구, 경기에 8만 9000가구, 인천에 2만 4000가구가 산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이유는 비싼 집값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참사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라는 공간만을 문제 삼으며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등의 미봉책만 발표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같은 근본 대책은 실종됐다.

주거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이강훈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장)는 “우리 사회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면서 “해외 선진국에서는 채광이나 습도, 곰팡이 등을 이유로 지하 주택 건축과 거주를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반지하에 33만 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만큼의 가구가 지상의 고시원, 쪽방과 같은 주택이 아닌 곳(비적정 주거)에 살고 있다”면서 반지하와 함께 비적정 주거 거주자들을 함께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비적정 주거 자료 갖고 있는 정부, 성급하게 땜질식 대책만 남발

무엇보다 정부는 비적정 주거에 관한 자료를 이미 갖고 있음에도 이를 활용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수립하지 않고, 성난 민심을 수습하고자 성급하게 땜질식 대책만을 발표하고 있어 더욱 분노를 키우고 있다. 현행 주거급여법에 따르면, 주거급여를 받는 가구에는 매년 LH, SH공사가 파견하는 주택 조사관이 와서 주택의 안정성, 방수와 단열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국토교통부와 윤석열 정권은 주택의 불안정함과 비주택 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 주택을 어떻게 상향할지에 대한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어 오래전부터 문제제기를 받아 왔다”면서 “이미 갖고 있는 정보조차 활용하지 않으면서 참사 이후 주거 복지 확대하겠다, 주택 바우처 금액 올리겠다는 대책이 무슨 실효성이 있나. 지금 정부는 문제 진단도 제대로 안 하고 너무 성급하게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정부는 반지하가 자신의 주거지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입장에서 다시 한번 천천히 돌아보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시민사회가 추모주간을 마련한 데에는 무엇보다 수해참사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보인 반응이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즉, 시민사회계가 마련한 이번 추모주간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부재를 실감하면서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시민이 시민에게 보내는 “조난 신호”라는 것이다. 그는 “돈 있는 사람들만 안전을 구매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아무리 돈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회로 전진하자”면서 “슬픔을 모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힘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이 “공공임대주택 대폭 확대”라고 적힌 붉은색 몸자보를 입고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이 “공공임대주택 대폭 확대”라고 적힌 붉은색 몸자보를 입고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기후재난으로 발생한 참사, 9월 24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까지 추모 이어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번 참사가 기후재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잇따른 폭염, 산불, 가뭄, 홍수 등으로 기후재난은 일상이 됐음에도 사회는 여전히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에 대해선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지 않은 채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개발 규제 완화만을 이야기하며 자본의 이윤 축적만을 목표로 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서울은 더욱 재난에 취약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서울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대지가 덮여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면적률이 높고 녹지가 적은데다, 곳곳의 하천들은 복개하는 등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결과”라면서 “정부와 서울시의 도시정책은 기후재난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는 올해 수해방지와 치수 예산을 대폭 삭감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896억 원 삭감된 4202억 원으로 이는 2012년 이후 가장 적은 예산이었다.

시민사회계는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을 꾸리고 16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시민사회계는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을 꾸리고 16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정록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은 기후정의를 위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9월 24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기후정의행진 참여를 호소했다. 정록 집행위원장은 “기업의 끊임없이 이윤 추구로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지 않고,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면서 “재난은 불평등을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한다. 이번 폭우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를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까지 이어가자”고 밝혔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공공임대주택 확충 및 모두의 주거권 보장 △잇따른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에 대한 국가 대책 마련 △기후재난참사 재발방지대책 및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 대책 마련을 정부와 지자체에 촉구했다. 오는 19일에는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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