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부터의 기후정의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다이-인(die-in)’ 시위를 하는 사람들. 다이-인 시위는 일정 시간 동안 죽은 듯 땅에 누워 있는 시위로 기후재난과 불평등 속에서 죽어가는 상황을 상징한다. 사진 구준모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다이-인(die-in)’ 시위를 하는 사람들. 다이-인 시위는 일정 시간 동안 죽은 듯 땅에 누워 있는 시위로 기후재난과 불평등 속에서 죽어가는 상황을 상징한다. 사진 구준모 

- 두 가지 희망

3만 5천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시청 인근 세종대로를 가득 채웠다. 지난 24일 기후정의행진에 모인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조합원, 사회운동단체와 청소년·학생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셈하기 어려운 다양한 얼굴들이 모였다. 버스와 기차로 전국에서 모인 우리는 고립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즐겁고 흥분되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먼저 ‘기후정의’의 얼굴이 다양해지고 구체화되었다. 석탄발전소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논밭과 축사에서 땀 흘리는 농민, 빈곤한 쪽방주민 등 기후위기를 겪는 최일선 당사자들이 참여하고 스스로의 입으로 기후정의를 말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노동환경 개선과 고용 보장, 농어민 소득 보장과 식량 주권 실현, 주거권 확대와 빈곤 철폐 등 오래된 과제가 기후정의와 연결된 새로운 과제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기후운동이 환경단체와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모든 시민, 특히 기층 민중의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또한 기후운동의 지향이 급진화됐다. 참여자들은 기후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나 체제에 있고, 체제 전환이나 체제 변화가 대안이라고 손수 만든 피켓에 적었다. 발본적 비판과 급진적 희망을 담은 발언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녹색성장을 그릇된 이상으로, 그린워싱을 범죄행위로 비판했다. ‘RE100’이나 ‘공정한 전환’ 같이 기업과 정부의 용어도 간혹 보였으나 체제 전환 요구의 물결 속에 어색하게 공존했다. 그레타 툰베리가 속한 청소년 기후운동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내세운 “체제를 전복하라”, “기후투쟁은 계급투쟁이다”라는 슬로건을 그대로 소개하기 어려워하던 한국 기후운동의 지체가 이날 해소된 듯했다.

한 노동자가 “정의로운 전환으로 발전노동자 삶을 지켜내자”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끝장내자! 이윤을 위한 에너지체제”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사진 구준모
한 노동자가 “정의로운 전환으로 발전노동자 삶을 지켜내자”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끝장내자! 이윤을 위한 에너지체제”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사진 구준모

- 두 가지 과제

그러나 너무 과장하지는 말자. 다들 직감하듯이 체제 전환과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쉬운 길은 없을 것이다. 이날 급진적인 지향이 전면적으로 제기됐지만, 구체적인 압박 대상과 변화의 방법에 대한 합의는 아직 없어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처럼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정치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기후위기를 연료 삼아 폭리를 취하는 재벌이나 대기업을 통제하자는 목소리도 작았다. ‘지구가 불타고 있다’는 피켓이 ‘체제 전환’으로 바뀌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다.

권력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일 발표된 9.24 기후정의선언은 “기후정의는 당사자들이 권력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길이고, 우리가 대안이 될 것이다”로 마무리되었다. 기후정의운동의 지향을 밝힌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어떻게 대안 권력을 만들지 잘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제에서 한 시민이 진보정당 어디든 가입해서 힘을 보태자고 요청할 때, 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진보정당의 현실을 생각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소수 엘리트와 자본에 집중된 권력을 우리의 권력으로 재구성할 방법 역시 기후정의운동의 큰 과제로 남아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구준모 

- 새로운 가능성으로

9월 24일의 변화는 순식간에 오지 않았다. 수년 동안 많은 활동가와 시민의 노고가 쌓였다. 또 다른 노력을 통해 앞으로 9월 24일이 체제 변화를 위한 기후정의운동의 대장정이 시작된 때로 기억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를 위해 유념할 것은 체제 변화가 ‘개별 요구의 실현’이나 ‘정책 패키지 도입’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체제 변화는 한동안 잊혔던 혁명을 다시 생기있는 정치 프로젝트로 재발명하는 일에 가깝다. 세상의 이치를 돈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혁명, 자본과 엘리트의 지배를 민중의 돌봄으로 바꾸는 혁명, 지금 당장 시작되어 장기간 지속해야 하는 혁명. 기후정의운동은 그런 혁명을 담은 정치적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체제 변화를 구성하는 상호연관된 과제들은 새로운 정치 프로젝트를 통해 아래로부터 대안을 구성할 때 가능하다.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고 물질 생산과 소비의 규모를 줄이는 일, 주거·에너지·교통·통신·정보 등 기반시설의 소유와 운영을 공공화·공유화하고 공공서비스를 탈상품화하는 일, 노동권과 복지를 확대하고 노동조합을 강화하는 일, 배제되고 차별받던 존재를 존중하는 경제와 사회를 만드는 일. 기후정의운동은 체제 변화를 위한 대안 권력을 구성할 수 있을까? 2022년 9월 24일이 체제 변화를 위한 긴 여정의 서막일 수 있을까?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열린 지평으로 비로소 이런 질문이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 그 가능성으로 돌진하자.

구준모의 아래로부터의 기후정의

기후정의동맹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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