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예산 재차 외면하는 국민의힘
예결특위에 올라간 증액안, 기재부 장관이 동의해야 가능
전장연 “주호영 면담 성사되면 점거 풀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 30여 명이 29일 오후 1시 40분, 조계사 대웅전을 점거했다. 이들은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면담하기 전까지 점거를 풀 수 없다는 입장이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대웅전에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웅전 출입문 어느 곳에도 경사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활동가들은 비장애인 활동가에게 업히고 안겨서 대웅전에 들어와야 했다. 짐을 나르는 손수레를 타고 힘겹게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높은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대웅전 안에 겨우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당시 대웅전 안에는 자녀의 대학 입학을 두고 기도하는 불자들 수십 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 사이로 장애인들이 등장하자마자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떻게 들어왔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등의 폭언이 쏟아졌다.

이후 조계사 직원들이 달려왔다. 이들은 취재 카메라부터 막아섰다.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조계사 직원의 강경한 진압에 밖으로 끌려 나가 넘어졌다. 조계사 직원은 장애인들을 채증하기 위한 내부 직원의 촬영만 가능하고 취재를 위한 촬영은 불가능하다며, 카메라를 끄라고 재차 강요했다.

부처상 아래 장애인 활동가들. 현수막에 ‘부처님께 비나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더이상 삼독(욕심, 성냄,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장애인권리예산과 권리입법을 보장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부처상 아래 장애인 활동가들. 현수막에 ‘부처님께 비나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더이상 삼독(욕심, 성냄,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장애인권리예산과 권리입법을 보장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그 사이 장애인들은 기어서 부처상 아래 강단 쪽으로 올라갔다. 조계사 직원이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해서 몸에 둘러 입었다. 주 원내대표가 연락이 올 때까지 끌려 나갈 수 없다는 각오로 쇠사슬을 몸에 묶기도 했다. 장애인들은 이 상태로 강단에 올라가 있었다. 강단과 바닥은 비장애인 성인의 허리 높이로, 하지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 추락하게 된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조계사 직원은 “스님만 올라가는 곳이니 내려와라”, “자녀 대학 위해 부모들이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를 망칠 것이냐”라며 장애인을 위험하게 강제로 끌어내려 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부처님께 기도드리려고 떨어져 죽을 각오로 여기 올라와 있다. 위험하니 손대지 말아달라. 우리도 기도드리러 왔다”고 호소했다.

조계사 직원들은 재차 장애인들을 끌어내고, 장애인이 들고 있는 현수막을 잡아채며 “조계사에도 장애인단체가 있는데 여러분은 거기 속해 있지도 않다. 기도하는 분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고 고성을 질렀다. 다른 직원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전장연을 지지해 줬는데, 이제 철회해야겠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스님이 기도회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스님이 기도회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 상황을 지켜보던 불자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까지 대웅전에 들어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러,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오후) 2시 기도회를 시작해야 하니 직원과 경찰은 모두 나가주시고 기도하는 분들은 자리에 앉아주시라”고 말하자 그제야 대웅전 내 일대 소란은 정리됐다.

장애인들은 현수막을 몸에 두르고 손에 쥔 채로 2시 기도회에 참석해,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장애인들이 기도를 드리며 현수막을 펼칠 때마다 조계사 직원은 “시위하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는 곳”이라며 제지했다.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는 “이곳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찰이다. 고통받는 중생인 장애인이 직접 부처님 앞에 찾아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다. 불자인 주호영 원내대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고통받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권리예산 권리입법 국민의힘이 책임져라! 주호영 원내대표는 면담에 응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권리예산 권리입법 국민의힘이 책임져라! 주호영 원내대표는 면담에 응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국힘만 무응답’… 대체 언제까지?

현재 장애인권리예산 관련, 원내 주요정당 모두 전장연과의 면담을 마친 상태다. 윤석열 정부가 폐기한 장애인권리예산은 국회 각 상임위에서 야당의 의지로 소폭 증액됐다. 이 예산안은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특위)로 넘어갔다. 예결특위에서 증액된 예산안이 의결되기 위해서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당인 국민의힘과의 합의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면담은커녕 국정감사와 상임위 예산안 심사에서 탈시설운동을 비난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한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에 전장연은 지난달 5일부터 주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한 직접행동을 시작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달 5일 열린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취임법회에 참석해 축사했다. 당시 전장연은 법회에 참석한 주 원내대표를 찾아가 장애인권리예산 면담요구안을 전달했다.

주 원내대표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면담요구안을 받아 갔지만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에 전장연은 지난 22일, 주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 다시 조계사를 찾았다. 불자 국회의원 모임인 정각회 명예회장으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연예인전법단출범식에 참석한 주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주 원내대표는 축사를 마친 후 전장연을 피해 황급히 조계사를 빠져나갔다. 기자가 주 원내대표를 붙잡고 면담 계획을 묻자 “파악하고 말씀드리겠다”는 말만 남겼다. 전장연은 윤석열 대통령이 캠프 후보였던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국민의힘 측에 수차례 제출했다. 따라서 전장연은 주 원내대표가 면담요구안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2시 기도회가 끝난 후 대웅전 중앙을 점거했다. 사진 전장연
전장연 활동가들은 2시 기도회가 끝난 후 대웅전 중앙을 점거했다. 사진 전장연

이에 전장연은 거듭 면담을 외면하는 주 원내대표를 규탄하며, 주 원내대표가 자주 찾아오는 조계사에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오후 4시 기준, 활동가 30여 명이 대웅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으며, 이 상황은 주 원내대표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은 주 원내대표가 대웅전으로 찾아와 면담하거나,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이 주 원내대표와의 면담을 주선하지 않는 이상 점거를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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